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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 노조 불법 눈 감아준다? 정부, 노란봉투법 정면 반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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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노란봉투법은 점거·폭력·파괴·상해와 같은 불법행위가 벌어지더라도 노조나 노조 간부가 그 행위를 했을 경우 면책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추진되자 재산권과 손해에 대한 배상 청구권을 제한하는 등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산업현장의 불법 행위 확산 우려도 제기됐다. 야당은 이에 대해 "불법을 적법으로 바꾸자는 것. 적법의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라고 맞섰다. 불법행위라도 노조가 저질렀다면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와 관련, 21일 '불법행위에 대한 손배소송·가압류 실태조사 결과 및 해외사례'를 국회에 보고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이에 앞서 고용부는 지난 4일 손해배상 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손해배상소송은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거의 대부분(94%) 발생했다. 청구금액으로 따지면 99.6%, 법원이 정당한 손해배상으로 인정한 금액 중 99.9%가 민주노총의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노사 간에 조정이나 합의로 해결된 것을 제외하고 법원이 판결로 결론을 낸 63건의 손해배상 사례를 분석했다. 그러면서 해외 사례를 집중 조명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노란봉투법 불가론을 재확인한 셈이다.

지난 9월 2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현역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노란봉투법 정기국회 중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9월 2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현역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노란봉투법 정기국회 중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법원, "불법에 예외 없이 책임 추궁"

법원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라도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책임질 대상자도 구분해왔다. 판결이 확정된 63건 중 24건은 정당한 쟁의행위 또는 상당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기각됐다.

예컨대 조합원으로서 노조의 지시에 따라 소정 근로시간만 근무하고 고정 연장근로를 거부한 경우 불법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따라서 손해배상 책임이 없는 것으로 분류했다. 단순히 노무 제공을 정지한 것만으로는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일반 조합원이라도 적극적으로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시켜 손해를 발생시켰다면 노조뿐만 아니라 조합원도 공동불법행위자로 손배 책임을 물었다. 이런 게 39건이었다.

특히 야당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액 제한과 관련, 법원은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청구액이 많다고 해서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으며, 노조나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가하려는 목적으로 보기 힘들다(대법원 2018다11053)"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불법 쟁의행위로 인해 근로자가 책임지는 배상액의 범위는 이와 상당관계에 있는 모든 손해(대법원 93다32828)'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회사가 교섭을 해태하거나 경영악화의 책임이 회사에 있는 경우, 파업 뒤 노사 화합 분위기가 조성된 경우 등의 사유가 있을 때는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해서 지우되 손해배상액을 최소 20%에서 많게는 90%까지 감경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까지 이어진 가장 큰 원인은 사업장 점거에 의한 생산라인 중단이었다. 전체의 49.2%를 차지했다. 이 사안에 대해 법원은 90.3%를 인용해 노조에 책임을 물었다. 인용액으로 따지면 98.6%에 달했다. 야당 주장과 달리 오히려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면 이처럼 많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법 쟁의행위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경우는 주로 수단이 문제였던 셈이다. 위력을 사용해 사업장을 점거하거나 상해, 손괴 등이 수반된 폭력적 집회가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졌다.

◇"외국도 불법행위는 면책 없어"

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엄하게 책임을 지운다.

영국과 일본·미국·독일 등 대부분 선진국은 한국처럼 쟁의행위의 목적이나 절차 등이 법에 어긋날 경우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했다. 폭력·파괴 행위는 물론 사업장 점거도 위법하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손해배상 책임 대상과 관련, 개인에 대해서만 손배 책임을 면책하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조뿐 아니라 개인의 책임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청구사례는 적었다. 손해배상 범위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례도 찾기 어려웠다.

영국은 야당의 주장처럼 배상 상한액을 정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상한액을 4배가량 대폭 상향 조정할 정도로 책임을 무겁게 묻고 있다. 특히 노조와 달리 개인에게는 상한액을 적용하지 않는다. 독일도 노조와 근로자가 연대 책임을 진다는 것이 판례의 기본 입장이다. 특히 영국은 '사용자가 인정한 노조'의 쟁의행위만 합법으로 인정해 면책한다.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은 "무엇보다 영국은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합법 파업이라도 일정 기간이 지속되면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경영계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 필요성이 긴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법안을 냈다가 위헌 논란으로 폐지한 프랑스의 경우 근무장소 무단 점거, 출입구 봉쇄 등으로 사용자의 조업 방해, 피켓팅으로 다른 근로자의 근로의 자유를 침해한 경우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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