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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는 대만 때려 판 키웠다…美와 갈등도 불사, 시진핑 노림수 [시진핑 시대 ⑤]

중앙일보

입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20대)에서 '대만통일' 화두를 던졌다. 특히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양안 관계는 새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무력사용 언급에 대만과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19일 대만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대만해협 펑후(澎湖) 열도에서 중국군 상륙을 격퇴하는 육해공 합동 실탄훈련을 펼쳤다. 추궈정(邱國正) 대만 국방부장(장관)은 올해 8월 대만 상공을 통과한 중국 미사일에 대해 선제공격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처음 밝히면서 선제공격 개념을 재정의했다.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사진)이 지난 16일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20대) 보고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을 언급하면서 후폭풍이 거셌다. 사진은 군복을 입은 시진핑 주석의 사진이 스크린에 흐르고 있는 중국 군사박물관의 10월 8일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사진)이 지난 16일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20대) 보고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을 언급하면서 후폭풍이 거셌다. 사진은 군복을 입은 시진핑 주석의 사진이 스크린에 흐르고 있는 중국 군사박물관의 10월 8일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도 "대만에 대한 지원 중단은 없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7일 "만약 평화적 수단이 작동하지 않으면 강압적 수단이 동원되고, 이것도 안 되면 강제적 수단을 쓸 수 있다"고 밝혔다.

대만통일 강조한 시 주석.."공격적 언어는 美 겨냥"

대만 문제는 이번 20대 업무보고 때 급부상했다. 문건을 살펴보면 18, 19대(2012년, 2017년)보고보다 훨씬 초반에 등장할 만큼 중요성이 높아졌다. 대만 통일과 관련, 시 주석이 정조준한 대상은 미국이다. 미·중 갈등 속에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것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미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대만을 찾은 건 25년만의 일이었다.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왼쪽) 미 하원의장이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오른쪽) 총통을 만나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왼쪽) 미 하원의장이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오른쪽) 총통을 만나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19대에서 통일의 방해물은 '대만 독립 분자들의 분열행위'였지만 20대에선 '외부 세력 간섭'이란 표현을 집어넣었다.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시 주석이 미국의 간섭에 대해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전에 없던 '무력사용' 언급도 나왔다. 장영희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는 "무력사용 언급은 '벼랑 끝 전술'로 보인다"면서 "전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굳혔다기보다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 강경한 태도를 취하려는 일종의 블러핑(허풍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92합의(컨센서스)' 언급횟수도 주목 대상이다. 92합의는 1992년 중국과 대만이 합의한 것으로 '하나의 중국'을 대원칙으로 하나,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 원칙이다. 19대에서 4차례 언급됐으나, 20대에선 구두 언급 없이 보고서에만 한 차례 나왔다. 대만이 제안했던 92합의를 시 주석이 '용도폐기'하면서 해석 여지를 없앴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중국이 해석하는 '하나의 중국'만 존재하는 셈이다.

대만 이용한 마오, 덩은 "상흔 없는 통일" 내세워  

과거 중국 지도부는 각자의 필요에 맞춰 대만을 이용해왔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대만을 불안감 조성의 수단으로 봤다. 1차(1954년), 2차(1958년) 대만해협 위기 때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며 위기감을 끌어올렸다가 이를 해소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 푸젠성 샤먼과 약 3㎞ 떨어진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를 두고 양군은 미·중 국교수립 전(1979년)까지 약 20년간 대치했다. 위기를 통해 중국은 미국 등 국제사회를 긴장시키면서 존재감을 얻기 시작했다.

중국 푸젠성 샤먼시의 고층빌딩 숲에서 불과 3.2㎞ 떨어진 대만 진먼다오의 모래 해안에 상륙 저지용 철제 빔이 빼곡하다. 철제 빔 외에도 해안에 설치된 탱크 상륙을 막기 위한 참호가 중국의 침공에 대비하는 대만의 우려를 보여준다. AFP=연합뉴스

중국 푸젠성 샤먼시의 고층빌딩 숲에서 불과 3.2㎞ 떨어진 대만 진먼다오의 모래 해안에 상륙 저지용 철제 빔이 빼곡하다. 철제 빔 외에도 해안에 설치된 탱크 상륙을 막기 위한 참호가 중국의 침공에 대비하는 대만의 우려를 보여준다. AFP=연합뉴스

강경 수단을 불사한 마오와 달리, 덩샤오핑(鄧小平)은 평화통일과 일국양제를 내세웠다. 덩은 "절대로 무력을 쉽게 사용하면 안 되며, 경제 건설에 매진해 상흔 없는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국가, 두 체제'라는 뜻의 일국양제를 통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병행 가능하다는 실용적인 논리도 제시했다.

덩은 1980년대 통일문제를 3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은 충분치 않았다. 1990년대 덩이 “통일은 기다릴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중국의 '대만 통일 시계'는 잠시 멈춰섰다.

중국 샤먼 해변의 '일국양제 통일' 선전물. 대만이 관할 중인 섬 진먼다오(金門島)를 지척에서 마주 보는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시 해변에 '일국양제 통일 중국'이라는 내용의 대형 선전물이 서 있다. 연합뉴스

중국 샤먼 해변의 '일국양제 통일' 선전물. 대만이 관할 중인 섬 진먼다오(金門島)를 지척에서 마주 보는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시 해변에 '일국양제 통일 중국'이라는 내용의 대형 선전물이 서 있다. 연합뉴스

시 주석은 대만을 국제정세를 뒤흔들 카드이자 정치적 생명 연장의 패로 활용하려 한다. 대만서 가까운 중국 푸젠성에서 17년 일한 경험도 무시 못 할 배경이다. 장영희 교수는 "시 주석은 대만 문제 해결을 자신의 역사적 레거시(유산)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마오쩌둥 조형물(왼쪽 앞) 뒤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벽 사진)의 사진과 대만인민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지난 16일 20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을 언급하며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마오쩌둥 조형물(왼쪽 앞) 뒤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벽 사진)의 사진과 대만인민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지난 16일 20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을 언급하며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양안 정책은 시진핑 4연임과도 직결된다. 시 주석은 2027년 21차 당 대회를 앞두고 전쟁 분위기를 최대한 고조시키며 지도자 교체 불가론에 군불을 지필 수도 있다. 적어도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대만을 무력으로라도 통일하기 위한 준비를 하라"고 독촉할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반중' 총통 후보 대만서 인기…2024년이 분수령  

시 주석이 강하게 나올수록 대만 내 분위기는 악화하고 있다. 중국에 반감을 가진 대만인들은 증가일로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여론 조사에서 자신을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1992년 17.6%였지만 올해는 63.7%였다.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긴다는 비율은 2.4%에 그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통일을 바라는 이도 거의 없다. 지난해 대만에서 통일 대신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무려 85.8%에 달했다.

대만 문제의 분수령은 1월 대만 총통선거와 11월 미국 대선이 있는 2024년이 될 전망이다. 현재 여당인 민진당 유력후보 라이칭더(賴淸德) 부총통의 인기가 높은 것도 시 주석에는 악재다. 자신을 대만인으로 여기는 청년 유권자가 늘어나는 인구 구조 역시 반중 성향의 민진당에 유리하다. "대만을 제2의 홍콩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라이가 당선될 경우, 대만 내 탈중국화가 가속화되고 양안 관계 긴장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취임식 행사에서 라이칭더(오른쪽)와 함께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취임식 행사에서 라이칭더(오른쪽)와 함께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1972년 닉슨-마오쩌둥 회담 통역을 맡았던 채스 프리먼 전 국방부 차관보는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선출되는 2024년이 대만에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했다. 그는 "만일 대만 독립을 약속한 미국 우익이 2024년 권력을 잡으면 중국에는 직접적인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주석의 공세적인 '레토릭'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중국이 정말 무력을 행사한다면 그때가 시진핑 통치의 '끝'이라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대만 침공 '카드'는 정작 써버리면 카드가 아니게 된다"면서 "카드는 어디까지나 (전쟁)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중국이 지나치게 무력 사용을 강조하면, 대만 문제가 중국의 내정문제라는 중국 주장과 달리 대만 문제가 국제 문제로 비화하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했다.

문흥호 한양대 교수 역시 "미국·중국·대만 모두 예측 불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군사충돌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면서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부담, 중국 경제상황 악화, 유럽 등 국제사회의 반중 감정 때문에 당장의 무력공격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다만 3연임 이후 장악력 과시를 위해 무력 위협 수준은 고강도로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식량 사정 불안이 복병이란 분석도 있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미국 지정학자인 에드워드 루트왁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모험에 대해 회의적이다"라면서 "중국은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러시아 같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중국 식량안보의 키를 쥔 작물은 대두다. 중국인의 식탁을 책임지고 물가에도 직접 영향을 주는 돼지를 사육하는데 대두는 필수다. 중국은 연 9500만t의 대두를 수입에 의존한다. 대두는 중국 내 생산과 해외 수입의 격차가 크고 단기간에 국내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탓에 "콩을 확보하는 자가 중국을 확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루트왁은 "시 주석이 수년간 식량 안보를 말해왔지만, 지방정부는 계속해서 경작지를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팔아버렸다"면서 "중국이 대규모 농업 생산능력을 개발하지 않는 한, 어떤 중국 통치자도 전쟁과 식량 중 택일해야 할 기로에 놓일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亞금융허브도 싱가포르에 내줘…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

올해 반환 25주년을 맞은 홍콩을 지켜보는 대만의 심경은 착잡하다.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2019년 반중(反中)시위가 벌어진 홍콩을 중국이 짓밟고 홍콩 민주인사와 학자들을 감옥에 넣는 것을 대만인들이 지켜봤다"고 지적했다.

2020년 6월 15일 홍콩 퍼시픽 플레이스 쇼핑몰 밖에서 시위 도중 사망한 마르코 렁 렁킷을 추모하는 집회에 참석한 마춘만(가운데). 홍콩 민주화 운동에 20차례 참여한 마춘만은 비폭력 시위를 벌였음에도 국가 분열을 선동한 혐의로 징역 5년9개월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6월 15일 홍콩 퍼시픽 플레이스 쇼핑몰 밖에서 시위 도중 사망한 마르코 렁 렁킷을 추모하는 집회에 참석한 마춘만(가운데). 홍콩 민주화 운동에 20차례 참여한 마춘만은 비폭력 시위를 벌였음에도 국가 분열을 선동한 혐의로 징역 5년9개월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의 중국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중국이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을 도입해 홍콩을 강압적으로 통치하고 홍콩인들의 기본권을 제한했다"면서 "홍콩 시민사회가 붕괴하고 언론에는 재갈을 물렸다"고 밝혔다.

반중시위로 인한 정국 불안과 중국 주도의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홍콩이 주춤한 사이, 싱가포르가 최근 금융경쟁력 평가에서 세계 3위, 아시아 1위를 꿰찼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엄격한 코로나19 규제에 따라 홍콩에 있던 고급 외국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갔고, 2022년 세계 국제금융센터지수 평가에서 홍콩은 세계 4위, 아시아 2위로 종전보다 한 계단씩 내려앉았다.

골드만삭스 조사 결과 홍콩에서 반중시위가 한창이던 2019년 6~8월 싱가포르로 흘러간 자금은 40억 달러(5조7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장악력이 세지면서 홍콩의 경제적 자유가 침해될 것을 염려한 외국인들이 싱가포르를 택한 것이다.

싱가포르는 밀컨 연구소의 아시아 서밋, 포뮬러원(F1) 자동차경주대회 등 굵직한 행사를 개최하면서 올해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 방문을 예상하고 있다.

홍콩 전람회의업 협회 웬디 라이 부회장은 지난달 "싱가포르가 올해 개최한 행사는 최대 600~700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면서 "반면 홍콩이 올해 개최한 대규모 국제 행사는 아직까지 제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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