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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DNA’ 이식받은 日아이돌…“K팝 팬덤 문화까지 닮아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16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케이콘 2022 재팬'에는 4만1000여명의 현지 K팝 팬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사진 CJ ENM

지난 14~16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케이콘 2022 재팬'에는 4만1000여명의 현지 K팝 팬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사진 CJ ENM

지난 14~16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케이콘(KCON) 2022 재팬’ 공연에는 한국인 멤버가 한 명도 없는 일본 그룹 4팀(INI·OCTPATH·JO1·NiziU)이 무대에 오르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이들 그룹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일본 그룹이 왜 K팝 공연에 출연하나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임희석 CJ ENM 음악콘텐츠본부 IP사업국장 인터뷰 #"K팝 느낌에 현지팬들 열광…퀄리티 요구도↑" #"日서 주류는 아직…시장성 있는 어디든 갈 것"

하지만 이들의 무대를 보면 K팝 특유의 사운드부터 칼군무 등 여러모로 ‘K팝스러움’이 묻어나는 걸 알 수 있다. 11인조 그룹 INI(아이엔아이)는 자신들의 일본어 곡 ‘패스워드(Password)’를 한국어 가사로 바꿔 불렀고, 8인조 일본 그룹 OCTPATH(옥토퍼스)의 한 멤버는 “저희 이름을 기억해주세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지난 15일 '케이콘 2022 재팬' 무대에 오른 11인조 그룹 JO1(제이오원)은 Mnet과 정식 계약을 거쳐 한일 공동으로 제작된 '프로듀스 101 재팬' 시즌1을 통해 데뷔한 그룹이다. 사진 CJ ENM

지난 15일 '케이콘 2022 재팬' 무대에 오른 11인조 그룹 JO1(제이오원)은 Mnet과 정식 계약을 거쳐 한일 공동으로 제작된 '프로듀스 101 재팬' 시즌1을 통해 데뷔한 그룹이다. 사진 CJ ENM

지난해 방영된 '프로듀스 101 재팬' 시즌2를 통해 결성된 일본 그룹 INI(아이엔아이)가 지난 14일 '케이콘 2022 재팬' 첫째날 레드카펫에서 K팝 아이돌식 '손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CJ ENM

지난해 방영된 '프로듀스 101 재팬' 시즌2를 통해 결성된 일본 그룹 INI(아이엔아이)가 지난 14일 '케이콘 2022 재팬' 첫째날 레드카펫에서 K팝 아이돌식 '손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CJ ENM

한국 가수들이 J팝의 영향을 받던 시절을 지나 K팝 색채가 일본 음악시장을 물들이는 격세지감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위 그룹들의 탄생 배경에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추진한 K팝 시스템의 세계화·현지화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9인조 걸그룹 NiziU(니쥬)는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에서 기획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팀이고, JO1(제이오원)과 INI는 한일 공동으로 제작된 ‘프로듀스 101 재팬’(각각 시즌 1·2)을 거쳐 탄생했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을 일본에 수출한 CJ ENM은, 일본 연예기획사 요시모토흥업과 합작 기획사(라포네엔터테인먼트)까지 설립해 JO1과 INI의 활동을 기획·관리하고 있다. ‘프로듀스 101 재팬’ 시즌2에서 아깝게 탈락한 참가자들로 꾸려진 OCTPATH 등 일명 ‘파생 그룹’까지 탄생한 걸 보면, 일본을 공략한 CJ ENM의 K팝 시스템 수출은 적잖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

라포네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해 CJ ENM 소속 아티스트 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임희석 CJ ENM 음악콘텐츠본부 IP사업국장은 “K팝만이 지니는 총체적인 느낌, 이른바 ‘K팝 DNA’에 일본 시장이 열광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일본의 팬덤 문화까지 한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케이콘 2022 재팬’ 마지막 공연 준비가 한창인 현장에서 임 국장과 만나 일본 내 K팝 인기의 현주소와 전망에 대해 들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만난 임희석 CJ ENM 음악콘텐츠부 IP사업국장은 "국내 음악 시장이 워낙 작기 때문에 CJ뿐 아니라 많은 한국 기업들이 '살기 위해' 세계로 나갔다. 그 덕분에 세게 음악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에 앞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CJ ENM

지난 16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만난 임희석 CJ ENM 음악콘텐츠부 IP사업국장은 "국내 음악 시장이 워낙 작기 때문에 CJ뿐 아니라 많은 한국 기업들이 '살기 위해' 세계로 나갔다. 그 덕분에 세게 음악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에 앞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CJ ENM


Q: 일본에서의 K팝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말해 달라.  
A: 마치 K팝이 일본 음악시장을 잠식한 것처럼 보도되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K팝을 열성적으로 소비하는 ‘찐팬’들이 늘고 있긴 하지만, K팝이 보편적·대중적으로 확장된 건 아니다. 일본 음악시장은 다양성이나 규모 면에서 생각보다 훨씬 크다.
다만 K팝만의 트레이닝 시스템에서 나오는 칼군무, ‘헤메스’(헤어·메이크업·스타일) 등 소위 ‘K팝 DNA’가 일본 시장에서 갖는 차별화 포인트는 분명 존재한다. 이 시스템을 일본에 도입해보니 현지 팬들에게 더 크게 소구되는 흐름이다. 최근에는 일본 팬들이 한국식 팬덤 문화까지 따라가고 있다. 과거 일본 팬들은 조용히 앉아서 응원하는 문화였다면, 요즘에는 자신들의 요구를 기획사에 적극적으로 전달한다. 콘텐트가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콘서트 DVD를 발매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식이다.

Q: 이른바 ‘K팝 DNA’, 팬들이 원하는 수준의 퀄리티를 갖추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나.
A: 음악 작업부터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대부분의 작업을 한국 스태프들이 담당한다. 멤버들이 앨범을 준비할 때마다 한국에 들어오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출국이 어려웠을 때는 원격으로 디렉팅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국 아이돌을 프로듀싱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프로듀스 101 재팬’에 참가한 멤버들은 기본적으로 K팝을 좋아하던 친구들이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위한 고단한 과정도 잘 수용하는 편이다.

지난해 방영된 Mnet '걸스플래닛 999 : 소녀대전'으로 데뷔한 9인조 한·중·일 다국적 걸그룹 케플러(Kep1er)는 데뷔곡 'WA DA DA'로 한국 여자 아이돌 데뷔곡 역대 최단기간 일본 레코드협회 '골드' 인증을 받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진 CJ ENM

지난해 방영된 Mnet '걸스플래닛 999 : 소녀대전'으로 데뷔한 9인조 한·중·일 다국적 걸그룹 케플러(Kep1er)는 데뷔곡 'WA DA DA'로 한국 여자 아이돌 데뷔곡 역대 최단기간 일본 레코드협회 '골드' 인증을 받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진 CJ ENM

K팝 아이돌을 꿈꾸는 해외 Z세대도 늘고 있다. CJ ENM이 기획한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 999: 소녀대전’(Mnet)을 통해 데뷔한 그룹 케플러(Kep1er)의 일본인 멤버 마시로·히카루 역시 어릴 적부터 한국 아이돌을 꿈꾼 경우다. 케이콘 기간 짬을 내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한국 드라마(‘드림하이’)를 보고, K팝 아이돌을 꿈꾸게 됐다. 데뷔를 위한 과정이 무척 힘들지만 그만큼 멋있어 보였다”(마시로)고 말했다. 마시로는 직접 K팝 아이돌로 데뷔해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지만, 후회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2NE1을 보며 꿈을 키웠다는 히카루는 “해외 팬들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다국적 그룹인 케플러만의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데뷔한 아이돌을 수출하는 게 아닌, 일본 현지에 K팝 체계를 이식하는 일이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더구나 일본 아이돌 업계는 유독 폐쇄성이 짙고, 아이돌 문화도 한국과 다르기로 유명하다. 임 국장은 “일본은 음악 산업 인프라나 밸류 체인이 이미 견고하게 잡혀 있기 때문에 현지 사업자를 잘 만나는 게 중요했다”고 돌이켰다.

Q: 요시모토흥업과 합작한 이유는.
A: 일본은 시장성 높은 지역이지만, 일본 내수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 역량은 우리에게 부족한 상황이었다. 반대로 요시모토흥업은 K팝 DNA를 탑재한 콘텐트 제작 역량이 부족했다. 각자 부족한 부분을 서로 메꿔줄 수 있기에 역할 분담도 명확하게 됐고, 제대로 시너지가 날 수 있었다.

Q: 지난 몇 년 동안은 코로나19로 인한 영향도 컸을 것 같다.
A: 과거에는 콘텐트 제공자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했는데,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팬들이 자발적으로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수용하는 쪽으로 소비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도 잘 모르는 작은 기획사의 아티스트들까지 일본 팬들이 촘촘하게 꿰고 있을 정도로 (소비되는 K팝 아티스트) 폭이 넓어졌다.

임희석 CJ ENM 음악콘텐츠본부 IP사업국장. 사진 CJ ENM

임희석 CJ ENM 음악콘텐츠본부 IP사업국장. 사진 CJ ENM


Q: 국내 대형 기획사들의 K팝 현지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A: 앞으로 K팝 산업이 가야 할 하나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다만, 오디션을 통해 데뷔시키는 방식이 일본에서 범람하고 있는 부분은 우려스럽다. 유사한 시도가 반복되면 서로 충돌이 날 수도 있고 시장이 일찍 식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균형을 맞출 필요성을 느낀다.

Q: K팝의 해외 현지화를 위해 다른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A: 일본의 성공 사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든 현지화 시도를 추진할 예정이다. (예컨대 ‘프로듀스 101’ 동남아시아 버전도 나올 수 있는 건가?) 사업성이 있다면 안할 이유가 없다. 케이콘을 개최하는 식으로 사업 기반을 만들어 놓고, 시장이 충분히 무르익으면 주저 없이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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