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에 대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서 전 장관과 김 전 청장은 2020년 9월 북한군의 총격으로 피살·소각된 서해 어업지도관리단 소속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를 자진 월북으로 결론 내는 과정에서 허위공문서를 생산하거나 관련 첩보를 삭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대북 관련 사건에서 고위 공직자의 신병이 확보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 “증거 인멸 및 도망 우려있다”
김상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2일 오전 2시께 “증거 인멸 및 도망 우려가 있다”며 서 전 장관과 김 전 청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방은 전날 오전 10시 서 전 장관을, 오후 2시엔 김 전 청장을 차례로 불러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했다. 서 전 장관은 “혐의를 인정하느냐”, “합참 보고서에 허위 내용을 쓰도록 지시한 것이 맞느냐”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법원으로 들어갔다. 김 전 청장 역시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법정으로 들어갔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가 서 전 장관과 김 전 청장의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는 각각 3가지다. 서 전 장관에겐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허위공문서작성,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가 적용됐다. 김 전 청장의 영장엔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사자명예훼손 혐의가 들어갔다. 앞서 검찰은 “(두 사람의) 조사 태도와 행적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 씨가 사망한 지 이틀 후인 2020년 9월 24일 종합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자진 월북으로 결론을 정한 후 월북 가능성이 작았을 것으로 보이는 정보는 분석·검토하지 않았다. 해경 역시 같은 해 10월 22일 3차 수사결과 발표에서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이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자진 월북설에 힘을 실었다.
월북조작 ‘지시’ 靑 안보실 향하는 수사
두 사람에 대한 영장이 발부되면서 당시 의사결정 ‘윗선’을 향한 검찰 수사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방부와 해경이 자진 월북으로 결론 내도록 지침을 준 건 청와대 국가안보실이어서다. 당시 안보실 책임자는 서훈 전 안보실장과 서주석 전 1차장 등이었다. 앞서 검찰은 이날 발부된 영장 청구 배경에 대해 서 전 장관과 김 전 청장이 각 기관의 “최고 책임자”임을 강조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소환 조사도 이뤄질 전망이다. 국방부가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첩보 60건을 삭제할 당시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국정원 역시 첩보 46건을 삭제한 정황이 감사원에 의해 밝혀져서다. 다만 피고발인들이 많은 데다, 수사팀 내 인력이 부족해 이들에 대한 소환 시기는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게 검찰 내부의 분위기라고 한다.
피해자 친형, 서욱에게 달려들기도
한편 이 씨의 친형인 이래진 씨는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을 찾아 영장전담 판사에게 유족 10명이 작성한 구속영장 발부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 씨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에 의해 만들어진 비참한 사건”이라고 비판하고 영장심사를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는 서 전 장관에게 욕설하며 달려들기도 했다.
이대준 씨의 친딸은 “가족을 버리고 혼자 북한으로 가실 분이 절대 아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판사에게 제출했다. 서 전 장관과 김 전 청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 전 장관은 첩보 삭제 의혹에 대해 원본 정보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보안상 관련 있는 부서에만 열람 범위를 조정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