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너만 기자냐’ ‘나만 기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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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팩플팀 기자

여성국 팩플팀 기자

언젠가 한 또래 기자가 회사에서 “너만 기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풀이 죽은 듯 고민이 많아진 그에게 “‘네가 기자냐’는 말을 들은 것보다 낫지 않냐”고 볼품없는 위로를 건넨 후회가 남아있다. “너만 기자냐”는 말은 언제 나올까. ‘너’가 고집스러워 보일 때다. 그 고집은 진실 추구나 권력 감시 같은 저널리즘 원칙을 고민하다 나온 것일 수 있다. 드물게는 아집과 편협함에서 나올 수도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거나 부적절한 타협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에게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동료나 후배가 ‘뻣뻣하게 군다’고 생각할 때다.

“네가 기자냐”는 말은 어떨까. 이런 말을 들으면 ‘기자란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저버릴 때 이 말을 들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쏟아지는 오보에 언론계는 이런 말을 들었다. 권력감시에 소홀하거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 듣는 말 이기도 하다. ‘네가 ○○냐’의 빈칸에 다른 직업을 넣어보면 어떨까. 정치인, 법조인, 교수, 교사, 공무원, 엔지니어 등이 자신의 직업윤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마주할 것이다. 아무리 ‘고인 물’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끼며 초심을 잠시라도 되돌아보지 않을까.

‘옳음’과 ‘정의’가 넘치는 시대, 자신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합뉴스]

‘옳음’과 ‘정의’가 넘치는 시대, 자신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부쩍 눈에 띄는 건 “너만(혹은 네가) 기자냐”는 물음보다 “나만 기자다”는 태도와 선언이다. SNS 시대, 자기 PR 시대의 영향일까. 이들은 “어떤 언론사는 보수적 혹은 진보적이라 진영 논리만 앞세운다”라거나 “모 언론사는 기계적 중립만 지키고 모 언론사는 정권에 따라 편향됐다”면서 ‘나만 옳고 정의롭다’는 태도를 보인다.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왜 그러냐”며 이를 드러내는 분들도 있다. 어디 기자뿐이랴. 정치인, 판·검사, 학자 등도 다르지 않다. 취재나 주장, 논리가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분야에서 ‘나만 옳다’는 식의 ‘정의 중독’ 증상을 보인다. 기자는 취재하고 기사 쓰는 대신 SNS로 미디어·사회 비평에 몰입하고 정치인은 상대를 악마화해 정쟁에 몰두한다.

박경리 작가는 유고시집에 수록된 ‘확신’이란 시에서 ‘진정 옳았다면 진작부터 세상은 낙원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라면서 ‘옳다는 확신이 죽음을 부르고 있다’고 썼다. 이어 ‘나치스의 가스실이 그러했고 스탈린의 숙청이 그러했고 중동의 불꽃은 모두 다 옳다는 확신 때문에 타고 있는 것’이라고 직시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메타뷰(meta-view)’의 태도를 갖는 것이 마음 건강의 열쇳말이라고 한다. ‘옳음’과 ‘정의’가 넘치는 시대, 메타뷰는 사회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해 보인다. 의심보다 확신을 앞세우진 않았는지, ‘나만 기자, 나만 ○○’이라 생각한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면 어떨까. 마침 걷기 좋은 늦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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