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쓰고 다시 쓰고, 환경 살리는 패션 더 아름답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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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호 18면

진화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컬렉션 아카이브’ 방에는 2012년 론칭 후 10년간 축적한 래코드 대표작들이 전시됐다. [사진 래코드]

‘컬렉션 아카이브’ 방에는 2012년 론칭 후 10년간 축적한 래코드 대표작들이 전시됐다. [사진 래코드]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 CODE)’가 론칭 10주년을 맞아 10월 22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 신사하우스에서 ‘레;콜렉티브 : 25개의 방(Re;collective: 25 guest rooms)’ 전시를 개최한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이란 옷과 의류 소재 등을 재활용할 때 디자인과 활용성을 더해 가치를 높이는 일을 뜻한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의류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섬유폐기물은 2010년 112만여 톤에서 2018년 451만여 톤으로 증가했다. 제때 팔려나가지 못한 의류들은 창고에 쌓여 있다가 폐기물로 분류돼 소각되고, 이때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대량 발생한다.

25개의 방, 25개의 친환경 메시지

코오롱스포츠의 지속가능 가치 전파 매장 ‘솟솟리버스’ 제주 매장에서 진행중인 오수 작가와의 협업 작품 중 일부를 옮겨왔다. [사진 래코드]

코오롱스포츠의 지속가능 가치 전파 매장 ‘솟솟리버스’ 제주 매장에서 진행중인 오수 작가와의 협업 작품 중 일부를 옮겨왔다. [사진 래코드]

환경을 생각하는 의류 생산은 안 되는 걸까? 10년 전 래코드의 시작은 이 물음에서 시작됐다. 곧 소각될 의복과 산업 폐기물 속에서 뭔가를 만들 ‘소재’를 찾아내고 해체→디자인→재조립 과정을 거쳐 세상에 이로운 제품을 만들어 보자. 패션 소비가 단지 ‘옷을 산다’는 의미를 넘어 환경을 지켜내는 가치, 나눔과 나아짐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운동(movement)을 제안해보자. 래코드를 처음 기획하고 현재까지 이끌어온 코오롱FnC 한경애 전무는 “패션 기업은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옷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게 목적이지만 우리는 생각이 달랐다”며 “어떡하면 환경을 위협하는 재고를 패션회사답게 가치 있게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우리 사회를 고민하는 첫 번째 패션 브랜드로서 더 큰 가치를 제안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기를 꿈꿨다”고 회고했다. 래코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산하 30여 개 브랜드 및 타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한 재고를 활용해 업사이클링을 진행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MZ세대를 미닝아웃(Meaning Out) 세대라고 한다. 소비를 통해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표출하는 데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이들에게 단순히 ‘기호’를 드러내는 차원을 넘어 ‘세계관’을 드러내는 또 다른 언어다. 이는 론칭 초기부터 주장해온 래코드의 슬로건 ‘이것은 단지 패션만이 아니다(This is not just fashion)’와 동일한 맥락이다. 래코드 이도은 브랜드 매니저는 “사람들은 매일 패션을 통해 세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환경과 삶의 모양을 바꾸고 있다”며 “패션의 이런 막대한 영향력을 인식하고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쳐 쓰고, 다시 쓰고, 지구를 보살피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전시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 ‘프리즈 런던 아트페어’에 출품했던 에어백 구조물을 재현한 방. [사진 래코드]

2013년 ‘프리즈 런던 아트페어’에 출품했던 에어백 구조물을 재현한 방. [사진 래코드]

래코드(RE;CODE)의 브랜드명에서 ‘래’는 영어 접두사 ‘Re(다시, 재(再))’와 한자 ‘래(來·돌아오다)’를 동시에 뜻한다. 환경을 위한 패션 선순환의 의미다. 이 매니저는 “전시 명에 손님(guest)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우리 모두는 지구에 잠시 머물면서 자연을 빌려 쓰는 손님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 간 래코드와 다방면에서 협업해온 아티스트, 단체, 기업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실천과 해법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다. 래코드는 대기업 산하 브랜드면서도 스타 마케팅 대신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우선시 했다. 한 전무는 “진정성 없는 활동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 작은 목소리라도 철학을 같이 하는 이들과의 연대, 즉 ‘가치 있는 같이’가 더 의미 있다”며 “환경을 위한다는 명분만으로는 업사이클링의 가치가 제대로 발현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직관적인 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고 다양한 아트 협업 덕분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 디자인, 예술적 감성을 특화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현대자동차 엠버서더로도 유명한 영국의 환경 운동가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가 꾸민 실내정원. [사진 래코드]

현대자동차 엠버서더로도 유명한 영국의 환경 운동가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가 꾸민 실내정원. [사진 래코드]

전시공간인 신사하우스 내 25개의 작은 방은 크게 ‘래코드 존’과 ‘프렌즈 존’으로 나뉜다. 래코드 존에는 브랜드 컬렉션 아카이브를 비롯해 그동안 진행했던 다양한 협업 작품들이 전시됐다. 예를 들어 ‘아름지기’ 방에는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아름지기 재단이 2016년 진행한 ‘저고리, 그리고 소재를 이야기하다’展에 참여해 한복 소재를 해체·재조립 후 현대 의상으로 재탄생시킨 옷들이 걸려 있다. ‘에어백’ 방에는 2013년 ‘프리즈 런던 아트페어’에 출품했던 에어백 설치 작품이 재현돼 있다. 래코드는 10년 전인 론칭 초기부터 산업용 소재인 ‘에어백’에 주목했다. 생산과정에서 사소한 불량이라도 발견되면 전량 폐기되는 에어백 원단은 최근 들어 다양한 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선두주자가 래코드다. 이 밖에도 진태옥, 픽셀킴, 지용킴 등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또 2023년 출시될 봄·여름 뉴 컬렉션, 라코스테 협업 컬렉션 중 일부를 미리 만나볼 수 있다.

패딩 점퍼로 만든 바닷가재 인상적

코오롱스포츠의 구스 다운 패딩 점퍼 재고로 만든 연진영 작가의 ‘바닷가재’. [사진 래코드]

코오롱스포츠의 구스 다운 패딩 점퍼 재고로 만든 연진영 작가의 ‘바닷가재’. [사진 래코드]

프렌즈 존에서는 ‘지속가능’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는 다양한 브랜드,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아워 레이보’ 방은 창작자 그룹 ‘아워 레이보’가 ‘우리의 죄(Our Sin)’를 주제로 꾸민 공간이다. 흰 벽과 촛불을 마주하는 일종의 ‘회개의 방’으로 디자이너가 자신의 죄를 밝힌 글귀들이 재밌다. ‘카르텔’ 방에는 플라스틱 재료를 사용해 20세기 가구 디자인에 혁신을 불러온 카르텔사의 제품들이 전시됐다. ‘플라스틱 제로’ 세상을 만드는 게 어렵다면? 생산자는 카르텔처럼 엄격한 생산 공정과 품질 확인을 통해 폐기물을 추적하고 오염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소비자는 이런 회사의 플라스틱 제품을 구매해 오래 쓰는 것이 환경을 위한 진정한 노력임을 제안하는 공간이다.

그밖에도 우한나, 홍영인 등의 국내 작가들과 일본 건축가 조 나가사카의 작품들이 흥미를 끈다. 특히 연진영 작가의 ‘바닷가재’는 재고로 남은 코오롱스포츠 구스 다운 패딩 점퍼와 산업용 앵글로 작업한 것인데, 귀여운 모습과는 달리 질문이 묵직하다. 연 작가는 “구스 다운 패딩 점퍼는 동물 복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등 다양한 환경 이슈와 닿아 있는 제품”이라며 “슬기로운 소비를 생각해 볼 때”라고 했다.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의 ‘제로 웨이스트’ 디자인 체어도 흥미롭다. 1200×2400㎜ 사이즈 합판에서 의자 4개를 만들어내는데 한 조각의 쓰레기도 생기지 않도록 디자인한 설계도와 발상이 놀랍다. 폐기 처분된 학교 의자에 다양한 소재의 재활용품을 조합해 새로운 형태의 의자와 테이블로 재탄생시킨 임태희 작가의 작품들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물 옥상에는 현대자동차 엠버서더로 유명한 영국의 환경운동가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가 꾸민 실내정원과 지구본이 있다. 일종의 인터랙티브 전시 공간으로 타이어를 재활용한 그네에 직접 앉아볼 수도 있다. 전시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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