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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소행성을 저격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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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미국 연방 항공우주국(NASA)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첨단을 걷는 우주 탐색 작업을 몇십년간 꾸준히 시도하고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어 왔기 때문이다. 이미 1960년대에 달나라에 인간을 보내는 일을 이룩하였으며, 무인 우주선을 금성과 화성에 착륙시키고, 더 머나먼 목성이나 토성 근처까지도 보내어 그러한 세상의 모습을 지구에 전송하기도 하였다. 이제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일도 시도하지 않을까 추측을 한다.

그런데 일반인은 생각도 못했던 이상한 작업을 NASA에서 성공적으로 또 이루었다는 뉴스가 얼마전에 전해졌다. 무인우주선을 쏘아 머나먼 소행성에 명중시켰다는 소식이었다. 이 우주선은 지구에서 약 1100만㎞ 거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다이모포스’(Dimorphos)라는 자그마한 소행성을 정확히 들이받았다. 발사한지 무려 10개월 후였다. 골프 치는 사람들이 홀인원만 한번 해도 대단하다고 난리인데 이 우주선의 정교함은 정말 기가 막혔다. 그 결과로 다이모포스의 궤도가 미세하게 변경되었다.

소행성을 겨냥한 NASA의 우주선
머나먼 우주 공간을 지나 적중해
인류 ‘존재적 위기’에 대비한 업적
길고 크게 보는 여유와 능력 필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등 주요 행성들 외에도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더 작은 바위덩이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을 소행성이라 한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지구에서 하늘을 올려볼 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그중 가장 큰 케레스(Ceres)도 1801년에야 발견되었다. 더 발달된 현대적 망원경으로 관측해 본 결과는 우리 태양계에 무려 100만 개도 넘는 소행성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중 대부분은 금성과 목성의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에 있는데, 그 밖에 다른 지역에도 여기저기 있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천체들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궤도를 가진 소행성들도 꽤 있다. 비교적 작다고는 하지만 지구와 정면 충돌한다면 대재난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옛날에 지구상을 누비던 공룡들이 멸종한 것도 지구와 충돌한 소행성 때문이라는 것이 이제 정설이다. 이것은 약 6600만년 전 생긴 일인데 그때 공룡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동식물 중 4분의 3가량이 멸종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여러 지질학적 증거를 면밀히 검토한 과학자들은 그때 직경이 약 10~15㎞ 정도 되는 소행성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졌다고 추정한다. 그 충돌의 여파로 지구의 환경이 여러 가지로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그 소행성은 지구와 부딪치면서 분쇄되어 마치 거대한 화산에서 나오는 화산재처럼 전 세계에 퍼져서, 그 시기에 형성된 지층에는 특정한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그 옛날 일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연구이지만,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일이 또다시 일어난다면 전 지구의 생태계가 파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가 지금 염려하는 기후변화는 거기에 비하면 하찮은 일이다. 물론 어떤 소행성이 지구와 정면 충돌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하지만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그 위험은 극단적이다. 마치 세계적 핵전쟁과 비슷한 정도로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에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은 ‘존재적 위험’이라 분류한다.

이것을 곰곰이 생각하면 마구 짜증이 난다. 가능성은 아주 희박한 일인데 그 결과는 아주 비참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보통 재난처럼 거기에 대비한 보험을 들 수도 없고, 특별히 재수가 없거나 조심하지 않는 사람들만 몇몇 죽는 그런 사건도 아니므로 개인들이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다. 이러한 엉뚱한 위험에 대해서는 우리가 가진 과학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 대책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임무를 떠맡은 것이 NASA 및 그와 협업하는 미국의 연구기관들이다. 그들은 지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소행성들과 혜성들의 명단을 만들었으며, 그것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측하고 있다. 국제천문학연맹에서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소행성이 정말 지구를 향해 오고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핵 미사일을 쏘아서 지구에 떨어지기 전에 파괴해 버린다는 발상도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대안으로 제시된 아이디어는, 지구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소행성의 궤적을 잘 계산해서 그것을 아주 오래전에 약간만 틀어주어도 지구를 피해서 충분히 다른 방향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행성의 궤도를 어떻게 변경시키나? 돌을 던지듯이 우주선을 보내 소행성에 충돌하게 함으로써 가능하다. 그 구상을 이번에 성공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별 대단치 않은 일로 들릴지 몰라도 생각해보면 참으로 획기적인 업적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천체의 움직임을 변경시켰다. 천문학적 현상을 인간이 바꾼다는 것은 상상치 못했었다.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식으로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단 현실적으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관점이라도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넘어서 길게 본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때까지.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