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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이란 히잡, 남의 일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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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호 31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서울에는 ‘테헤란로’라는 도로가 있다.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딴 거리다. 지난달 13일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가족들과 함께 테헤란으로 동생을 만나러 왔다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체포당했다. 히잡은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카락과 목, 가슴 부분을 가리기 위해 쓰는 스카프다. 얼굴 및 심지어 전신을 덮어써야 하는 부르카, 얼굴의 일부도 가리는 차도르에 비하여 그나마 온 얼굴을 내놓을 수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쓴다지만 실제로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에 여성들은 히잡을 쓰거나 부르카를 입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적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쿠란은 그저 무슬림들의 복장은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무슬림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까지 포함한다. 즉, 원래의 복장 규정은 남녀 모두에게 대략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이었으나 해석과 운용을 통해 여성들에게만 더 엄격한 복장을 요구하게 된 셈이다. 무슬림 남성들은 얼굴을 가리거나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도록 덮어쓰지는 않으니 말이다.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의무사항이 되자, 무슬림 남성들을 향해 ‘여자들만 아니라 남자들 역시 강제로 얼굴을 가리게 되었으니 기분이 어떠냐’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 온라인 문답 사이트에 올라왔다. 이에 대한 많은 무슬림 남성의 일차적 반응이 ‘무슬림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는 건 강제 사항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답들에 대해 한 무슬림 여성은 자기는 살면서 얼굴이나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욕이나 심지어 폭행을 당하는 여자들을 주변에서 목격하곤 했다고 적었다. 당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

히잡 불량착용 이란 여성 의문사
인권침해 규탄하는 목소리 높아져
한국사회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우린 히잡 안 쓴다고 방관하면 안 돼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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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몰라도 머리카락을 가리도록 강제하는 나라 중 하나가 이란이다. 법으로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성직자 출신의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급속도로 억압적이 되었다고 한다. 체포될 당시 아미니는 히잡을 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과 함께 있었다. 히잡을 부적절하게 쓰고 있었다는 것이 체포 이유였다. 이후 구금시설에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된 아미니는 사흘 만에 사망했다.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아미니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다.

경찰은 아미니가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러나 몸에는 심한 멍이 들어 있었고 의료진은 심장마비가 아니라 외상성 뇌손상을 치료했다고 했다. 경찰이 아미니의 머리 부위를 구치소로 가는 차에서 곤봉 등으로 심하게 구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란 법의학 당국은 아미니가 어려서 앓은 뇌질환 때문에 사망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이 이런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달 중순 발생한 이 사건으로 인해 이란 전역에서는 한 달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어린 소녀들을 포함한 여성들은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며 히잡을 불태우고 공개리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머리카락 때문에 여성을 모욕하고 죽이다니 애도와 연대와 항의와 분노를 표현하는 의미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까짓 머리카락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그걸 가리라고 그토록 악착을 떤단 말인가. 히잡을 쓰든 안 쓰든 개인이 알아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시위 관련 사망자는 200명을 넘어섰는데 18세 미만이 상당수라고 한다. 젊은 여성이 부당하고 억울하게 공권력에 의하여 폭력적인 죽음을 맞았다지만 항의와 분노의 규모와 정도가 의외로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억압되어 온 이란 여성들의 분노, 특히 좀 더 자유로운 미래가 있기를 바라는 젊은 여성들의 열망이 터져나온 것이라 하겠다.

한 사람의 무참한 죽음이 계기가 되어 그간 조용하던 시민 대다수가 시위에 참가하게 되고 마침내 정권 내지 사회 체제가 변화하는 경험이란 한국 사회에서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환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 역시 항의 및 시위에 동참해야만 한다. 히잡 강제 착용 및 여성 인권의 억압에 대항한 이란 여성들의 시위는 과거에 이미 실패한 적 있는데, 이는 여성에게 복장에 관한 자유와 선택권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여성 인권에 이란 사회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번의 시위는 민족주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 심지어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는 데 대한 항의로까지 번지고 있는 듯하다 하니 지켜볼 일이다.

한국에서 이란 여성들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는 시위가 테헤란로에서 이미 몇 차례 있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이와 같은 인권 침해적 사태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개입을 모색할 정도의 위치는 되었음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관심과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다른 사회의 종교나 사람들의 행태를 비난하고 경멸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사건을 핑계로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시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기회를 빌려 한국 사회 역시 타인, 특히 여성이나 소수자에게 원치 않는 믿음이나 가치관을 강요하는 행태가 존재하지는 않는지 반성하고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히잡을 쓰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며 자족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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