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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화약고' 유동규 입…"이재명 죗값" 폭탄 터뜨린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일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유동규(53)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입’이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화약고가 됐다.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의혹 수사가 시작된 지난해 9월 압수수색 당시 창밖으로 휴대전화를 던진 이래 지난 1년간 구속 수사 및 재판을 받으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해선 입을 열지 않은 채 ‘의리’를 지켜왔다. 그랬던 유 전 본부장이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대선 경선자금 8억원을 건넸다”고 폭로한 데 이어 “이재명이 명령한 죗값은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며 연일 폭탄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의 변심을 놓고 “이 대표와 측근들이 자신만 희생양 삼았다”는 배신감이 요인이라는 분석과 함께 더 잃을 것 없는 그의 폭로가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중앙포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중앙포토]

1. 주변에선 “‘나 혼자 뒤집어 썼다’ 배신감 컸다”

유 전 본부장의 변심을 극적으로 보여준 건 석방 다음날인 21일 언론과 인터뷰에서다. 그는 한국일보에 “김용이 20억 원 달라고 해서 7억 원 정도, 6억 원 정도 전달했다”며 “이재명 대표가 모를리가 있겠느냐”라며 이 대표를 대선자금 의혹의 중심으로 소환했다. 그러면서 “내가 벌 받을 건 받고, 이재명 명령으로 한 건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라고도 했다.

이 대표와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부원장 등이 ‘1원도 (받아) 쓴 적 없다’고 부인한 데 대해서 “돈을 요구해 가지고 실컷 받아쓸 때는 언제고 만난 적도 없다? 내가 유령을 만났나?”라며 “검찰에 다 이야기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사건의 축소판인 ‘위례 신도시 개발 비리’ 혐의(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로 추가 기소된 9월 26일부터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이때부터 변호인과 구치소 접견에서 달라진 태도를 보였고, 10월 들어선 변호인의 접견을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9월 19일만 해도 검찰의 조사 요구에 불응하다가 구치소에서 체포된 것을 고려하면 극적 변화였다.

유 전 본부장은 같은 날 중앙일보엔 “의리? (웃음) 이 세계는 그런 게 없더라. 내가 착각 속에 살았던 거 같다. 구치소에서 1년 명상하면서 깨달은 게 참 많다. ‘너무 헛된 것을 쫓아다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김용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김용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변호인단 중 한 인사를 지목하며 “내가 검찰에서 무슨 말 하는지 감시하러 온 가짜 변호사”라고도 했다. 해당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으로 민주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전력이 있다. 해당 변호사와 접견을 거부하면서 ‘민주당 측과 결별하고 내 할 말 하겠다’는 의도를 비친 셈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 대표와 정진상, 김용 등 그의 측근까지 지난 1년 ‘윗선 의혹’을 함구했지만, 위례 신도시 사건까지 추가 기소되며 사실상 자신이 주범으로 덮어쓰고 가야하는 상황에 억하심정이 커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 전 본부장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선 “내가 참 바보 같고 후회스럽다. 내 가족도 못 지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2. “김문기 몰랐다”는 이재명 태도에도 충격

2015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동규 전 본부장이 2015년 뉴질랜드 출장에서 김문기 전 개발1처장 함께 찍은 사진. 사진=이기인 국민의힘 성남시의원

2015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동규 전 본부장이 2015년 뉴질랜드 출장에서 김문기 전 개발1처장 함께 찍은 사진. 사진=이기인 국민의힘 성남시의원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가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을 “모른다”고 주장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최근 유 전 본부장은 주변에 “이 대표가 김문기를 모른다고 한 게 말이 안 된다”며 불쾌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검찰 수사를 받던 김 전 처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변호사 시절부터 김 전 처장을 알고 있었고, 10차례 이상 회의, 보고를 함께 했으며 해외 출장도 다녀온 관계로 파악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2015년 대장동 개발의 민간사업자가 선정되고, 수익 배분 구조를 설계할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김문기 팀장-유한기 본부장-유동규 사장(직무대리) 결재라인을 거쳤다. 이들은 남욱 변호사 등 민간사업자와 유착 관계로 수사를 받았는데 유 전 본부장을 제외한 두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 전 본부장 입장에선 이 대표와 측근 그룹이 ‘꼬리 자르기’를 한다고 느끼고, 부하 직원들이 사망하는 상황에 대해 회한이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 전 본부장은 인터뷰에서도 ‘시키는 대로 해서 후회된다’는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 마무리가 열흘 남았는데 (대장동) 사건 터지니까 이길 것 같은데 안달이 난 거다. 1주일도 안 된 휴대폰 버리라고 XX해가지고, 내가 휴대폰 버렸다가 난리가 나고. 쌓여 있는 게 너무 많아 울분이 안 풀린다"고 했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해 9월 29일 압수수색을 당하기 직전 정진상 실장과 김용 부원장과 통화했었다.

3. “유동규 ‘더 잃을 게 없다’ 심정…계속 터져 나올 것”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비리' 1심 속행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비리' 1심 속행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 전 본부장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검찰은 위례 신도시 개발 비리로 기소하며 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부패방지법이 유죄로 인정되면 위례 개발 수익 211억여원은 모두 국고로 몰수된다.

검찰은 대장동 사업 역시 부패방지법으로 추가 기소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위례 사건과 달리 대장동 사건에 적용된 배임 등 혐의는 피해자(성남도시개발공사 등)가 존재해 부패방지법 혐의 적용이 쉽지 않지만, 대장동 사건의 상징성과 여론을 고려해 ‘범죄로 챙긴 돈은 반드시 환수한다’는 선례를 만들기 위해서다.

유 전 본부장으로선 이미 받은 뇌물을 몰수·추징 당하는 건 물론이고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이 수익 배분을 약속한 700억원(뇌물약속 혐의)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는 인터뷰에서 “김용하고 정진상은 월급 300만원인데 (김용은) 여의도로 이사 가고, 정진상은 빚도 하나 없이 아파트 얻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가. 나는 남은 게 3,000만원이고 빚은 7,000만원”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대선 전에는 이 대표의 영향력이 컸지만, 대선에 패배하고 위례 추가 기소 등 혐의만 불어나는 데 유동규 입단속이 불가능해졌다”면서 “‘비밀을 지켜달라’고 해도 얻을 게 없는데 누가 따르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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