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떨어질지 몰라 무섭다던 北미사일…정확도까지 붙었다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2022.10.21 09:28

업데이트 2022.10.21 09:35

평양의 미사일과 판교 카카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1. 2003년 가을 금강산 취재를 다녀올 때다. 금강산 온정각을 출발해 휴전선을 넘을 때까지 금강산 관광을 진행했던 현대 아산의 수송반장이 운전하는 차량의 조수석에 앉았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미니 버스가 시속 50㎞를 넘기려는 순간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반장 선생! 기관(엔진)이 터질라 그럽네다. 천천히 가시라요”. 차량 행렬 맨 뒤에서 휴전선까지 차량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감시하며 따라오던 북한 관계자였다.

#2. 3년 뒤 무기 개발을 담당했다는 고위 인사를 중국에서 만나 당시 얘기를 나눴다. 북한이 1차 핵실험(2006년 10월 9일)을 한 직후였다. 자동차도 만들지 못하는 북한이 핵탄두를 가지더라도 운반 수단인 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미사일은 정확도가 생명이라는 의견도 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정 선생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누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미사일이 전쟁에선 제일 무서운거야.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거든.”

북 “다양한 전술핵 미사일 성공”
계룡대 등 주요 시설 핵공격 암시

괌 사정권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오키나와 겨냥 장거리순항미사일도

한·미 전략 자산 동원하며 맞대응
북한발 카카오 먹통사태 대비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해 교내 실내 사격장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원 부분). 사격장은 화약이 들어간 실탄을 다루고 있어 금연이 원칙이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해 교내 실내 사격장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원 부분). 사격장은 화약이 들어간 실탄을 다루고 있어 금연이 원칙이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웃음으로 끝난 그날의 대화로부터 16년이 흘렀다. 북한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보름동안 평양에서 두 차례 등  6곳에서 7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전술핵 운용부대의 훈련’이라는 명칭으로 기간을 정해 놓고 12발의 미사일을 단기간에 무더기로 쏜 건 이례적이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사거리와 비행 궤적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심각성이 드러난다. 북한이 지난달 25일 평북 태천의 저수지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600㎞ 이상 날아간 것으로 군 당국은 분석했다. 당시 미국의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이 부산의 해군작전사령부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태천에서 이곳까지 직선 거리로 630여㎞다. 북한이 레이건함을 겨냥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사흘 뒤인 지난달 28일엔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360여㎞의 미사일을 쐈다. 이는 발사지점에서 한국 해군의 1함대 사령부까지 거리와 일치한다. 항공모함을 동원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반발로 동해를 관할하는 1함대 사령부가 목표인 듯 했다. 지난달 29일 평남 순천에선 사거리 350여㎞를 쐈다. 한국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인 F-35A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하는 중부지역의 공군기지까지의 거리다. 지난 1일과 9일 각각 평양 삼석구역과 강원 문천에서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는 각각 350여㎞를 날아갔다. 두 곳에서 방향을 틀면 한국군의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다. 어디에 떨어질 지 몰라 ‘무섭던’ 무기에 정확도가 붙고 있는 것이다.

‘잠수’ 대신 발사 현장 찾은 김정은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북한은 핵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행동이 달라졌다. 북한은 과거에도 “무자비한 보복”을 언급하며 한·미 연합훈련에 반발했다. 하지만 정작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하거나, 미국의 전략 폭격기 등이 한반도에 올 때마다 숨을 죽였다. 북한 지도자가 공개활동을 중단하거나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이동한 경우도 있다. 2017년 4월 한·미가 F-22와 F-35와 같은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등 240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을 진행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던 때였는데 김 위원장은 평양을 비우고 북·중 접경지역인 자강도 만포시 등을 찾았다. 2003년 초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0일 동안 잠적한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의 즉각적인 반격을 겁낸 듯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26~29일 실시한 한·미 연합훈련 기간 중 미사일 발사장을 찾아 맞대응을 지휘했다. 한국이 실사격 포격 훈련을 하면 북한군은 수 시간 안에 포문을 연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 경계 완충지역 내 사격을 금지한 남북간 합의를 깼다. 자신들의 혈맹인 중국에서 최대 정치행사인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6~22일)가 진행중이지만, 한국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포탄을 날린다. 새벽 1~2시에 미사일을 발사해 “새벽 잠을 깨우지 않겠다”던 4·27 판문점 정상회담의 약속도 버렸다. 한·미·일 미사일 방어 훈련(6일)엔 ‘북한판 토마호크’로 불리는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을 꺼내 들고 유엔사 후방기지가 다수 있는 일본 오키나와를 훌쩍 넘기는 2000㎞를 날렸다. 사거리 4500㎞의 미사일을 쏜(지난 4일) 것도 괌을 겨냥한 것이다.

북한은 “핵이 터진 한반도에 미군이 상륙할 수 있겠냐”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에 전술핵을 실어 한반도 전역과 유사시 미군의 증원 세력을 차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경제난과 대북 제재 등으로 재래식 군비 경쟁에서 뒤진 북한이 한·미·일을 겨냥해 핵인질 전략을 시작한 셈이다.

어게인 2017년?

북한은 당분간 이런 전략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한반도엔 또다시 2017년과 같은 전운이 드리울 수 있다. 북한은 2017년 장거리탄도미사일과 핵실험으로 미국을 위협하자, 미국이 B-1B 전략 폭격기와 전자전기 등 20대의 항공기를 동해상으로 급파했다. 당시 미국은 일부 항공기를 북한 영공으로 들여 보내는 등 전쟁 직전상황까지 갔다.(밥 우드워드 『분노』)

미국은 최근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를 본토에서 괌으로 이동시켰다. 한반도라는 하나의 레일 위에 마주선 기관차가 시동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전력을 동원해 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북한이 수 년간 핵을 앞세워 창끝을 뾰족하게 한 데 비해 한·미는 연합훈련이나 전략자산을 동원하는 2010년대 중반의 대응책을 다시 만지작거린다. 그마저도 북한의 연이은 무력시위에 대응한다며 발사한 미사일(현무-2C)이 뒤로 날아가 떨어지고, 정상 발사한 에이테큼스 두 발 가운데 하나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추적도 못했다. 이런 대응으로 북한 지도부를 얼마나 위축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난 주말 경기 성남에 있는 카카오 데이터 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아날로그 사회인 북한이 한국의 새로운 ‘약점’을 발견했을 수 있다. 북한은 최근 미사일 발사 훈련에서 수도권을 겨냥하진 않은 것 같다. 수도권에 핵이 터질 경우 자신들도 피해를 입을 것을 걱정했거나 사거리를 줄인 미사일이나 장사정포로 언제든 공격이 가능하다고 계산했을 수 있다. 끔찍하지만 북한의 미사일이나 낡은 전투기가 수도권에 날아와 제2의 카카오 데이터센터와 같은 핵심 시설에 자폭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수도권은 주유소와 가스관, 전기시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급속도로 핵보유국에 다가가는 북한을 제동하는 것 못지않게 북한발 제2의 카카오 먹통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일이 발등의 불이 됐다.

북한은 연말이면 한 해 사업을 결산하는 ‘총화’를 진행한다. 노동당 전원회의나 내년 신년사를 준비하며 숨고르기를 하거나 새로운 전략수립에 나설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도 재정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북한이 언제 다시 기상천외한 위협을 들고 나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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