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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잃고도 "살려면 해야지"…11시간 폐지 모아 번 돈 1만원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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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의 촉: 폐지 수집 노인 스토리 

한 고물상에서 오토바이 수레에 폐지를 싣고 온 노인이 무게를 달고 있다. 뉴스1

한 고물상에서 오토바이 수레에 폐지를 싣고 온 노인이 무게를 달고 있다. 뉴스1

“아파도 해야지. 겨울에 일하다 동상에 걸린 줄도 모르고 하다가 손가락을 잘랐지. 그래도 별 수 없지. 밥 먹고 살려면 해야지요. 다른 게 없잖아, 이거(폐지 수집) 밖에.”

 박모(78) 할머니는 폐지 수집일을 한지 20년이 됐다. 손가락이 잘린 후에도 리어카를 놓지 못했다. 박 할머니는 "몸이 다 아파요. 안 아픈 데가 없고. 천식이 있어서 그르렁거려요. 무릎이 안 좋아져도 (일을) 다니고 그런 거지”라고 말한다.

 박 할머니는 폐지 수집으로 월 12만~15만원을 번다. 기초연금 30여만원이 나오고, 정부의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에 나가 27만원을 번다. 할머니는 폐지를 모으기 위해 10시간 넘게 일할 때가 많다. 많을 때는 13~14시간 한다.

 여느 폐지 수집 노인들처럼 박 할머니 역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리어카를 놓을 수 없다. 장남은 몸이 아파 투병 중이고, 셋째 아들은 장애를 앓고 있다. 남편은 사별했다.

 박 할머니는 폐지 수집일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돈 때문에 했지요. 해보니 괜찮더라고. 밑천 안 든다. 장사를 하면서 못 팔면 밑천이 먹히고(까먹고) 있잖아요. 이거는 밑천 안 들죠.”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전국 폐지 수집 노인이 1만 5181명일 것으로 추정한다. 개발원은 지난해 12월 29일~올 2월 26일 박 할머니를 비롯한 폐지 수집 노인 10명의 동의를 받고 GPS 추적장치를 부착해 한 명당 6일간의 활동실태를 추적했다.

 짧게는 하루 5시간, 길게는 15시간 리어카를 끌었다. 하루 이동거리는 얼마나 될까. 짧게는 3.7㎞, 길게는 25.73㎞ 이동했다. 하루 벌이는 5000~2만9000원. 10명의 노인은 하루 평균 12.3㎞를 이동했고 11시간 20분 일했다. 하루 수입은 1만428원, 시간당 948원이다.

 어떤 노인은 12시간에 걸쳐 25.73㎞ 이동해 1만 5000원을 벌었다. 다른 노인은 11시간 동안 16.92㎞를 이동해 번 돈이 딱 5000원이었다.

 폐지 수집일을 한 경력은 짧게는 1년, 길게는 20년이다. 박 할머니를 비롯한 할머니 2명이 20년 됐다.

 10명 모두 기초연금을 받는다. 폐지 수집에서 가장 많이 버는 사람은 73세 김모씨다. 월 60만원이다. 나머지는 20만원 넘지 못한다. 정부의 기초연금(30만 7500원)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명의 어르신은 공공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월 27만원 번다. 폐지 모으러 하루 11시간 20분 움직여도 벌 수 없는 돈이다. 노인 일자리의 소중함을 엿볼 수 있다.

 시간당 948원 벌이도 소중하기 그지없다. 혼자 사는 조모(69·경력 10년)씨는 "남들은 작은 돈이라 해도 나한테는 커. 이거 안 하면 밥은 어떻게 먹고 방값은 또 어찌 내나….”라고 말한다. 신용불량자이면서 파산한 노인도 있다.

어떤 노인은 집 나간 아들 부부 대신 손자를 키우느라 폐지 수집일을 한다. 4년 차 서모(76)씨의 말이다.
 “아이고 힘들죠. 아들이 집 나가고 며느리도 떠나고. 손자는 나한테 맡겨놓고. 그렇게 (폐지수집) 시작한 게 몇 해인지….”

 폐지 수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모(75·경력 5년)씨의 말에서 자부심이 묻어난다.
“남들은 이게 쉬운 일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게 아닙니다. 내가 한다고 그러는 게 아니고, 굉장히 손이 가는 일입니다. 우유통이면 우유통, 파지 쪼매한(작은) 것이면 쪼매한 거. 다 주워모아서 밟아야 해서 보통 일이 아닙니다.”

 문씨는 2017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산다. 식도암에 걸려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다 썼다. 폐지 수집은 생계 수단이다. 월 15만~20만원 수입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오랜 폐지 수집 노하우가 이 일을 그만두기 힘들게 한다. 수입이 가장 많은 김씨는 “이걸 안 하고 싶어도 벌려놓은 게 생각이 나서 나간다. 어디 가야 파지가 많이 나오는지, 적게 나오는지를 (안다)”고 말한다. 조씨는 “내가 쉬면 금방 뺏긴다. 박스 주는 데 가서 청소해주고 박스를 받아온다. 힘들다고 안 나가면 다른 사람이 다 차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힘든 일이라 "그만 두고 싶다"는 말을 반복한다.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다. 6년차 폐지 수집일을 하는 이모(77·여)씨는 “오늘이라도 그만두고 싶지요. 너무 힘들고 서글프고…."라고 하소연한다. 구직 중인 아들도 이씨의 일을 돕는다. 모자 폐지 수집꾼이다.

 연구를 맡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배재윤 부연구위원과 부산대 김남훈 식품자원경제학과 조교수는 "폐지수집 노인이 열악한 환경 속에 일을 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며 "절대 빈곤에 처해서 생존을 위해 폐지수집을 한다. 이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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