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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민주당의 '국회 권위' 사적 유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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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미리 밝히자.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그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회적 대타협 중재자 역할을 하기엔 지나친 편향성을 드러냈다. 노란봉투법, 중대재해법,비정규직 문제 등 살얼음판 같은 노동 현안을 풀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는 말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결론을 이끌어낸 논리에 수긍할 수 없다. "신영복은 김일성주의자다, 문재인은 신영복을 존경한다, 그래서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다"는 거친 3단 논법은 논리학의 기초를 결(缺)했다.

김문수 국감 발언 부적절했지만
생각 안 숨겼다고 국회모욕인가
모욕 느꼈다면 '개인'이 해결하라

그러나 이런 발언을 국회모욕죄로 처벌하겠다는 데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국회에 모욕 받을 명예가 남아 있기나 한가' 생각부터 든다. 포퓰리즘 비판을 받는 양곡관리법이 국회 농해수위에서 날치기 처리되자 한 여당 의원이 야당 소속 위원장 옆에서 외쳤다. "대한민국 국회 더럽다. 대한민국 국회 참 더러워." 이게 지금 국회 모습 아닌가. 방탄, 떼거리, 막말…국회를 수식하는 이런 단어들에서 명예의 잔향이라도 맡아지는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과거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김 위원장을 국회모욕죄 등으로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뉴스1]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과거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김 위원장을 국회모욕죄 등으로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뉴스1]

김문수 고발은 민주당의 자기 부정이다. 현재 국회에는 모욕죄를 규정한 형법 311조를 삭제하자는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발의한 사람들이 바로 민주당 의원들이다. 그것도 지금껏 당을 좌지우지해온 최강욱·김남국·황운하 의원 등 소장 강경파들이다. 그런 민주당이 모욕죄를 들먹이는 게 좀 계면쩍지 않나.

형법상 모욕죄와 국회모욕죄의 취지가 다르다는 건 모르지 않는다. 국회 증언·감정법은 '증인이 폭행·협박, 모욕적인 언행으로 국회의 권위를 훼손한 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일반 모욕죄보다 처벌이 훨씬 무겁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 권능이 위험해지면 민주주의도 위험해진다는 이유일 게다.

그러나 "나를 아직도 수령에 충성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윤건영 의원의 질문은 개인 영역에 속한다. 윤 의원 스스로 "이런 질문 할까 말까 망설였다"고 하지 않았나. 백번 양보해 경사노위 장(長)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편향성을 드러내려는 질문이었다고 치자. 그랬다면 업무 부적합성을 지적하면 되지 '국회모욕'을 들먹일 건 없다. 말싸움 도중 갑자기 "너 나 몰라? 어디서 감히"를 외치는 못난이 꼰대 같은 짓이다.

생각이 위법한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는 한 머릿속을 뒤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국감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공세는 사상 검증을 떠올릴 만큼 집요했다. 김 위원장이 윤 의원에게 사과하자 다른 의원이 "사과가 구체적이지 않다"고 힐난했다. 급기야 또 다른 의원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과거 발언까지 끄집어냈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라는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다소 과장하자면 일본 에도 막부의 '후미에(踏み絵)' 심문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성상(聖像)이 그려진 판을 밟지 못하면 '기리시탄'(천주교 신자)으로 간주하던 그 방식 말이다.

민주당이 김 위원장의 직무 적합성을 따질 수 있다고는 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심문하듯 추궁한 끝에 얻어 낸 발언을 국회 이름으로 단죄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의원 개인이 모욕감을 느꼈다면 그냥 형법상 모욕죄로 고소하시라. 전직 대통령을 욕보였다고 느꼈다면 당사자더러 법 절차를 밟게 하시라(모욕죄는 친고죄라서 제3자가 고발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헌법기관이다. 하지만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과 개인으로서의 국회의원은 구분돼야 한다. 이 둘이 섞이면 국회 권능의 사적 유용이 된다. 개인 명예가 훼손됐다고 해서 국회모욕죄를 들먹이는 건 헌법기관 오·남용이다. 자신들이 모셨던 대통령을 욕한다고 해서 국회를 동원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이런 게 국회모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