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핵 써도 프랑스 안 쓸 것"…절실한 우크라 입장은 무시됐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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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무기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더라도 프랑스는 핵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벤 윌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마크롱 대통령이 전략을 노출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좌관은 구체적인 대응계획을 밝히지는 않은 채,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서방국가들은 핵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방국가들 입장에서는 핵전쟁에 끌려들어 갈 가능성을 낮추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억제효과가 저하되면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핵무장 국가 사이에서 비핵국가의 이익은 고려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52.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핵을 쓰겠다는 메시지를 내놓는 가운데 미국은 B-52를 유럽으로 보내 지난 16일 나토 동맹국과의 핵공유 훈련인 스테드패스트 눈에 참가시켰다. 미 공군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52.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핵을 쓰겠다는 메시지를 내놓는 가운데 미국은 B-52를 유럽으로 보내 지난 16일 나토 동맹국과의 핵공유 훈련인 스테드패스트 눈에 참가시켰다. 미 공군

억제는 ‘상대적 능력’뿐만 아니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의지’도 중요하다. 미국이 베트남과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크롱의 ‘핵무기 불사용’ 발언도 국내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핵무장 강대국의 여론은 비핵국가를 위한 핵무기 억제효과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25 전쟁과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6·25 전쟁, 유럽의 우려에 미국 스스로 ‘원자폭탄 불사용’을 천명

1950년 11월 30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중공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충격에 받은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들과의 질의 답변 과정에서 “원자폭탄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원폭 사용을 고려”라는 제목으로 세계 각국에 전파됐다.

유럽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미국이 한국 방어에몰두하느라 유럽 방어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소련을 자극해 유럽이 핵무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49년 8월 29일 원자폭탄 실험을 통해 이미 세계 2번째 핵무장 국가가 된 상태였다.

1950년 12월 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앞줄 왼쪽),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앞줄 오른쪽), 딘 애치슨 국무부 장관(뒷줄 왼쪽), 조지 마셜 국방부 장관(뒷줄 오른쪽)의 모습이다. 트루먼 도서관

1950년 12월 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앞줄 왼쪽),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앞줄 오른쪽), 딘 애치슨 국무부 장관(뒷줄 왼쪽), 조지 마셜 국방부 장관(뒷줄 오른쪽)의 모습이다. 트루먼 도서관

결국, 트루먼 대통령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원폭 불사용’을 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는 미·영 정상회담(50년 12월 4~8일)에서 ‘확전불가, 원자폭탄 사용불가’ 입장을 공식화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국, 공동성명에 “전쟁을 한반도로 제한하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50년의 애틀리 총리와 2022년의 마크롱 대통령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애틀리 총리의 전직 총리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미국은 최대의 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원자폭탄이 중공에게 얼마나 큰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 모르고, 스스로 위협을 제거해준 결과가 됐다. 정치·전략의 실패치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미·소는 ‘터키’와 ‘쿠바’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

62년 10월 14일, 미국의 U-2 정찰기가 쿠바에서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IRBM)을 포착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됐다. 10월 28일, 핵전쟁 위험성을 우려한 양측의 거래로 위기는 해소되었다. 소련은 쿠바에서 중거리 핵미사일 등을 포함한 공격무기를 철수했다. 미국도 쿠바 침공 포기를 공식 선언하였으며, 터키(튀르키예)에 배치된 중거리 핵미사일을 비공식적으로 철수했다.

미·소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튀르키예와 쿠바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핵무장 국가들이 앉은 테이블에 비핵국가의 이익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튀르키예와 쿠바의 안보에 직결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미·소는 당사국에 의견조차 물어보지 않았으며, 비밀주의와 일방주의로 일관했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대응을 위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제일 오른쪽)이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오른쪽에서 둘째) 등 군 지휘부와 회의하고 있다. CIA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대응을 위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제일 오른쪽)이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오른쪽에서 둘째) 등 군 지휘부와 회의하고 있다. CIA

62년 6월, 미국은 튀르키예와 협의해 15기의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 완료했다. 타격 목표는 모스크바와 동부 러시아 지역이었다. 미군 장성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총사령관이 지휘하되,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임무 개시 4개월 만에, 미국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소하려고 튀르키예 배치 중거리 핵미사일의 철수를 소련에게 약속했던 것이다.

62년 12월, 미국은 소련과의 합의사실을 숨긴 채 튀르키예에 중거리 핵미사일의 철수 얘기를 꺼냈다. 기술적으로 낙후해 군사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으며, 보완책으로 폴라리스 핵무기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잠수함과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04 전투기 배치를 제안했다. 튀르키예는 미사일 철수가 완료될 때(63년 4월 24일)까지도 미·소간에 비밀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다음 해가 되어서야, 그것도 소련의 정보 유출로 인지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양국 관계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마치 쳤다.

쿠바가 최초에 원한 것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입과 소련과의 동맹이었다. 하지만, 소련은 쿠바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다. 62년 4월, 소련은 중거리 핵미사일의 쿠바 배치를 결정하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미사일 배치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약 체결을 추진했다. 8월에 이르러, 양측은 조약 합의문까지 작성 완료했다. 하지만, 10월 28일을 정점으로 미·소 사이에 위기가 해소되자 조약은 없던 일이 됐다.

소련도 협상 과정을 쿠바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10월 28일, 피델 카스트로 쿠바 총리는 미·소의 합의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그는 합의 내용을 공식으로 전달하려는 주쿠바 소련 대사인 알렉산더 알렉세프의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하지만, 소련의 압력으로 중거리 핵미사일 등을 철수하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철수를 확인하는 사찰단의 수용 거부, 관타나모 기지 반환 요구 등을 통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핵무장 잠재력 확보’가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대책

역사는 핵무장 국가들 사이의 거래에서 비핵국가의 이익은 고려될 여지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이 ‘핵무장 잠재력 확보’를 위해 그동안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고 생각한다. 일본은 국제규범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미국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핵무장 잠재력을 확보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확장억제 강화’와 ‘한국형 3축 체계’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전자는 동맹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후자는 ‘핵은 핵으로’라는 기본 전제를 극복할 수 없다. 전술핵 재배치, 핵무기 공유, 자체 핵무장 등은 실현 가능성이 작고 감내해야 할 어려움이 심대하다. 핵무장 잠재력 확보는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고, 감내해야 할 어려움도 적다. 장기 기획·끈질긴 설득·담대한 협상 등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일본 롯카쇼무라의 핵재처리 시설. 연간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8t의 플루토늄을 생산한다. 일본은 반대하는 미국을 설득해 핵재처리 시설을 확보했다. 교도=연합

일본 롯카쇼무라의 핵재처리 시설. 연간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8t의 플루토늄을 생산한다. 일본은 반대하는 미국을 설득해 핵재처리 시설을 확보했다. 교도=연합

미래 대비의 핵심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 잠재력’ 확보는 당면한 북한의 핵 위협 억제에 기여하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억지와 억제=영어 ‘Deterrence’에 대해 학계에서는 억지(抑止)로 번역하지만, 국방부는 억제(抑制)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기고문에서는 ‘확장억제’ 등과 같은 고유명사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억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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