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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허씨 시조는 인도인? 게놈으로 혈통의 비밀 밝혀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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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해서 지금의 모습이 됐을까. 과거 이런 근원에 대한 질문과 해법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영역이었다. 어딘가 동굴이나 무덤 속에서 발굴된 뼈와 유물 등을 통해서 작게는 민족, 크게는 인류가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짐작했다. 특히 국내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이 이공계열이 아닌 인문·사회과학 계열로 분류된 이유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고고학과 인류학마저도 바꿔놓고 있다. DNA와 게놈(유전체) 분석이라는 첨단 바이오 과학의 틀을 통해 고인류와 현생인류의 기원을 염기서열 단위까지 들여다보는 세상이 됐다. 게놈은 이제 지구상에 살아 있는, 그리고 과거 살아있었던 모든 것의 비밀을 풀어놓을 태세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페보
멸종된 고인류 염기서열 밝혀내
DNA 증폭하는 PCR기술 발달로
고인류 뇌세포, 미니 형태 복원도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반테 페보 교수. 그는 고유전체학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다. [EPA=연합뉴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반테 페보 교수. 그는 고유전체학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다. [EPA=연합뉴스]

스반테 페보(67). 이달 초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단독 수상자로 선정된 스웨덴 출신 진화유전학자다. 1997년부터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유전학 분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고유전체학’(paleogenomics)의 창설자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도 2015년 출간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로 비교적 잘 알려졌다.

고대 이집트 미라서 DNA 추출

페보는 대학원생 시절이던 1981년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DNA를 추출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독일 네안더 계곡에서 발견된 뼈를 통해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유전체)까지 해독했다. 또 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한 손가락뼈에서 DNA를 추출, 뼈의 주인공이 또 다른 고인류라는 것을 밝혀냈다. 데니소바인 발견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를 그린 노벨위원회의 자료 그래픽.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를 그린 노벨위원회의 자료 그래픽.

페보는 현생 인류가 이미 오래전 지구상에서 사라진 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과 DNA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냈다. ‘순종’ 호모 사피엔스는 없었다. 그는 노벨상 선정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인류와 유럽 등지에서 수만 년 동안 공존했다”고 말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사실상 멸종시켰다”는 적어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인 셈이다. 노벨위원회는 페보를 멸종한 호미닌(hominins·사람아족)의 게놈과 인류 진화에 관한 발견의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유전체학은 멸종된 종의 유전체 정보를 재구성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다. 또 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은 고DNA에 대한 분석을 고고학 및 인류학적 증거와 교차검증함으로써 인류사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정립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둘 모두 고DNA가 연구대상이다. 문제는 수만~수십만 년 된 고 DNA가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오래된 뼈에서 시료를 채취할 때 남아있는 DNA 자체가 극히 적은 데다, 미생물 등의 DNA가 섞여 분석이 어렵다.

페보 박사는 이렇게 오래되고 오염된 시료 속에서 원하는 DNA를 골라낼 수 있었다. 이후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술적 발전은 고DNA 연구를 더욱 가속했다. 첫째가 고DNA의 양을 급격하게 증폭시킬 수 있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시료의 유전체 전체를 단시간에 모두 분석하는 전장유전체 염기서열분석(whole genome sequencing)이 가능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유전체 해독의 시간과 비용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게놈 분석을 통해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가설이 증명되고, 무엇이 가짜 과학인지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고인류학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

게놈 분석을 이용하면 전설의 영역으로만 남아있는 혈통의 비밀도 밝혀낼 수 있다.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김해 허씨의 시조 허황옥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속 DNA를 비교 분석하는 방법이다. 박종화 UNIST 생명공학과 교수는“아직 국내 학계에서는 고고학이 게놈과 같은 과학적 분석과 융합 연구하는 풍토가 드물다”며 “연구비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허황옥의 전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현대 생명과학은 게놈 분석을 넘어 수십만 년 전 DNA를 이용해 고인류의 뇌를 미니뇌 형태로 복원하는 데까지 진화하고 있다. 줄기세포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사람의 DNA 중 신경세포 발달과 관련한 유전자 부위를 고인류의 DNA에 맞게 바꾸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아직 게놈 분석을 통한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는 갈 길이 멀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페보 박사의 연구로 고인류와 현생인류 진화의 비밀이 다 밝혀진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유전체 분석 기술 덕분에 고인류학 연구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현재 분석 기술로는 아직 고대인 유전체를 완전히 해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뒤집어 얘기하면 향후 분석기술이 발전할수록 양적으로 질적으로 옛 유전자의 비밀도 더 많이 풀린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