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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봉쇄한 리창 2인자로, 서열 3위 자오러지는 고향 후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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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진핑 3기를 이끌어갈 중국 최고지도부 명단이 23일 공개됐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국무원 총리는 리창(63) 상하이시 서기가 맡을 예정이다. 노동자 출신인 리창은 17세 때 농기계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저장성 지방 도시를 돌며 행정과 당 경력을 쌓았다. 시 주석과 첫 인연을 맺은 건 2002년 푸젠성 당서기였던 시 주석이 저장성 당 부서기로 부임하면서다.

충성도 높은 지역 책임자도 대거 발탁

시 주석은 이후 2003~2007년까지 저장성 당서기를 지냈다. 이 시기 리창은 시 주석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그가 시 주석의 ‘대집사’로 불리는 이유다. 저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는 시 주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신임을 쌓았다. 리창은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상하이 당서기로 영전했다. 상하이 당서기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하는 ‘1순위 티켓’이었다. 순조로운 듯 보였던 리창의 행보는 지난 3~5월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상하이 봉쇄로 결정타를 맞았다. 문책론이 비등했지만 시 주석은 그를 내치지 않고 오히려 2인자 자리에 앉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기존 멤버 중 살아남은 2인은 자오러지(65)와 왕후닝(67)이다.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오러지는 시 주석의 인사와 반부패 사업을 대행한 ‘고향 측근’이다.

시진핑 1기 때 자오러지는 ‘인사 설계자’로 활약했다. 중앙조직부장을 맡아 정부 부처, 국영기업 등의 4000여 명 인사를 결정했다. 자오러지는 후진타오와 장쩌민 전 주석 세력을 밀어내고 시 주석의 친위 세력을 등용해 ‘시진핑 천하’를 설계했다.

시진핑 2기 때 자오러지는 반부패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그의 ‘칼끝’은 공산당 엘리트와 고위급 인사를 향했다. 2018~2020년 중국 당국은 반부패 운동의 일환으로 해외 도피자 3848명을 잡아들이고 ‘불법 자금’ 100억 위안(약 1조9800억원)을 환수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과 같은 산시성 출신인 자오러지는 시진핑 아버지의 고향에 기념관까지 건립해 시 주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열 4위인 왕후닝(67)은 시 주석의 ‘중국몽’을 설계한 학자 출신의 정치인이다. ‘시 황제의 사상 책임자’ ‘베이징 크렘린의 추기경(Cardinal)’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중국 지도자들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왕후닝은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에 모두 관여했다. 지난해 12월 워싱턴포스트는 왕후닝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명하기도 했다.

서열 5위 차이치(67)도 ‘시자쥔’(시진핑 사단)의 대표 주자다. 저장성 시절의 옛 부하들인 ‘즈장신쥔(之江新軍)’으로 분류되는 차이치는 저장성과 푸젠성 모두에서 시 주석과 인연이 있다.

그는 2016년 베이징 시장에 깜짝 발탁되기도 했다. 당시 그가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나 후보위원도 아니면서 수도 베이징 시장으로 발탁된 것이 화제였다. 차이치는 2017년 시 주석을 향해 “영명한 영수”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시 주석에 대한 굳건한 충성심을 보여왔다.

서열 6위인 딩쉐샹(60)은 시 주석이 2007년 3월 상하이 서기로 부임했을 때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당시 7개월간 손발을 맞춰 일하며 딩쉐샹은 시 주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치국 위원 24명 중 경제전문가 ‘1’

딩쉐샹은 소탈한 ‘만둣집’ 이벤트의 기획자로도 알려져 있다. 집권 초기였던 2013년 시 주석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허름한 만둣집을 방문해 일반 시민 틈에 섞여 식사하며 민생 행보를 벌였다. 이런 행동으로 시 주석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당시 시 주석의 바로 왼쪽에 앉았던 인물이 딩쉐샹이었다. 2017년 중앙판공청 주임 자리에 오른 딩쉐샹은 지금까지 시 주석을 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20기 정치국 위원(24명)

20기 정치국 위원(24명)

리시(66)는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이 군사를 출병한 곳에서 공직 생활을 하며 시 주석의 눈에 들었다. 시중쉰의 동료인 리쯔치의 비서 역할을 한 리시는 자연히 시진핑의 눈에도 띄었다. 리시는 중국의 동서남북을 모두 거쳤다. 삼국지로 치자면 위·촉·오 세 나라에서 모두 고위 관리를 거친 셈이다. 홍콩 명보는 리시에 대해 “험지를 돌아 ‘다크호스’로 떠오른 간부”라고 평했다.

20기 정치국원 24명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2명이 지역 당서기 또는 시장이었다. 19기에서는 5명에 불과했다. 시 주석이 중앙집권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충성도가 높은 지역 책임자를 대거 끌어들인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 정치국원 수도 늘었다. 중국 군사위 부주석이 1명에서 2명이 됐고,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함께 처음으로 천원칭(陳文淸) 국가안전부장이 포함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정보원장이 최고지도부에 들어간 격이다.

경제 분야에선 시 주석의 경제 책사로 불렸던 류허(劉鶴) 부총리가 빠지고 대신 허리펑(何立峯)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주임이 발탁됐다. 허 주임은 시 주석의 최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과도 깊이 연관돼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정치국원 중 경제 전문가는 단 1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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