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 외계인 추적극 ‘글리치’…“어른들의 동심 얘기하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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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글리치'는 외계인이 보이는 지효(전여빈)와 외계인을 추적해온 보라(나나)가 지효의 사라진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 떠나는 모험을 그린 10부작 드라마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글리치'는 외계인이 보이는 지효(전여빈)와 외계인을 추적해온 보라(나나)가 지효의 사라진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 떠나는 모험을 그린 10부작 드라마다. 사진 넷플릭스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는 ‘남자친구가 외계인에게 납치된 것 같다’는 다소 황당한 발상에서 출발하는 드라마다. 어린 시절부터 외계인이 가끔 보였지만, 평범한 척 살아가던 지효(전여빈)는 어느 날 남자친구 시국(이동휘)이 실종되자 외계인의 소행이라고 의심한다. 단서를 모으기 위해 방문한 UFO·외계인 동호회 모임에서 어릴 적 절교한 친구 보라(나나)를 만나게 되고,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시국을 찾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인간수업' '글리치' 진한새 작가 인터뷰

그렇게 엉뚱하고도 유쾌한 SF 추적극처럼 보이던 이 드라마는 두 친구가 정체불명의 종교 단체와 얽히며 점점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주되고, 이들의 학창시절 서사까지 뒤섞이며 성장물로까지 확대된다.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본 적 없던 4차원 드라마를 세상에 내놓은 건 다름 아닌 2020년 넷플릭스 최대 화제작 중 하나였던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

지난 19일 서울 북촌 한 카페에서 만난 진한새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놀이’에 빗대 “대중적인 놀이는 아니지만, 같이 하고 싶은 놀이”라고 표현했다. “‘다들 (이 놀이에) 들어오시면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직 시청을 망설이는 관객들에게 손을 내밀면서다.

넷플릭스 '인간수업'에 이어 '글리치'를 집필한 진한새 작가.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인간수업'에 이어 '글리치'를 집필한 진한새 작가. 사진 넷플릭스

“결국 신념에 대한 이야기”

그가 놀이에 비유한 이 작품은 그 출발 계기도 귀엽고 소소한 에피소드 하나였다. 진 작가는 “제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아내가 어렸을 때 UFO를 봤다는 얘기를 했다. 저는 당연히 안 믿었고, 아내는 계속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 옥신각신했는데, 이 과정 자체가 되게 재밌었다. ‘좀 늘리면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해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짧은 이미지나 장면에서 시작해 주제 의식을 찾아가는 순서로 작업하게 된다”는 진 작가는 아내와 자신의 짧은 ‘UFO 논쟁’도 ‘신념’에 관한 이야기로 발전시켰다. “어떤 것이 실제로 있는지 믿느냐, 안 믿느냐는 결국 신념의 얘기잖아요. 그 신념이라는 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동시에 하고 싶었어요.”

그의 말처럼 극 중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인물부터 위험할 정도로 과도한 믿음을 지닌 인물까지, 신념이라는 테마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진 작가는 그 중 주인공 지효를 두고 “지효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쫓으며 살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것 같다”며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을 끌어당기고 열정에 불을 지피는 무언가가 있어야 사람이 진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글리치'는 지효(전여빈)와 보라(나나), 두 극과 극의 친구들이 빚어내는 관계성이 주요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글리치'는 지효(전여빈)와 보라(나나), 두 극과 극의 친구들이 빚어내는 관계성이 주요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글리치'의 두 주인공 지효와 보라는 외계인을 쫓는 모험을 통해 서로 신념을 공유하며 의지하는 관계로 성장한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글리치'의 두 주인공 지효와 보라는 외계인을 쫓는 모험을 통해 서로 신념을 공유하며 의지하는 관계로 성장한다. 사진 넷플릭스

신념과 뗄 수 없는 ‘글리치’의 또 다른 주요 테마는 지효와 보라, 두 여성의 관계다. 학창 시절 외계인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했던 두 친구는 지효가 잠시 기억을 잃고 실종됐던 사건을 계기로 멀어졌지만, 다시 만나 미스터리를 풀어가며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가 된다.

진 작가는 “주제의식보다 먼저 나왔던 게 두 사람의 관계였다. 어릴 때 재밌는 놀이를 같이 하다가 멀어진 관계에서 오는 쓸쓸함에 꽂혀서 이를 발전시켜보고자 했다”며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만화에서 성향이 정반대인 아웃사이더 고등학생 둘이 옥상에서 만나는 장면이 모티브가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퀴어 코드를 읽어내는 시청자도 많지만, 진 작가는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는 규정이 안 되는, 이 둘만의 고유한 관계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30대의 동심, 미성숙한 부분 끄집어 내보고파”

전작이자 진 작가의 데뷔작이었던 ‘인간수업’이 10대들의 범죄를 다룬 현실적인 이야기였던 것에 비해 ‘글리치’는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복합장르물이란 점에서 두 작품은 극과 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르라는 외피를 벗기면, 두 작품에는 청소년기의 불안과 방황, 미성숙 등의 정서가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넷플릭스 '글리치' 진한새 작가는 사이비 종교 등을 비롯한 장르적인 소재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채택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글리치' 진한새 작가는 사이비 종교 등을 비롯한 장르적인 소재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채택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진 작가는 “‘범죄 얘기만 쓰는 작가’라는 경향성이 생길까 봐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면서도 “되짚어보면 (이번 작품에도) 30대가 돼서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동심, 미성숙하고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을 끄집어 내보고픈 의도가 분명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UFO, 사이비 종교 등의 독특한 소재에 대해서는 “이런 장르적인 장치들은 메시지 전달을 위한 도구로 쓰인 측면이 있다”며 “특정 장르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야기에 필요해서 채택한 소재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스스로의 학창 시절에 대해 “어색한 아이, 아웃사이더였다”고 회상한 그는 “저 스스로가 약간 10대에 머물러 있는 면이 있다. 그래서 자꾸 이렇게 소환하게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가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아이템 역시 하이틴, 그중에서도 로맨스라고 한다. ‘인간수업’ 때부터 함께 한 스튜디오329(대표 윤신애)와 다시 합을 맞출 이 작품 역시 그의 현재까지 작품이 그러했듯 정형적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요새는 다 섞잖아요. 예컨대 호러와 코미디가 섞이기도 하고요. 아직 구체적인 기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약간 핀트가 어긋난 하이틴 로맨스가 지금 좀 욕심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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