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132억 ‘우주’가 열렸다…작품 30여점 볼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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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S2A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된 ‘우주’. [뉴시스]

S2A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된 ‘우주’. [뉴시스]

“나는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1913~1974)가 1963년 4월 ‘달항아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에 대해 쓴 글이다. 그는 소박한 도자의 빛과 형태에서 한국적 추상화의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의 화폭에 이를 실현하는 데 열정을 바쳤다. 시대를 뛰어넘는 한국적 정서와 현대적 감각이 그 안에 녹아 있다.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다 됐지만, 한국미술을 말할 때 ‘김환기’란 이름이 계속 소환되는 이유다.

S2A 전시에 나온 김환기 작품. [뉴시스]

S2A 전시에 나온 김환기 작품. [뉴시스]

평소 김환기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면, 지금이야말로 발품을 팔아볼 기회다. 최근 김환기의 그림 30여 점이 서울에서 열리는 두 전시에 같이 나왔다. 서울 영동대로 S-타워의 문화예술공간 S2A에서 열리는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이하 ‘환기의 노래’) 전과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의 ‘수화(樹話)와 우성(又誠), 70년 만의 재회’(이하 ‘수화와 우성’)전이다. 두 전시 모두 무료다.

국내 12인 컬렉터들의 소장품 17점으로 구성된 S2A의 ‘환기의 노래’는 지난 14일 개막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된 김환기 ‘우주’가 낙찰 이후 처음으로 이 전시에 나왔다. ‘우주’는 한국 미술품 중 첫 100억 원대 그림이며 현재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김종영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김종영미술관]

김종영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김종영미술관]

S2A는 지난 7월 개관전으로 일본 인기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선보인 곳으로 글로벌 세아그룹의 김웅기 회장이 그룹 사옥에 마련한 문화공간이다. 김 회장은 개관전 때 자신이 2019년 ‘우주’를 낙찰받은 당사자임을 처음 알렸다. 그동안 미술계에선 전혀 다른 인물이 “내가 ‘우주’를 낙찰받았다”고 말해온 터라 파장이 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김 회장 소장품은 ‘우주’와 ‘섬’(1960년대) 등 두 점이다. 나머지 15점은 “미술품을 함께 보자”는 뜻에 공감해 전시에 무상으로 내준 다른 컬렉터 11인의 소장품이다.

전시작 17점은 1950년대 달항아리부터 1970년대 전면 점화까지 김환기의 전 시기를 아우르고 있다. 1950년대 작품 ‘항아리와 매화’가 조선 문인화를 연상시키는 소재라면, 1970년대 점화는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점과 선·면의 순수한 조형요소로 한국의 서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환기 회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전면 점화는 모두 7점(캔버스 5점, 종이 2점)이 나왔다.

김종영미술관 전시에 나온 김환기의 ‘무제’, 1958. [사진 김종영미술관]

김종영미술관 전시에 나온 김환기의 ‘무제’, 1958. [사진 김종영미술관]

지난 13일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 앞에 선 김 회장은 “낙찰받은 이후 줄곧 이 작품을 일반인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최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과 더불어 미국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미술품 컬렉터’에 포함됐다.

1971년 작이며 푸른색 전면 점화인 ‘우주’는 별도 전시실에 단독으로 걸렸다. 투명한 듯한 푸른색 점이 소용돌이 패턴을 이루며 캔버스에 스며든 모습이다. 초대형 캔버스에 빛나는 별처럼 알알이 박힌 푸른색 점은 광활한 우주를 연상케 한다. 김환기가 유화물감과 서예 붓을 함께 쓰며 유화를 수묵화의 발묵기법으로 작업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일·월 휴관.

김종영미술관과 환기미술관이 함께 기획한 ‘수화와 우성’전은 각각 회화와 조각에서 20세기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추상 작업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함께 살핀다. ‘수화’는 김환기, ‘우성’ 김종영(1915~82)의 호다.

두 작가는 서울대 미술학부에서 2년간 같이 교수로 재직했고, 김환기가 6·25 동란 중 창원 고향 집으로 피난 온 김종영을 만나러 왔다는 기록이 있다. 김종영미술관 박춘호 학예실장은 “김환기는 만년에 절정에 이른 추상미술 기법인 ‘전면 점화’에 집중했고, 김종영은 ‘불각(不刻)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불각’은 재료에 이미 담겨 있는 상의 본체를 통찰해 본질적인 추상을 표현한다는 의미다.

연대별로 배치된 두 작가의 글과 그림은 ‘세계 속의 한국미술’을 고민한 예술관을 좀더 깊이 보여준다. 김환기 작품은 편지 2점, 드로잉·콜라쥬·과슈·유화 등 총 21점을, 김종영은 조각 3점과 그림 등 총 19점을 전시한다. 전시는 11월 13일까지. 월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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