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가 부른 공급망 위기] 더 잦고 더 세진 기상이변, 지구촌 곳곳 폭풍·폭염·가뭄·홍수…상반기만 최소 51조원 손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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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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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무더위와 가뭄으로 유럽 내륙 물류의 70%를 담당하는 독일 라인강 바닥에 짝짝 갈라져 있다. [연합뉴스]

올해 여름 무더위와 가뭄으로 유럽 내륙 물류의 70%를 담당하는 독일 라인강 바닥에 짝짝 갈라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시 남구 포항제철소 일부가 침수됐다. 침수 사고로 고로(용광로) 3기(2~4호)가 멈춰 섰다. 노후화로 운영을 하지 않는 1호를 포함해 포항제철소 내 모든 고로가 가동을 멈춘 건 1973년 첫 쇳물 생산 이후 49년 만에 처음이었다. 포항제철소가 사실상 멈춰 서면서 당장 강판값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t당 105만원이었던 열연강판(쇳물을 가공해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기초 철강재) 가격(유통가)은 지난달 말 125만원으로 한 달여 만에 19% 급등했다. 9월 초만 해도 92만~93만원 사이에 거래되던 수입산 열연강판도 현재 115만원 선이다.

후판(6㎜ 이상의 두꺼운 철판) 상황은 더 심각하다. 포항제철소 후판공장이 국내에서는 단일 규모 최대 생산 기지(연간 450만t 생산)이기 때문이다. 국제 철광석 시세가 하락하며 하반기 t당 110만원대까지 내려왔던 후판값은 힌남노 영향으로 최근 다시 t당 125만원까지 올랐다. 포스코가 최근 후판 주문을 재개했지만, 가격 상승 압박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후판가격은 선박 제조 원가의 20%를 차지하는데, 선주들과 수주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견적을 내기 때문에 선박에 원자재 인상분을 반영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 슬라브 야드. 빗물이 빠지면서 진흙이 모습을 드러냈다. [뉴시스]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 슬라브 야드. 빗물이 빠지면서 진흙이 모습을 드러냈다. [뉴시스]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린 포스코도 침수 피해로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반토막 났다. 3분기 영업이익은 9000억원으로 2분기 대비 57.1% 줄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국내 증권사 컨센서스(1조4764억원)보다 39% 더 낮은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71% 급감했다. 매출액은 21조2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7.9%가 감소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생산 중단에 따른 증가한 영업손실과 일회성 비용이 3분기 영업이익에 4400억원 가량의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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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8월에는 유럽 내륙 물류의 70% 이상을 담당해 ‘유럽의 대동맥’으로 불리는 독일 라인강 수위가 계속된 가뭄에 내려가면서 화물 운송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독일내륙항법협회(DTG)는 8월 “라인강 중상류 카우브에서 측정한 수위가 선박 운항 최저 기준 120㎝를 한참 밑돈다”며 “중소형 화물선 위주로 화물의 약 50%만 운행한다”고 밝혔다. 수위가 내려가면 큰 배는 다닐 수 없고, 중소형 배도 실을 수 있는 화물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독일 성장률 1% 이하로 떨어질 수도”

지난 여름 초강력 허리케인 ‘이언’이 강타한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의 한 마을이 폐허로 변해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여름 초강력 허리케인 ‘이언’이 강타한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의 한 마을이 폐허로 변해 있다. [AP=연합뉴스]

이로 인해 독일 글로벌 종합화학기업 바스프와 이네오스는 8~9월 설비 가동률을 감축했다. 원재료나 상품을 실어 보낼 선박이 부족해진 데다 운송비용이 급등한 때문이다. 도이체방크의 슈테판 슈나이더 이코노미스트는 “가뭄으로 1.2%로 전망되는 독일의 올해 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카우브 수위를 27㎝까지 떨어뜨린 2018년 10월의 가뭄은 독일 국내총생산(GDP)을 0.4%포인트 끌어내린 바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전 세계 산업계와 글로벌 공급망이 위협받고 있다. 미국 전역을 휩쓴 토네이도와 허리케인, 텍사스주 한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홍수, 유럽의 가뭄과 홍수, 중국 가뭄 등 지난해와 올해 전 세계에서 이상 기온현상이 잇따랐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이에 대해 “글로벌 산업계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셧다운보다 극단적인 기상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전했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이상기후로 생산과 배송 시간이 늦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 결과 지난해 텍사스주 한파로 인해 레진(합성수지)과 플라스틱 등의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석유화학산업 전반이 대혼란에 빠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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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는 특히 갈수록 발생 건수가 늘고 강도가 세지고 있어 글로벌 산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1850~1900년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1℃ 가량 오른 현재, 평균 1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한 가뭄은 2배 더 발생하고 있다. 호우는 1.3배 늘었고, 그 강도는 6.7% 세지고 있다. 가뭄에 의한 라인강 수위 하락은 2018년에도 문제였는데, 당시에는 132일 동안 수상 운송이 중단됐지만 올해는 이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기후학자인 로빈 기르메스는 “4년 전보다 올해 상황이 훨씬 더 나빴다”며 “보통 3m인 뒤스부르크에서 루르 지역 수위가 1.8m까지 떨어져 화물선이 싣는 양의 절반 정도밖에 선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이 4분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61년 만의 최악 가뭄, 수력발전량 ‘뚝’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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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간 가뭄을 겪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올해 더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 대비 30% 이상 쌀 생산량이 줄었다고 미국 농무부는 전했다. 강우량과 적설량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저수량마저 줄었다. 캘리포니아주 최대 저수지인 새스타 호수마저 가뭄으로 최저 수위를 기록하자, 주 전역에 물을 공급하는 ‘센트럴 밸리 프로젝트’ 저수지의 저수량은 지난해 대비 26.5% 줄어 용수 공급마저 힘든 상황에 빠졌다. 지난해엔 그래도 용수 공급으로 버틸 수 있었다.

더 자주, 더 세게 지구를 강타하고 있는 이상기후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미국은 올해 1월 극심한 가뭄으로 상반기만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 손해를 입었다. 유럽과 중국도 가뭄으로 올해 상반기에 132억 달러(약 19조원)의 피해가 났다. 벨기에 루뱅대 재난역학연구센터가 올해 상반기 주요국에서 나타난 이상기후 피해액을 산출했더니 피해액 기준 톱10의 피해액만 356억 달러(약 50조9000억원)에 달했다. 보고서는 “지역적으로는 호주와 중국이 홍수로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미국은 폭풍으로 인한 전체 경제적 피해액만 100억 달러가 넘는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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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올해 여름 61년 만의 최악 폭염과 가뭄으로 장강(양쯔강) 수위가 내려가면서 수력발전 능력이 절반가량 줄었고, 이로 인해 양쯔강 인근 쓰촨성 내 글로벌 기업들이 공장을 멈춰 세워야 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중국 상용차 생산법인 현대트럭앤버스차이나를 비롯해 일본 도요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CATL, 폭스콘 쓰촨성 공장이 한 달여 가량 가동을 중단했다.

한파에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도 한 달 넘게 가동이 중단됐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는 7100장 정도의 웨이퍼(반도체 원재료) 생산 차질을 빚었고, 금액으로 따지면 4000억원에 이른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쓰촨성의 경우 쓰촨댐 수력발전용량이 커 주변 지역 전기요금이 중국에서도 저렴한 편이어서 글로벌 기업들의 공장이 몰려 있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에너지를 찾아 쓰촨성에 공장을 지은 것인데 역설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에너지원 확보의 변동성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 탓 반도체 공급 차질 2~4배 증가 예상

8월 스위스 알프스산맥 내 모테라치 빙하가 녹아 내려 얼음 흔적만 일부 남아 있다. [연합뉴스]

8월 스위스 알프스산맥 내 모테라치 빙하가 녹아 내려 얼음 흔적만 일부 남아 있다. [연합뉴스]

공장 가동 중단 등의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공급망의 일시적 붕괴로 이어져 글로벌 산업계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난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 온 영국에서는 런던 루턴 공항 활주로와 런던 중심부 철도 선로가 녹아내리거나 뒤틀리면서 한동안 물류 이동이 멈췄다. 당시 영국 철도시설공단 대변인은 “선로에서 폭염에 따른 뒤틀림이 보고돼 영국 철도의 3분의 1가량이 열차 운행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포항제철소 사례처럼 대체 공급망이 없는 상황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공장이 멈춰 서면 곧바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 세계에서 리튬 채굴과 정제의 20%를 담당하는 쓰촨성이 단전되면서 탄산리튬 가격은 8월 한 달에만 45만5500위안에서 47만7500위안으로 4%가량 상승했다. 정경우 한국지질자본연구원 자원활용연구본부 본부장은 “배터리에 많이 쓰이는 리튬은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중국에서 나오기 때문에 폭우나 가뭄 등으로 중국에서 리튬 생산이 제대로 안 되면 연쇄적 여파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문제는 앞으로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의 경우 폭풍 증가 등 기후변화로 2040년까지 공급 차질 횟수와 규모가 2~4배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으로 앞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공급망 교란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는 향후 40년간 유럽에서 폭염으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손실 규모가 꾸준히 늘 것으로 예상했다. 폭염으로 인한 손실 규모는 2035~2045년에 GDP의 0.77%, 2045~2055년에는 약 0.96%, 2060년대에는 1.14%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했다. 제이슨 제이 매사추세츠공대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 국장은 미국 언론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는 일시적이지만, 기후변화에 의한 공급망 위기는 예측불가능하고 복수적(plural)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때처럼 전면적인 글로벌 공급망 붕괴까지는 아니겠지만, 국지적인 공급망 위기가 상설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예컨대 자동차 산업의 경우 들어가는 부품이 많아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차량용반도체 부족 문제처럼 이상기후로 어느 한 공급망이라도 정상 작동하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큰 충격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맥킨지 글로벌연구소 기후전문가는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망 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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