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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윤희 한반도평화워치

핵만큼 위험한 북한 화학무기, 우리는 강 건너 불보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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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량살상무기 대비 잘하고 있나

최윤희 전 합참의장·예비역 해군 대장

최윤희 전 합참의장·예비역 해군 대장

북한의 핵무기 선제타격 법제화로 그들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WMD)가 보다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만일 7차 핵실험으로 전술 핵무기까지 전력화되면 우리는 그야말로 핵을 머리 위에 얹고 사는 형국이 된다. 정부는 이에 대비하여 한·미 동맹을 통한 확장억제 방안을 강구 중이나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 총력 안보태세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세계의 많은 나라는 이러한 위협을 그 나라 특유의 총력 안보태세로 대비한다. 북한은 틈만 나면 그들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로 우리를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끔찍한 위협에 당면한 우리의 대비 태세는 어떠할까. 한마디로 그 위협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태세까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막강한 한·미 동맹의 보복이 두려워 그런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러할까.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친혈육도 가차 없이 암살하는 김정은의 통치행태를 고려할 때 이는 위험천만한 오산이다.

북한 최대 5000톤 화학무기 보유, 방사포·탄도탄으로 공격 가능
수도권에 1000톤 사용할 경우 사상자 12만5000명 발생할 수도
지하철 등 대피시설 보완하고 개인 방호체계도 더욱 강화해야
한국군 운영 방식 보완 필요…상비군·동원군 통합체제 구축을

북, 핵보다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 커

한반도평화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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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RAND연구소 등 국내외 안보 관련 연구 기관에서는 대량살상무기를 핵무기와 기타 무기로 분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는 상대국 보복이 두려워 쉽게 사용하지 못하므로 다른 대량살상무기와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화학·생물학무기, 전자기펄스(EMP), 사이버전 능력 등이 포함된다. 북한은 여러 가지 정황상 핵무기 사용에 앞서 필요할 때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본다.

북한은 1954년 중국·소련으로부터 화학무기 제조 기술을 전수받아 2500~5000톤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방사포·항공기·탄도탄 등을 이용해 어디에나 투하가 가능하다. 수도권에 1000톤을 사용할 때 대략 12만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북한은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가입하지 않아 이를 사용하더라도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화학무기를 대량살상무기로 간주하지 않아 미국의 보복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리언 러포트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밝힌 바 있다.

우리는 화학무기의 치명성을 잘 알고 있다. 한·미 동맹의 능력으로 이를 억제하려 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만에 하나 실패하는 경우 엄청난 국민이 희생될 것이다. 안전사고로 몇 명의 사상자만 생겨도 온 나라가 시끄러운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패닉에 빠질 것이다. 이제라도 하루빨리 국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총력 안보태세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이는 관련 대책 수립은 물론 집행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전 이후 북한의 수많은 도발을 감내하며 그 위협에 둔감해졌다. 정부도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로 대책 수립에 부담을 느낀다. 온라인 매체에서 지진 대피 요령을 교육하며 북한의 화생방 위협은 거론도 하지 않는다. 지진 위협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보다 더 현실적이고 심각한 위협일 수는 없다. 하루빨리 위협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도록 홍보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북한 주민은 화생방 훈련 철저

집단 방호체계의 경우 지하철이나 기타 지하시설은 위협의 특성을 고려할 때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방호 능력에 대한 검증은 물론 세부적인 대피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냥 유사시 대피소라는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개인 방호체계 역시 방독면이나 제독시설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장비 확보는 물론 교육훈련 체계를 마련하지 못한다. 국민 개개인에게 방독면을 지급하고 사용법을 숙달시켜야 한다. 언젠가 북한 주민의 화생방 훈련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정작 우리에겐 화학무기를 사용할 의도나 능력이 없는데 그들은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화학무기의 치명적인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병력 자원의 급격한 감소는 획기적인 군 구조와 운용 체계의 변혁을 요구한다. 2020년 미국 칼라일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출산율이 지속할 때 우리나라 병력 자원은 2000년 56만에서 2021년 40만, 2027년 30만을 거쳐 2040년에는 15만으로 감소한다. 지금과 같은 병력 중심의 운용체계는 더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본적인 군사력 운용 개념을 상비군, 동원, 예비 전력을 망라하는 통합 운용체계로 개선해야 한다. 예비 전력의 운용 개념 역시 상비군 손실 보충을 넘어 현대전의 특성을 고려하여 과학 기술 인력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이스라엘은 평시 상비 전력과 예비 전력을 같은 개념으로 준비시켜 6일 전쟁 때 지상군 30개 여단 중 23개를 예비 전력으로 운용하였다. 미국의 경우 걸프전 시 군수부대와 손실 보충 병력 36만 명을 예비 전력으로 운용했다. 스위스는 평시 국민 100명당 28명이 총기를 보유하고 전투기술을 연마한다. 우리도 예비 전력을 상시 운용이 가능토록 개선해야 한다.

겉치레에 그친 한국의 전쟁 훈련

1969년 수립된 동원체계와 정부의 충무계획도 국가 행정체계와 경제 규모 변화, 산업 형태, 인구 분포 등을 고려하여 개선해야 한다. 특히 전시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행정부의 충무계획은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시 군사작전의 근간인 계엄령과 동원을 지원하는 충무계획은 정부와 지자체의 협조가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동원계획도 군의 작전 소요와 산업 형태에 맞도록 대상 업체와 기간 등을 개선해야 한다.

북한 무장 게릴라들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했던 1968년 1·21사태 이후 시작된 정부의 전쟁 연습은 1976년부터는 민관군 통합으로 시행하며 강화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안보 의식이 해이해지며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합참의장 시절 통합 방위 중앙회의를 주재하며 정부 연습의 중요성을 애써 강조하였으나 막상 연습은 하급 실무자 위주의 겉치레 연습이 되어 안타까웠다. 그나마 지난 정부에서는 정부 연습을 아예 중단했다. 이는 공직자의 국가안보에 대한 의무감과 국민의 안보 의식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하긴 상비군의 연합훈련마저 중단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 각 부처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미군과 연합훈련을 해본 사람은 그들의 진지한 훈련 모습에 놀란다.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연습임에도 실전과 같이 상황을 묘사하고 대책을 토의하다 보면 실전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물론 연습 각본부터 많은 연구 검토 과정을 거치나 문제는 연습에 임하는 요원들의 마음가짐이다. 세심하게 작성되는 군의 작전계획도 이처럼 부단한 연습과 보완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한 을지연습 기간 중 일화를 소개한다. 전쟁 초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시행하는 한강 폭파 작전을 두고 논란이 생겼다. 작전계획은 6·25 전쟁 때 하나밖에 없었던 한강대교가 지금은 33개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굳이 한강대교를 폭파할 이유가 없었고 그 많은 다리를 폭파할 방법도 없었다. 이처럼 영혼이 없는 연습은 아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북한 화학무기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 국가의 핵 개발과 운용계획은 극비 사안으로 절대 노출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은 이를 법제화하여 온 세계에 알릴 만큼 비이성적인 집단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언제고 닥칠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미 동맹의 능력으로 어떻게든 억제해야 하나 만에 하나 잘못되면 한순간 온 나라가 궤멸한다. 세계 최고 군사 강국인 미국이 9·11 사태로 3000여 명의 목숨을 잃을 줄 누가 알았겠나. 이제라도 그 위협의 심각성을 자각하여 하루빨리 총력 안보태세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북한의 화학무기는 명백한 대량살상무기로, 북한이 이를 사용할 경우 단호히 대응할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서울 불바다’ 협박과 연평도 포격 등 전쟁에 가까운 북한의 도발에도 우리는 동요하지 않고 의연히 대처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면한 위협은 그 옛날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그 위협을 인정하고 실전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가장 위험한 나라에서 가장 낙천적인(태평한) 사람들을 본다”고 말한다. 과연 칭찬일까?

최윤희 전 합참의장·예비역 해군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