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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정치여, 눈 돌려 밖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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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나라 밖 소식이 참으로 걱정이다. 외신에는 ‘수십 년 만의, 대공황·2차대전 이후 처음, 한 세기 반 만에’ 등의 블랙스완(Black Swan) 출몰이 가득하다. 전방위의 세기적·세계적·실제적 위기다.

세계적 불경기를 우려케 하는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가파른 금리 인상과 강(强)달러의 쓰나미가 우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인 연말 4.5%의 추이는 20년 이래 최고의 강달러를 군림케 했다. 파월의 인상 속도가 아직 1980년대 초 폴 볼커 의장의 무자비(최고 21.5%)보다는 덜하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처럼 인상 대열로 뛰어드는 확산의 폭은 전례가 없다. 일본 등 금리 유지·인하에 비해 인상 국가들의 숫자가 무려 25배다(파이낸셜타임스, ‘확산일로 인플레 전쟁’).

미 Fed가 타국에 온정적 고려를 할 것인가엔 “동의하지 않는다”는 전문가가 절대다수다. “1970년대 재선을 노리던 닉슨의 눈치를 본 아서 번즈 의장이 인플레를 방관했다 당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볼커의 자서전인 『계속 그대로(Keeping at it)』처럼 “인플레의 끝까지 금리 인하는 없다”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태국·한국·인도네시아 순의 재앙을 겪은 아시아에 자꾸 눈길이 쏠린다. 외신들의 답은 그러나 단순명료하다. “4~5% 이상 금리면 주택시장, 기업 도산으로 몇억 명이 실업할지 전혀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니 “각 나라가 물가 등을 건전하게 관리하라”뿐이다(뉴욕타임스, ‘실감하는 전 세계 경기 후퇴의 위기’). 해답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니 그야말로 공포다.

경제·국제정치·민주주의 등
세계적 위기의 쓰나미 몰려와
포퓰리즘까지 민주주의 침식
한국정치, 위기 직시·각성해야

히로시마 이후 77년 만의 ‘핵 금기(nuclear taboo)’를 깨트릴 푸틴의 전술핵도 버금가는 위협이다. ‘아마겟돈’(지구의 종말)이라는 단어를 바이든 미 대통령은 한 자리에서 세 번 썼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60년 만에. 바이든은 “내가 잘 알지만 푸틴의 농담이라 생각지 않는다”며 “그가 우크라이나에서 참혹한 실패를 맞은 때문”이라고 했다. “선거를 앞둔 정치적 과장”이란 관측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러나 “바이든은 초짜 대통령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SALT(전략무기제한협정)회담 수석대표까지 지내며 소련 최고위층들과 군축을 논의한 전문가”라며 “지금을 핵 시대의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보는 건 일리 있다”고 분석한다. ▶전술핵 맞대응 ▶재래식 무기의 발사 원점 타격 등 어떤 카드도 러시아와의 전면전, 핵 확산 도미노를 배제할 수 없는 게 딜레마다. (NYT ‘푸틴이 핵무기를 쓴다면’) 인간 존엄성(humanity)에 대한 극도의 위험이다. 전술핵 개발에 미친 북한에 ‘핵 금기’ 해제 기류가 미칠 악영향은 가장 두렵다.

미-중 패권 경쟁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당 총서기 3연임도 우리에겐 큰 짐이다. 악마(소련)와 손잡고 악마(나치 독일)를 물리쳤던 미국은 거대해진 새 공산주의 악마를 봉쇄해야 했었다. 만만하게 보며 세계자유무역 질서(WTO)에 편입시켰던 중국이 대국굴기 패권에 도전하자 선언한 제2의 냉전이다. 서방에 의존하지 않는 첨단 테크의 요새를 꿈꾸는 시 주석의 중국. 이에 맞서 시대의 전략 무기인 반도체·IT·배터리·지적재산의 대중 공급망 봉쇄에 미국이 민주주의 동맹의 참여를 압박하는 한층 촘촘해진 그물망 봉쇄다.

마오쩌둥 초대 주석 사후 46년 만의 영구집권 움직임도 국제 정세에 먹구름을 몰고 온다. FT의 마틴 울프는 “최측근 주축의 도전받지 않는 권력은 내부를 한층 경직시켜 과저축·과투자·과부채의 경제 개혁을 중단시킬 것”이라고 한다.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와 1인 독재로 14억 명을 관리할 수는 없으며, 비판적 국가들의 응집으로 국제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고 했다. 선택에 대한 압박은 곳곳에서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다.

일상의 산소 같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의 위기는 충격적이다. 미국도 트럼프부터였다. 최근 트럼프 자택의 압수수색 직후 ‘내란(civil war)’을 언급한 트위팅이 30배로 폭증했다. 의사당 난입 폭동 이후 트럼프의 재등판, 대법원의 ‘낙태 금지’ 논란이 이어지며 “미국은 1850년대 남북전쟁 직전 이래 가장 분열된 상태”(FT)다.

민주주의의 중심까지 흔들리며 10년전 42개국이던 자유민주주의는 최근 34개로 줄어들고 말았다. 2010년 헝가리의 오르반에 이어 무솔리니의 집권 100주년인 올해 이탈리아 멜로니의 집권까지 극우(때론 극좌) 국수주의가 발흥하고 있다(NYT ‘자유민주주의는 죽어가는가’). 연성 독재(soft autocracy)로의 새 흐름은 교묘하다. 일단 선거로 집권한 뒤 SNS란 무기로 국민을 선동, 인권·언론자유를 죽이고 사법부를 종속시켜 ‘분열’로 권력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경제적 양극화의 불신을 이용, 다른 편을 무찔러 ‘내 편’의 손실을 일거에 해결해 주겠다는 이 권위주의 포퓰리스트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다.

해법을 구하기도 어려운 위기들이다. 지금은 바로 ‘위기를 직시하고 각성하라’는 답뿐이다. 나라를 회복 불능으로 균열시킬 그들끼리의 우물 안 권력 싸움으로 애먼 우리 국민들만 고통받는 일 은 부디 없어야 한다. 그러니 정치여, 정신차리라. 그리고 눈 돌려 밖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