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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꿈꾼 트러스, 경제 실책·각료 사퇴에 결국 사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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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가 20일(현지시간) 오후 긴급 기자회견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고 말한 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로 돌아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가 20일(현지시간) 오후 긴급 기자회견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고 말한 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로 돌아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결국 총리직 사임을 선언했다. 감세안 철회 후폭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이 임명한 각료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다. 지난달 6일 총리에 취임한 트러스는 44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란 오명도 갖게 됐다. 직전 기록은 19세기 취임 119일 만에 사망한 조지 캐닝 총리다.

BBC 등에 따르면 트러스 총리는 이날 오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어 보수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 당대표 선거로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총리직에 머물겠다”고 말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에선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당 대표를 사임해도 후임 당대표 겸 총리가 선출되기 전까지는 총리직을 맡는 것이 관례다. 트러스 총리의 전임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도 지난 7월 사임 발표 뒤 새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총리직을 맡았다. 후임으로는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벤 월리스 국방장관,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거론된다.

트러스를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은 잇따른 경제정책의 ‘헛발질’이다. 트러스는 취임 직후인 지난달 23일 대대적인 감세와 공급 부문 개혁을 통해 영국의 경제성장을 이끌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반세기 만에 최대 규모인 450억 파운드(약 72조2371억원)의 감세정책을 발표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원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시장에선 영국 정부가 막대한 금액의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영국 국채 가격은 폭락(국채금리 폭등)하고 파운드 가치가 폭락했다. 이에 정치권과 시장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트러스 총리는 지난 3일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들은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 계획을 철회했다. 14일엔 법인세 인상 폐지 계획을 없던 일로 하고 감세 정책을 주도한 쿼지 콰텡 재무장관도 경질했다.

19일엔 트러스 총리의 감세정책을 지지했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전격 사임했다. 브레이버만 장관은 사직서에서 “우리가 실수하지 않은 척하고 모든 게 마법처럼 잘 풀릴 것이라고 바라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가 아니다. 정부의 일이란 잘못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며 사실상 트러스 총리 사임을 압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트러스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나는 그만둘 사람(quitter)이 아니라 싸우는 사람(fighter)”이라며 사임을 거부했다. 하지만 보수당의 상징이었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추앙하며 ‘철의 여인’을 꿈꿨던 트러스 총리는 하루도 버티지 못한 채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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