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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대집사' 리창이 총리…고향 측근 자오러지 '넘버3' [新 상무위 진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진핑 3기를 이끌어갈 중국 최고 지도부의 명단이 공개됐다. 시진핑 측근으로 모두 채워져 ‘현명한 이를 등용함에 친하다고 피하지 않는다(舉賢不避親)’는 시 주석의 인사원칙이 관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화권에서는 “상무위원회가 아닌 시진핑 실무 집행부”라는 혹평도 나온다.

23일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중공) 20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중전회)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가운데 중공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 7명이 확정됐다.

이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뒤를 이어 리창(李强) 상하이 서기, 자오러지(趙樂際) 현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왕후닝(王滬寧) 현 중앙서기처 서기, 차이치(蔡奇) 베이징 서기, 딩쉐샹(丁薛祥) 중앙판공청 주임, 리시(李希) 광둥성 서기가 단상에 올랐다. 등장 순서는 곧 향후 5년간 중국 지도부의 권력 서열이다.

시진핑 3기 상무위원 명단이 공개됐다. 리창(왼쪽 위), 자오러지(오른쪽 위), 왕후닝(왼쪽 가운데), 차이치(오른쪽 가운데), 딩쉐샹(왼쪽 아래), 리시(오른쪽 아래)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3기 상무위원 명단이 공개됐다. 리창(왼쪽 위), 자오러지(오른쪽 위), 왕후닝(왼쪽 가운데), 차이치(오른쪽 가운데), 딩쉐샹(왼쪽 아래), 리시(오른쪽 아래) 로이터=연합뉴스

가장 관심을 모았던 국무원 총리는 리창(63) 상하이시 서기가 맡게 됐다. 노동자 출신인 리창은 17살 때 농기계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저장(浙江)성 지방 도시를 돌며 행정과 당 경력을 쌓았다.

리창이 시 주석과 첫 인연을 맺은 건 2002년 푸젠(福建)성 당서기였던 시 주석이 저장성 당 부서기로 부임하면서다. 시 주석은 이후 2003~2007년까지 저장성 당서기를 지냈다. 이 시기 리창은 시 주석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외부 행사마다 시 주석은 리창을 가장 많이 대동했다. 그가 시 주석의 ‘대집사’로 불리는 이유다. 저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는 시 주석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신임을 쌓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저장성장과 장쑤성 서기를 거친 리창은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상하이 당서기로 영전했다. 상하이 당서기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하는 ‘1순위 티켓’이었다. 순조로운 듯 보였던 리창의 행보는 지난 3~5월 코로나19 창궐로 상하이를 봉쇄하며 결정타를 맞았다. “지옥에나 떨어지라”며 문책론이 비등했지만 시 주석은 그를 내치지 않고 오히려 2인자의 자리에 앉혔다.

살아남은 2인, '설계자' 자오러지와 왕후닝  

기존 멤버 중 살아남은 2인은 자오러지(65)와 왕후닝(67)이다.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맡게 된 자오러지는 시진핑의 인사와 반부패 사업을 대행한 '고향 측근'이다.

시진핑 1기 때 자오는 '인사 설계자'로서 활약했다. 중앙조직부장을 맡아 정부 부처, 국영기업 등 중앙이 관리하는 4000여명의 핵심 인사를 결정했다. 자오는 후진타오와 장쩌민 전 주석 세력을 밀어내고 시 주석의 친위 세력을 등용해 ‘시진핑 천하’의 씨를 뿌렸다.

시진핑 2기 때 자오는 반부패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그의 ‘칼 끝’은 공산당 엘리트와 고위급 인사를 향했다. 2018~2020년 중국 당국은 반부패 운동의 일환으로 해외 도피자 3848명을 잡아들이고 ‘불법 자금’ 100억 위안(약 1조9800억원)을 환수했다고 주장했다. 더 디플로맷은 “해외 도피자를 귀국시키는 작전은 범죄자도 대상이지만 반체제 인사와 정적들을 대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과 같은 산시성 출신인 자오는 시진핑 아버지의 고향에 기념관까지 건립해 시 주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열 4위인 왕후닝(67)은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을 설계한 학자 출신의 이데올로기 전문가로 정협을 맡아 향후 통일전선을 총괄하게 됐다. ‘시 황제의 사상 책임자(Thinker-in-chief)’, ‘베이징 크렘린의 추기경(Cardinal)’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중국 지도자들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왕은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마련에 모두 관여했다. 지난해 12월 워싱턴포스트는 왕후닝을 두고 동양과 서양의 이데올로기 충돌을 배후에서 주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명하기도 했다.

시진핑 사단 맏형 차이치, 만두집 이벤트 기획한 딩쉐샹

서열 5위 차이치(67)도 '시자쥔'(시진핑 사단)의 맏형이다. 저장성 시절의 옛 부하들인 '즈장신쥔'(之江新軍)으로 분류되는 차이치는 저장성과 푸젠성 모두에서 시 주석과 인연이 있다.

그는 2016년 베이징 시장에 깜짝 발탁되기도 했다. 당시 그가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나 후보위원도 아니면서 수도 베이징 시장으로 발탁된 것이 화제였다. 차이치는 2017년 시 주석을 향해 "영명한 영수"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시 주석에 대한 굳건한 충성심을 보여왔다.

딩쉐샹(60)은 시 주석이 2007년 3월 상하이 서기로 부임했을 때 시진핑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당시 7개월간 손발을 맞춰 일하며 딩은 시진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딩은 소탈한 '만두집' 이벤트의 기획자로도 알려져 있다. 집권 초기였던 2013년 시 주석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허름한 만두집을 방문해 일반 시민 틈에 섞여 식사하며 민생 행보를 벌였다. 이런 행동으로 시 주석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당시 시 주석의 바로 왼쪽에 앉았던 인물이 딩쉐샹이었다. 2017년 중앙판공청 주임 자리에 오른 딩은 지금까지 시 주석을 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리시(66)는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이 군사를 출병한 곳에서 공직 생활을 하며 시 주석의 눈에 들었다. 시중쉰의 동료인 리쯔치의 비서 역할을 한 리시는 자연히 시진핑의 눈에도 띄었다.

리시는 중국의 동서남북을 모두 거쳤다. 삼국지로 치자면 위ㆍ촉ㆍ오 세 나라에서 모두 고위 관리를 거친 셈이다. 홍콩 명보는 리시에 대해 “험지를 돌아 ‘다크호스’로 떠오른 간부”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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