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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은식이 고발한다

野대표 저급한 반일 선동…'일제 99%' 내시경의 진실 아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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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김포공항 국제선 카운터에 몰린 출국자들. 그 위에 일제 내시경 진단 장비 사진을 합성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지난 11일 김포공항 국제선 카운터에 몰린 출국자들. 그 위에 일제 내시경 진단 장비 사진을 합성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잦아들면서 무비자 일본 관광 길이 다시 열렸다. 재개와 동시에 우리 국민의 일본 숙소 예약 건수가 2500%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인천공항에서 들뜬 표정으로 일본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행객들 표정을 보니 불과 3년 전 무고한 시민의 렉서스 차에 빨간색 페인트로 욕설을 적고, 아사히 맥주를 팔던 편의점주 면전에 욕설을 퍼붓고, 유니클로 매장에 진열된 의류를 립스틱으로 훼손하던 그 국민이 맞나 싶다. 돌이켜보니 그런 광기에 휩싸였을 때조차 우리 국민이 제대로 일제 불매운동을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눈에 보이는 몇몇 대표 일본 브랜드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나의 비뚤어진 애국심을 과시하고자 했을 뿐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한 수많은 일제엔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내과 전문의인 내가 매일 하는 소화기 내시경이 대표적이다. 반일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2019년 10월 서울 유니클로 광화문점 앞에서 벌어진 평화나비네트워크와 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뉴스1

2019년 10월 서울 유니클로 광화문점 앞에서 벌어진 평화나비네트워크와 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뉴스1

내시경은 한국인이라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꼭 받는 검사다. 국가 재정으로 40세 이상 성인에게 2년마다 검진용 위내시경을 시켜주고, 대변 잠혈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대장내시경도 시켜준다. 내시경 검사가 필요한 소화기 계통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실상 전 국민이 쓰는 소화기 내시경 기기의 99%가 일제란 사실을 걸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비단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1위는 휘어지는 소화기 내시경을 최초로 상용화한 올림푸스(Olympus)로, 국내 시장에선 70% 넘는 점유율을 차지한다. 내과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좀더 전문화한 소화기내과 분과 수련 과정을 밟는 2년 여의 시간은 올림푸스 내시경 기기를 손에 익히는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학병원 등 대형 수련병원의 90% 이상이 올림푸스 장비를 갖추고 있다. 후발업체들 모두 올림푸스와 비슷한 형태의 내시경을 만들고 있을 만큼 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다. 2위는 카메라 마니아들에게 유명한 펜탁스(Pentax)로, 점유율 18%다. 최근 기술개발이나 경영성과 측면에서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위는 후지필름으로 알려진 후지논(Fujinon)으로, 점유율은 11%다. 그 외에 독일제와 중국제 내시경이 있으나 1% 미만의 소소한 점유율에 불과하다.

일본은 발달한 내시경 기술을 바탕으로 소화기 계통 질환의 진단 기준이나 치료법을 독자 개발해 전 세계 의학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이런 선진적 의술을 배우기 위해 적잖은 국내 소화기내과 교수들이 지금도 일본에서 연수를 받는다. 내가 한 대학병원에서 소화기내과 수련을 받던 당시 한 교수님이 "미국은 괜히 자존심을 세우며 일본의 우세를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유럽 등에서는 확실히 일본을 존중하는 분위기"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다.

40세 이상 전 국민이 검진용 내시경을 무료로 받을 수 있기에 수요는 확실히 보장되는데도 국내 기업은 왜 내시경을 만들지 않는 걸까? 사실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거다. 과거 한 학회에 참석했을 때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삼성메디슨 직원에게 "왜 삼성같이 돈 많고 기술 좋은 회사에서 내시경은 안 만드냐"고 물었더니 "내시경에 걸린 특허만 8000개라 삼성이라도 건드릴 수 없다"고 했다. 또 "기술을 들여와 생산을 한다 치더라도 최종 검수 과정에서 장인 손끝으로 불량을 잡아내는 기술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라고도 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우리 국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내시경 시장을 일제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간 갈등상황을 조정해야 할 정치인,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되려 SNS에 죽창가를 올리며 관제 데모하듯 일제 불매운동을 조장했다. 이 사람들 주장대로 일제는 전부 사지 않아야 하고, 그 논리대로 내시경 역시 수입하지 않으면 수많은 소화기계통 환자와 관련 암(식도암·위암·소장암·췌장암·간암·담도암·담낭암·대장암) 환자는 다 죽으란 말과 똑같다. 비단 내시경뿐만이 아니다. 다른 의료기기 영역도 마찬가지다. 일본 혈액진단 기기업체인 시스멕스(Sysmex)는 국내를 포함 전 세계 점유율 50%로 세계 1위, 체온계로 유명한 테루모(Terumo)는 주사용품 등 심장혈관 영역 제품군에서 점유율 1위다. 이걸 전부 다 불매해야 한다고?

자료=통상산업자원부

자료=통상산업자원부

의료기기뿐 아니라 일본은 오래전부터 소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자랑해왔다. 일제가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대체재를 구하기 어려운 사업 분야는 또 어떤가. 반일 불매운동에 편승해 멀쩡한 사업을 접어야 했나. 실제론 일반 대중 눈에 잘 노출되지 않는 상당수의 B2B(Business to Business) 업종은 지난 정부 당시의 반일 불매운동에 전혀 영향받지 않았고 주류나 의류·완성차 업계, 그리고 관광업자들만 토착 왜구라는 모욕적 언사를 듣고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큰 타격을 입었을 뿐이다.

그 당시 선동하던 자들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도대체 불매운동을 어떻게 하면 이기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지는 걸까? 자유무역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당사자는 서로 원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기에 모두 위너(승자)다. 오히려 필요한 물건인데도 헛된 생각에 구매하지 않는 자가 루저일 뿐이다.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게 기술력으로 일본을 이기겠다는 의도였다면 거꾸로 끊임없이 교류하며 상대의 앞선 기술력을 배워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조선말 흥선대원군처럼 아예 문호를 닫으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정신승리뿐이라는 걸 역사가 이미 증명한다.

일제 불매운동 광풍이 일본여행 광풍으로 바뀐 상황에서도 제1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SNS에 최근 진행된 한·미·일 연합훈련을 두고 ‘한반도에 다시 욱일기 걸릴 수도 있다’라거나 ‘극단적 친일’이라는 표현을 쓰며 다시 반일 선동에 나섰다. 아마도 지금 그의 목을 조여오는 온갖 사법 리스크에 쏠린 세간의 관심을 돌리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제 이런 뻔한 수법은 안 통한다. 그만하자. 애초에 실천 불가능한 반일 불매운동은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저급한 정치 선동이라는 걸 이제 지각 있는 국민은 안다. 과거 보수 정부 시절 야당인 민주당과 그 진영 사람들이 소란을 일으켰던 광우병과 사드 전자파 선동 등은 지금 돌이켜보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지성의 전형이었을 뿐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