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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근 경찰청장 “승진 눈치 안보고 일하게, 총경 300명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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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법무부의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드라이브에 경찰국 신설 논란이 맞물려 한때 경란(警亂)으로 치닫던 경찰 내부가 어느새 조용해졌다. 새 정부 출범이후 무기력증을 호소하던 분위기가 걷히면서 경찰은 보이스피싱 등 악성사기 근절과 마약사범 검거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윤희근 청장 체제가 서서히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총경 숫자를 지금보다 300명은 늘려야 한다"며 "그래야 서울청,본청 들어오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총경 숫자를 지금보다 300명은 늘려야 한다"며 "그래야 서울청,본청 들어오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77회 경찰의 날(10월 21일)을 앞두고 지난 18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진행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은 “계급정년에 쫓겨 승진 때문에 눈치 보는 일 없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총경 직급을 300명 이상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지난 8월 10일 취임과 동시에 꺼낸 ‘선도적 미래 치안’을 다시 강조했다. 과학치안ㆍ글로벌치안ㆍ플랫폼치안의 3축으로 구성된 비전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래 치안’. 좀 추상적이다.
“기술발전에 따라 범죄 양상도 급변하고 있다. 마약 거래의 30% 정도가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 5년 전만 해도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신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원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사람을 늘려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AI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범죄 양상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장 상황은 물론 범죄 위험도까지 판단할 수 있는 ‘지능형 CCTV’가 도입을 앞두고 있고 실종자 수색용 드론도 확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치안 분야에서 첨단 기술이 활용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4족 로봇이 위험지역 순찰을 맡는 날이 머지않았다. 향후 5년 내에 선진국처럼 국가 R&D 예산 중 2~3%를 치안분야 끌어들이는 게 목표다. 현재는 0.5% 수준이다. 과학치안 기술과 운용체계는 해외로 수출해 치안한류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같은 정책 추진을 위해 경찰청 내에 ‘미래치안정책국(가칭)’을 신설할 계획이다.”    
악성사기 근절과 마약사범 엄단을 국민체감 1ㆍ2호 약속으로 내세웠다.
“후보자 시절 국민들이 경찰에 기대하는 핵심은 민생 안정이라는 생각 아래 각종 연구와 조사, 내부 토론을 거쳐 잡은 방향이다. 특히 보이스피싱ㆍ전세사기ㆍ코인 유사수신 등의 사기는 돈 빌려주고 안갚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조직범죄다. 시스템을 갖춰 대응하지 않으면 적발해 처벌하기 어렵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사기성 정보를 수집ㆍ분석해 사건을 인지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사기정보분석원’ 설립이 필요하다.”
대통령도 마약 엄단을 강조한 가운데 검ㆍ경이 경쟁적으로 마약 단속에 나서는 모양새다.  
“인터넷과 국제 택배가 구매와 유통의 주된 경로로 등장하고 대량 유통으로 가격도 낮아지면서 10~20대가 주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검·경의 경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부의 관련 기능이 모두 나서야 할 문제다. 관세청이 밀수 단속, 식약처가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에 전문성이 있듯이 국내 유통망을 추적해 끊어내는 게 경찰이 잘하는 일이고 해야될 일이다. 경쟁으로 보인다면 선의의 경쟁이라고 봐달라”
다크웹과 보안성 높은 메신저, 코인이 활용되는 범죄를 경찰이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보안상 어떤 수법까지 추적 가능하다고 밝힐 수는 없지만 단언컨대 다크웹이나 보이스피싱 등을 추적하는 사이버수사 능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시ㆍ도청 단위로 편제된 사이버수사대가 각종 수사에 유기적으로 결합해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취임 후 ‘복수직급제’ 도입 필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총경=서장’, ‘경정=과장’ 등의 도식을 깨고 중요 부서의 과장엔 총경도 보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렇게 해서 총경 계급 정원을 300명 이상 늘려야 한다. 그래야 승진에 유리한 본청·서울청에 들어오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전국의 경찰관이 13만명(9월말 기준 13만2195명)인데 총경(서기관급) 이상은 0.5%에 불과하다. 계급정년 제도도 있다. 비슷한 계급구조를 가진 국세청엔 서기관 이상이 2%이고 계급정년이 없다.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라 승진 때문에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윤 청장은 "치안 R&D에 투자하면 방산만큼은 아니더라도 치안 장비와 시스템 분야에서도 K-치안 붐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윤 청장은 "치안 R&D에 투자하면 방산만큼은 아니더라도 치안 장비와 시스템 분야에서도 K-치안 붐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핵심 피의자들의 해외도피로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해외도피한 범죄자가 현지에서도 범죄를 저지른다면 검거 후 송환이 용이하지만, 빼돌린 돈으로 조용히 사는 경우엔 훨씬 어렵다. 경찰은 인터폴 공조를 통해 연간 300명 이상 해외도피사범을 국내로 송환하고 있다. 이같은 협조를 받기 위해선 국내로 도피한 외국 범죄인들에 대한 검거 및 송환도 잘 이뤄져야 한다. 한국인 범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피처는 여전히 중국이다. 보이스피싱도 주범은 대부분 중국에서 활동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의무 격리제도가 해제되면 중국을 방문해 공조의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 경정 시절 2년6개월간 중국 칭화대 및 사회과학원에서 연수한 윤 청장은 중국 공안의 주요 간부들과의 교류의 끈을 이어왔다.)

최근 ‘신당역 살인사건’으로 온 국민적 공분이 컸다.
“2년여 전 피해자가 첫 신고한 이후 전주환의 범죄 위험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특히 9년형을 구형받은 게 ‘너 죽고 나 죽자’식 범죄를 벌인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다. 구형 후 사건 발생까지 무방비로 뒀던 게 가장 큰 허점이었다. 대안으로 검ㆍ경간 스토킹 사건 협의체를 운영하자는 제안을 했다. 기존에는 영장 청구시나 임시조치 신청시 서류만 오갔다면 이제는 직접 머리를 맞대고 분리의 필요성과 수단을 함께 강구하자는 것이다.”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움직임 속에 ‘검수완박’의 결과물인 국가수사본부가 어정쩡해진 것 아닌가.  
“검찰이 수사 범위를 넓힌다지만 경찰이 모든 수사 영역에서 검찰의 직접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를 개시·종결할 수 있게 됐다는 대전제가 바뀌지는 않는다. 국수본은 그 안에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수사능력을 갖춰나가고 보여주면 되는거다.”
일선에선 특수수사 영역에서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도 청구해주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도 영장청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신 구속영장은 차치하고 압수수색 영장 청구마저 이뤄지지 않는다면 중요 수사가 지연돼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 현재로선 기울어진 운동장이긴 해도 영장심의위원회를 활성화해 의견을 개진하는 게 유일한 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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