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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침투한 '언어 바이러스'가 인류 문화를 꽃 피우게 했다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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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무생물에서 마음의 출현까지
대니얼 C 데닛 지음
신광복 옮김
바다출판사

수많은 흰개미가 힘을 합쳐 개미탑을 짓는다. 청사진도, 지휘관도 없이 상향식 의사결정 방식에 따라 튼튼하고 공기 조절 기능까지 갖춘 자연의 위대한 건축물을 쌓아간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140년 전 건축가 가우디는 도면과 청사진으로 무장한 채 엄격한 신처럼 건축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을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현실화한 대표적 사례다.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AFP=연합뉴스]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AFP=연합뉴스]

가우디의 성당은 개미탑과는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 다른 생물 종에서 볼 수 없는 의식과 이해력, 마음을 갖게 됐을까. 진화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미국 터프츠대학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지난 50여 년 동안 철학과 과학,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마음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탐구했고, 그 결과를 두터운 책 한 권으로 정리했다.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인간의 마음과 문화도 자연선택의 과정에 따라 진화했고, 문화 역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선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으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지목했다. 물질적인 육체와 이를 조종하는 비물질적인 영혼을 구별하고, 영혼은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원론은 과학적 접근을 차단한다고 비판한다.

마음의 진화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무생물로부터 사람의 마음이 출현했음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이 필요하다. 박테리아(세균)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호주 케이프 레인지 국립공원의 흰개미집. [위키피디아]

호주 케이프 레인지 국립공원의 흰개미집. [위키피디아]

박테리아도 신경계 비슷한 것을 가진다. 화학물질을 인식해 좋아하는 물질이면 농도가 더 높은 쪽으로, 해로운 물질이면 먼 곳으로 달아난다. 그렇다고 해서 박테리아가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리가 없다. 이해력 없이도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진화는 거듭된다. 처음엔 유전자에 담긴 대로, 타고난 대로만 살아가는 생물이 나타나고, 거기에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생물 종도 출현한다.
까마귀·고래·영장류처럼 행동하기 전에 생각이란 걸 하는 동물도 나타나는데, 이들 뇌에는 방추 뉴런(신경세포)이 존재하고 자기 감시와 의사결정,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생각 도구를 활용하고, 해결책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생물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진화를 통해 마음을 갖게 된 인간은 비행기·컴퓨터를 만들어냈고, 바흐·코페르니쿠스·아인슈타인과 같은 지성의 탄생도 보게 됐다.

사실 인간의 유전자는 지난 5만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그 사이 문명은 극적으로 변했다. 마음의 '바이러스', 문화적 유전자인 밈(meme)이 뇌에 침투한 것이다. 밈이란 형태의 정보는 뉴런과 결합했다. 바이러스가 자신의 DNA를 사람 DNA에 편입시킨 것처럼, 강력한 앱이 스마트폰에 설치된 것처럼 말이다.

침팬지에는 없는 언어 사용 앱이 인간의 뇌에 깔렸다. 인간 아기들은 의미도 모르면서 단어를 습득하고 옹알이를 하고 따라 하다가 어느 순간 의미를 파악하고 말하기 시작한다. 인류도 언어 사용 초창기에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사람은 말을 하게 됐고, 마음을 갖고 됐고, 의사소통도 하게 됐다. 언어는 지식 축적을 도왔고, 폭발적인 문화적 진화를 가져왔다. 언어 덕분에 우리는 어렵고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는 좋은 과학 이론을 갖게 됐다. 인류는 다윈주의적 진화, 상향식 의사결정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덩달아 밈도 복제할 터전을 얻었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 마음과 우리 동물 뇌, 즉 밈과 유전자(gene)는 복제를 위해 여전히 서로 필요하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역시 우리에게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당분간은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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