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범석의 살아내다

"죽음 문턱서 사람들이 본 건..." 암병원 의사 증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범석 서울대 암병원 교수

나는 고발한다. J’Accu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의 '살아내다' 칼럼 중.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의 '살아내다' 칼럼 중.

'살아내다’ 칼럼을 영상으로 재구성한 ‘살아내다 번외편-고민을 나눕니다’를 비정기적으로 내보냅니다. '살아내다'는 죽음을 통해 삶을 새롭게 보는 경험을 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서울대 암 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가 쓴 '"살고 싶어졌다"는 간절한 변심…삶은 죽음을 예단하지 못한다'(10월 28일 공개 예정)에 담긴 한 60대 폐암 환자의 사연, 그리고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김 교수만의 독특한 가치관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매일 말기 환자들의 ‘살기 위한 전쟁’을 목격하는 김 교수는 칼럼에서 그 누구도 예단하지 못하는 죽음에 관해 말합니다. 고통이 심해 늘 “빨리 죽게 해달라"던 60대 폐암 환자는 정작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자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유턴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한 건 무엇일까요? 영상과 글로 보세요.

살아가는 시간은 죽어가는 순간의 연속이자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또래들이 아무 고민 없이 대학에 갈 때 스스로 장례식장을 택했던 청년 최대영씨 등 장례지도사 20명이 '잘 보내는 일'에 대해 쓴『죽음이 삶에게 안부를 묻다』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문장을 읽기만 해도 갑자기 우울해지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모두 두려워서 멀리하고만 싶은 게 죽음이라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매일 죽음, 혹은 죽음의 문턱에 서서 살아내는 이들과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이 극한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 제멋대로 짐작합니다. 하지만 정작 죽음과 마주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오히려 죽음을 통해 삶의 깊이를 이해하게 되면서 위안을 받는다고 합니다.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된 삶이 무엇인지 가르침을 받는다는 거죠. 죽음의 눈으로 삶을 바라볼 때 삶은 더 생명력 넘치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실제로 말기 암 환자를 치료하는 종양내과 전문의인 김범석 서울대 암병원 교수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거라 생각하지만 때로는 환자가 의사를 치료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런 경험을 담은『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어떤 죽음은 분명히 아직 남아 있는 이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언젠가는 찾아올 '나의 죽음'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접하며 삶이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는 얘기일 겁니다.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도 결국 죽음을 기다리는 일밖에 남지 않은 말기 환자를 돌보는 한의사인 김은혜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연구교수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곤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지선 한동대 교수처럼 직접 죽음과 대면한 후 새 삶을 찾은 이도 있습니다. 스물세 살에 교통사고로 중화상을 입어 40번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을 이겨내고 말 그대로 두 번째 인생을 되찾은 그는 "죽음과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깜깜해지는 동굴이 아니라 환한 빛이 기다리고 있는 터널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가급적 죽음에서 멀찌감치 고개를 돌리라는 유무형의 압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비단 웰빙(잘 사는 것) 못지않게 웰다잉(잘 죽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서가 아니라, 매 순간순간 잘 살아가기 위해 죽음을 가까이하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10월 24일) 김범석 교수의 영상 칼럼을 시작으로 이번 금요일(28일)부터 새로운 칼럼 시리즈 '살아내다'를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죽음 문턱의 암 환자를 치료하는 김범석·김은혜 교수, 죽음을 수습하는 최대영 장례지도사와 무연고자 장례를 대행해주는 나눔과나눔의 김민석 팀장, 그리고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영케어러 문제를 실제 경험을 녹여 사람들에게 전하는 조기현 작가. 이들 6명의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가 담긴 '살아내다' 연재를 오는 28일부터 내보냅니다. 독자 여러분이  댓글로 상담을 요청하면 영상에 참여하는 필진이 다음 영상을 통해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아래는 김범석 교수와의 일문일답.

사후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나.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나는 거냐’고 묻는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임사 체험(Near-Death experience) 이런 것들은 연구가 많아요. 임사 체험이란, 요즘 의학 기술이 좋아지면서 환자가 거의 죽음 직전에 다다랐는데 심폐소생술로 심장이 갑자기 다시 뛰면서 죽음의 순간에서 유턴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되겠죠. 임사 체험을 하신 분들에게 몇 가지 공통적 특징들이 발견되는 거예요. 첫 번째는 굉장히 밝은 빛을 본다. 두 번째는 빛에 노출되면서 굉장히 평화롭고 사랑스럽고 안락한 느낌이 든다. 세 번째는 유체이탈, 그러니까 내가 붕 떠서 내 몸을 직접 바라본다. 직접 경험한 분들이 ‘임사 체험 후 내 삶이 180도 바뀌었다’ 이런 얘기를 하시기도 해요. 물론 ‘뇌에 산소가 적게 공급되면서 빚어지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런 경험을 통해 삶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는 걸 보면 ‘죽음의 순간이 끝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느냐’ 는 생각 정도는 해볼 수 있어요.
본인은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고 싶나. 
그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우리나라 임종 문화에서는 크게 세 가지를 꼽거든요. 첫 번째는 가족한테 짐 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암 같은 질병으로 인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은 것, 세 번째는 조금이라도 준비할 시간을 갖고 맞이하는 죽음. 다들 이걸 원하시는데 저도 똑같아요. 완화 의료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도 저부터 그런 임종을 맞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도 개선이나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의 연구를 통해 제가 맞고 싶은 죽음의 모습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를 원하는 거고요. 저는 그렇게 죽고 싶은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하면 마음이 좀 불편하더라고요.
심적으로 지치지 않는가. 
힘들죠. 특히 종양내과는 완치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돌아가시는 분들, 상태 안 좋은 환자를 보면 의료진으로서 심리적으로 지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 걸 번아웃(소진)이라고 하고요. 저도 그래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리 내가 힘들어도 환자분들이 더 힘들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우리 사회에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은지 그동안 내가 눈 감고 지낸 게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는가. 또 힘들 때는?
환자분들이 돌아가시고 나서 (유족들이) 찾아올 때요. 사실 굳이 찾아올 필요가 없는데 와주시는 거니까 감사하더라고요. 그다음은 월급날. 사람들이 의사라고 하면 고귀한 희생정신으로 일한다고 생각하는 데요. 어찌 보면 내 의학 기술을 이용해서 환자를 도와준 것뿐인데 월급이 또박또박 나와서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거. 그래서 저는 월급날 그냥 좀 좋더라고요. 반면 제도적 한계를 느낄 땐 그만두고 싶기도 해요. 몇백만 원짜리 고가 검사나 항암제는 보험 처리가 되거든요. 그런데 의사가 환자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아무리 전문적인 완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런 거에는 비용 지급이 굉장히 인색해요. 호스피스 완화의료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주요 선진국보다 아직 많이 뒤처져 있거든요. 좀 더 재원을 투입하면 우리도 더 나은 질의 죽음, 더 품위 있고 인간다운 임종을 맞이할 수가 있는데…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기억나는 환자가 있는지. 
기억나는 환자분들은 참 많은데요. 제 입장에서는 기억나는 환자보다 기억 안 나는 환자분들한테 더 마음이 쓰여요. 살아온 시간이 죽음으로 끝나고, 잊히고,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진다는 것.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거든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부분, 의미를 찾아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것들이 그냥 사라지니까요. 그러다 보니 진료를 하면서 이걸 잊지 않기 위해 틈날 때마다 글을 쓰기도 하고, 일기에 남겨놓기도 하고, 또 연구하면서 데이터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인생이 잊히지 않고 누군가에게 계속 전달되고 이어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