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속된 표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련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기엔 이만한 단어를 찾을 수 없어서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와 김진태 강원지사가 제대로 ‘똥볼’을 찼다. 두 사람이 쏘아 올린 공이 금융시장에는 메가톤급 폭탄이 됐다. 의도했다기엔 충격이 일파만파고, 무식해서 용감했다기엔 녹다운된 시장이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영국 감세안, 세계 금융시장 요동 #레고랜드 사태로 한국 ‘돈맥경화’ #무모한 정치행보에 제물 된 시장
‘제2의 대처’를 꿈꿨던 트러스의 ‘똥볼’에 영국과 세계 금융시장은 홍역을 치렀다. 시장을 패닉으로 몰고 간 건 지난달 23일 트러스가 내놓은 450억 파운드(약 73조원) 규모의 감세안이다. 1972년 예산안 이후 가장 큰 감세 규모다. ‘작은 정부, 낮은 세금’이라는 신념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거둬들이는 세금을 줄이면, 정부 곳간은 빚을 내 채울 수밖에 없다. 빚을 더 내기엔 영국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영국 중앙정부 채무는 154%에 달한다. 게다가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국채 매각을 예고했다.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시장에 풀릴 국채 급증 우려에 채권값이 급락(채권 금리 급등)했다. 영국의 연기금이 직격탄을 맞았다. 가격 변동 폭의 몇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건 연기금은 채권값 급락에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 위기에 처했고, 자금 확보를 위해 해외 금융자산 매각에 나섰다. 트러스가 쏘아 올린 공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친 이유다.
영란은행은 국채 매각 계획을 유보하고 채권을 사들이며 진화에 나섰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돈줄을 죄며, 다른 쪽에서는 국채를 사들이며 돈을 푸는 ‘웃픈’ 상황이 연출됐다. JP모건은 트러스의 감세안으로 영국 연기금이 날린 돈만 1500억 파운드(약 24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시장에 상처만 남긴 채 감세안은 결국 철회됐다.
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트러스는 ‘44일 최단명 총리’란 불명예를 안고 지난 20일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 또한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개인적으로 ‘총리 재테크’에는 성공했다. 논란이 빚어졌지만 ‘44일 재직’에 매년 11만5000파운드(약 1억8700만원)의 총리 연금 수령자격이 생겨서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쏘아 올린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시장은 얼음 왕국이 됐다. ‘강원도의 힘’에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며 건설사와 증권사 부도설까지 흘러나온다. 시장이 요동친 건 강원도가 지급 보증한 채무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다.
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는 레고랜드 건설자금 조달을 위해 2020년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강원도가 해당 채권에 대한 지급 보증을 섰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강원도가 갚아준다는 의미다.
문제가 생긴 건 김 지사가 지난달 28일 GJC에 대해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최문순 전 지사 시절 추진했던 이 사업을 부정적으로 본 그가 혹여 강원도 곳간이 축날까 빚을 못 갚겠다고 배를 짼 셈이다. 지방정부, 국가가 담보한 빚도 떼일 수 있는 상황에 시장은 ‘멘붕’에 빠졌다.
ABCP와 기업어음(CP), 회사채 등 자금조달 창구는 얼어붙었다. 카드사와 캐피털 회사,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자금 조달 길이 막혔다. 기업이 은행으로 몰리고, 은행이 자금 확보를 위해 예금 금리를 높이고 은행채를 발행하면서 금리는 뛰고, 회사채 시장은 더 얼어붙고 있다.
레고랜드발 ‘돈맥경화’를 막기 위해 정부는 ‘50조원+α’ 규모의 시장 유동성 공급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내년 1월 GJC 보증채무를 갚겠다고 했다.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엔 늦은 듯하다. 정치인의 무모한 행보에 금융시장이 제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