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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카톡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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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1. “국내 1위 로펌에 가니 변호사가 의뢰인을 만나자마자 텔레그램 앱 설치부터 시키더라.” 벌써 9년 전 얘기다. 소송 중인 중견기업 대표가 2013년 겨울 이런 말로 주변에 텔레그램 가입을 권유했다. 그해 8월(안드로이드 버전은 10월) 나온 텔레그램은 대화 보안이 필요한 사람들의 카카오톡 대체재로 주목받았다. 서비스 3년 차를 맞은 카톡 주변에서 “검·경의 잦은 서버 압수수색 요청에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이 흘러나온 즈음이다.

텔레그램에는 비밀 대화 등 신기술도 있었다. 하지만  잠재적 ‘사법 리스크’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보다 서버가 해외에 있어 국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어렵다는 걸 높게 쳤다. “국세청 직원은 무조건 아이폰+텔레그램 조합을 쓴다” 같은 말이 이후 정·관계에 회자했다.

#2. 지난 3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주변에서는 메신저 앱 ‘시그널’ 집단 가입이 화제였다. 대선 때까지 텔레그램을 쓰던 여권 주요 인사들이 인수위 초 돌연 시그널에 무더기로 등장해 기자들이 그 배경을 궁금해했다. ‘안전한 메신저’가 모토인 시그널은 미 중앙정보국(CIA)·국가안보국(NSA) 출신의 기밀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애용했고 국내에서는 드루킹·김경수 전 경남지사 간 소통에 쓰여 유명해졌다.

다만 여권 내 텔레그램→시그널 이동은 해프닝 수준에 그쳤다. 정부 출범 후인 올 7월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대표 대행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체리 따봉’ 대화를 노출해 여전히 굳건한 텔레그램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계기로 라인·텔레그램·페메(페이스북 메신저) 등 대체 서비스 수요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핵심 취재원으로 분류되는 인사 대다수가 “이미 한참 전부터 카톡을 거의 안 썼다”고 고백한다. 단톡방 용도 외에 사적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쨌든 조심해야 하는 세상 아닌가”(중진의원)라는 반응이다. 그래도 SK C&C 화재 당일 4800만 전 국민이 난리인 중에 그들만 카톡 밖 세상에서 평화로웠던 건 아이러니하다.

대통령이 카카오를 “사실상 국가기간통신망과 다름없다”고 규정했다. “카톡 먹통을 뉴스 보고 알았다” 해도, 하루 500건씩 자체 집계되고 있다는 소상공인 피해 사례까지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