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밭 110억 사건 주범?…'피라미드식' 불법 도박 조직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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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피라미드 구조식 다단계 회사처럼 불법 도박 사이트를 8년 넘게 조직적으로 운영한 일당을 붙잡았다고 23일 밝혔다. 경찰은 해당 사이트에서 5조 7000억원대 불법 도박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경찰은 이 범행을 주도한 총책 A씨가 중국에 체류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검거하기 위해 중국 수사기관과 국제공조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A씨가 지난 2011년 4월 8일 전북 김제 금구면 소재 한 마늘밭에서 110억원가량이 묻혀 있다가 발견된 사건의 주범일 수 있단 가능성도 경찰의 확인 대상이다.

인천경찰청이 불법 도박 사이트를 8년간 조직적으로 운영한 일당 191명을 수사하면서 자금 세탁을 맡은 한 피의자의 주거지에서 현금 뭉치를 발견, 압수했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5만원권 현금 뭉치의 모습. 사진 인천경찰청 제공. 연합뉴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B씨(59) 등은 지난 2014년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 16곳을 운영하면서 655억원이 넘는 범죄수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B씨 등이 조직원들을 모아 도박 사이트 운영이나 수익금 인출 및 자금 세탁 등으로 역할을 나눠 범행을 체계적으로 저질렀다며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다. 경찰에 검거된 인원은 총 191명으로, 이 중 B씨 등 20명은 구속됐으며 회원 모집책 C씨(56) 등 171명은 불구속 입건돼 모두 검찰로 송치됐다.

이들의 범행은 마치 피라미드 구조식 다단계 회사처럼 이뤄졌다는 게 경찰 수사 내용이다. 경찰은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A씨가 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중국에 회사를 차려 도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서버를 관리하면 B씨 등 국내에 있는 일당이 이 도박 사이트를 관리했다. 이들은 또 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 곳곳에 사무실 36곳을 마련한 뒤 불법 성인 PC방 61곳을 차려 사이트 가입자들을 모았다.

경찰은 이들이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으로 발생한 수익금을 단계별로 차등을 둬 나눈 것으로 파악했다. 도박 수익금 중 12.7%가량은 A씨가 있는 중국 회사 몫이 됐고, B씨 등 운영 조직엔 10.3%, 모집책에겐 9.6%, 지역 내 매장엔 8.9%가량이 돌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돈을 환전하거나 인출하는 역할을 맡은 피의자의 경우 해당 금액의 5%가량이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됐다.

인천경찰청이 피라미드 구조식 다단계 회사처럼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일당 191명을 적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이들이 운영한 불법 성인 PC방의 모습. 사진 인천경찰청 제공. 연합뉴스

‘아이폰 사용 원칙’ 등 수사 대응 요령도 전파

경찰은 이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수사 대응’ 매뉴얼도 마련한 것으로 파악했다. A씨 등은 조직원들이 경찰에 체포되거나 압수수색을 받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일종의 행동 요령을 만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전파했다고 한다. 차량 블랙박스 기록을 수시로 초기화하게 하거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영문·숫자로 혼용하게 하고, 체포됐을 땐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한 보안 기능이 강한 휴대전화 ‘아이폰’ 기종을 사용할 것을 원칙으로 세우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이 지역 사무실 장소를 수시로 옮기게 하고, VPN(가설사설망)을 이용해 범죄 흔적을 감추려 한 점 등도 확인했다. 경찰에 적발된 191명 대부분은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관련 첩보를 입수한 뒤 계좌추적 및 지역 사무실 36곳 등 압수수색을 거쳐 이들 191명의 신원을 특정했고, 지난해 11월 4일부터 지난 7월 5일까지 순차적으로 이들을 검거했다. 자금 세탁을 맡은 한 피의자의 주거지에선 현금 14억 5000만원 상당이 발견됐고, 사무실 곳곳에 보관 중이던 금괴 398돈(1돈은 3.75g)도 압수 조처됐다. 경찰은 이들이 차명으로 보유한 67억원 상당의 부동산 및 예금, 자동차 등을 몰수·추징 보전했다.

지난 2011년 4월11일 전북 김제경찰서 관계자들이 전북 김제 금구면 소재 한 마늘밭을 파헤쳐 찾아낸 5만원권 지폐 수십만장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프리랜서 오종찬

11년 전 ‘김제 마늘밭 110억 사건’ 연루 가능성

‘처남의 부탁을 받았다’며 불법 도박 수익금 110억원가량을 전북 김제 소재 한 밭에 묻었다가 지난 2011년 4월 8일 굴착기 기사의 신고로 범행이 발각된 이모씨 부부는 지난 2013년 4월 13일 대법원에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혐의로 각각 징역 1년 및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땅에 묻혀 있었던 110억여원은 모두 국고로 환수됐다. 이 수사를 맡았던 전북 김제경찰서는 2011년 4월 14일 이씨 부부에게 돈을 맡긴 처남이 중국에 밀입국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A씨가 이 사건의 ‘처남’일 수 있단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