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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 다가오면 베개 안고 울던 교수…이젠 창업 전도사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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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퓨처EV 대표가 19일 경기도 화성시 퓨처EV 연구소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전기 경상용차 시제품인 F100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우상조 기자

김경수 퓨처EV 대표가 19일 경기도 화성시 퓨처EV 연구소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전기 경상용차 시제품인 F100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우상조 기자

언젠가부터 눈에 잘 띄지 않는 차들이 있다. 라보·다마스 같은 적재량 1t 미만의 경상용차다. 이 차들은 안전·환경 문제로 지난해부터 단종됐다.

[혁신창업 인터뷰] 김경수 퓨처이브이 대표

국내에서 경상용차 수요는 연 3만여 대로 나름 탄탄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세탁소·음식점 등에 주로 공급돼 ‘자영업자의 발’로 불린다. 꾸준히 수요가 있을 뿐더러 정부의 활발한 친환경차 확대 정책 등으로 최근에는 전기 경상용차 시장도 주목 받고 있다.

단종된 0.5t 트럭, 전기차로 재탄생시켜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경형 전기 상용차를 판매하는 곳은 전무하다. 주로 중소 업체들이 중국 등지에서 부품을 수입해 조립·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김경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20여 년간 축적한 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해 퓨처이브이(EV)를 창업한 이유다.

19일 경기도 화성시 연구소에서 만난 김경수 대표는 “0.5t 상용차는 소상공인 물류와 근거리 배달, 택배, 캠핑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며 “퓨처EV는 자체 설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사후 서비스(AS)까지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으며 강화된 소형 화물차 안전 기준도 충족할 수 있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1월부터 소형화물차 안전 기준 개정안을 시행한다. 고정벽 정면 충돌 등에서 인체 상해 기준을 통과해야 하고 비상제동장치(AEBS)를 장착해야 한다. 퓨처EV는 자체 섀시 설계로 충돌 기준을 만족시켰다. 전기차 특성에 맞춘 AEBS와 제동장치(ABS), 차체제어장치(ESC) 등 주요 전기장치 시스템도 자체 설계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년 축적한 제어 기술이 바탕

김 대표는 이 가운데 배터리 제어관리시스템(BMS) 기술을 핵심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배터리 충전 상태가 너무 낮거나 높은 상태가 반복되면 배터리 수명이 저하되는데 BMS는 배터리를 제어해 성능과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자체 차량제어기(VCU) 기술 역시 자랑거리로 꼽았다. 전기차의 구동원인 전기모터는 대량 생산하면 모터 간 성능 편차가 커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성능 편차를 줄일 수 있는 강인 제어(불확실성이 큰 시스템을 견고하게 제어)다. 김 대표는 “구동 시 모터에 가해지는 토크 양을 계산하는 등의 기능으로 효율적 모터 제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김 대표가 오랜 기간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해 온 제어 기술 덕분이다. 여기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완성차 업체의 베테랑 기술자들의 노하우도 더해졌다. 이 회사의 직원은 18명으로 이 중 17명이 연구개발(R&D)직이다.

퓨처EV의 제품은 초소형(적재량 300㎏), 경형(450㎏), 소형(550㎏) 등 3가지로 나뉜다. 소형은 경형보다 전장이 200㎜ 더 길다. F100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시제품 5대를 개발했다. 생산은 농기계 전문기업인 대동이 맡는다. 유통은 국내 대기업 계열사가 담당하기로 했다. 현재는 이 회사의 국내 공장에서 쓰기 위한 용도로 내년 하반기 초소형 제품을 먼저 출시할 계획이다.

소형과 경형 전기 상용차는 2024년 상·하반기에 각각 1000대씩 출시하는 게 목표다. 또 다른 대기업 계열사와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고효율 배터리팩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친환경 전동화 시대로 바뀌면서 대기업들도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유통 네트워크를 선점하려고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기 경상용차의 사업성을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각 지자체가 활발하게 전기 상용차 지원 사업을 하면서 여러 업체가 진출하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사업성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수요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수 퓨처EV 대표가 19일 경기도 화성시 퓨처이브이 사옥에서 전기 상용차 시장 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경수 퓨처EV 대표가 19일 경기도 화성시 퓨처이브이 사옥에서 전기 상용차 시장 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 대표는 “이번 창업이 두 번째”라며 사업성에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2005년 한국공학대 교수 시절 교원창업으로 카오디오 업체인 옵토멕을 설립했다. USB와 MP3 음원을 한 개의 시스템 제어 칩으로 모두 인식하게 한 당시로선 혁신적인 카오디오를 개발해 현대모비스와 쌍용차·GM대우 등에 납품했다.

“국내에선 처음에는 관심도 없다가 미국 포드가 그 카오디오를 장착해 오토쇼에 나가니 국내 대형 자동차 업체에서도 연락이 오더라고요. 이때 당시 자동차부품 전자회로의 특성을 자세히 파악한 것이 두 번째 창업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2007년부터 KAIST에서 근무하면서 자동차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한 것 역시 관련 지식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대표적인 게 사업비 150억원 규모의 국토교통부 국책과제 ‘디젤 택배 트럭의 하이브리드 개조 기술 개발’(2017년)이다. 엔진을 개조해 디젤 차량을 디젤-전기 하이브리드로 바꾸는 사업으로 대당 500만원으로 연비 30% 향상, 온실가스 배출 30% 감축이라는 효과를 거뒀다. 또한 그는 제어, 로봇, 자동차 관련 110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대학원에서 전공 공부를 하면서부터 창업을 꿈꿨다. 연구 주제로 시스템 제어를 선택한 것도 전산·전자·기계 등의 융합이 필요한 분야라서다. 고교·대학 조기 졸업으로 20대 후반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동기생들처럼 연구소나 대학이 아닌 LG전자에 입사했다. 역시 창업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사회 생활과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5년간 근무한 뒤 유럽 반도체 회사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서 일했다. KAIST에서는 조천식모빌리티대학원 학과장과 친환경스마트자동차연구센터장 등을 맡으면서 자동차 관련 연구를 이어갔다. 현재는 기획처장을 맡고 있다.

“창업 독려하지만 교수 사회 여전히 보수적”

KAIST는 이광형 총장이 ‘원(하나) 랩(연구실), 원 창업’을 주장할 만큼 교원창업에 개방적인 학풍을 자랑한다. 김 대표는 “하지만 교수 사회 전체로 보면 여전히 창업에 큰 저항이 있다”고 진단한다. 교수가 창업하면 비는 수업을 다른 누군가 채워야 하지 않느냐, 외부 연구비 지원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 창업 하려면 학교를 나가야지 같은 부정적 시각 때문에 창업을 주저한다는 얘기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공학기술 연구자에게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은 미션입니다. 과학기술자들이 학생들 교육, 페이퍼로 끝나는 연구에서 벗어나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테슬라 같은 회사의 창업자가 돼야 합니다.”

그는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무너진 핀란드의 대표 기업 노키아를 예로 들며 첨단기술로 창업하지 않으면 반도체·조선·자동차 같은 주요 산업조차 ‘파괴적 혁신’에 밀려 완전히 뒤처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텔이 150억 달러에 인수한 모빌아이도 이스라엘 히브리대 암논 샤슈아 교수가 설립한 회사”라며 “국가적으로 창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수 퓨처EV 대표가 19일 경기도 화성시 퓨처이브이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교원창업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경수 퓨처EV 대표가 19일 경기도 화성시 퓨처이브이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교원창업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우상조 기자

교원창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두 가지를 제안했다. 우선 교수가 교육과 연구만 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유연한 사회 제도 구축이다. 가령 교수 평가 기준에 창출한 일자리 수를 포함하는 식이다. 대학과 연구소의 창업 승인 절차도 간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AIST는 교원창업 승인 기간이 2개월 정도로 다른 대학의 3분의 1 수준이다. 최종적으로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바꾸는 게 목표다.

이해충돌 논란도 교원창업을 막는 요인으로 꼽았다. “우리 사회는 교수들에게 굉장히 높은 청정도를 요구합니다. 그런 경직된 상태에서 자율성과 유연성을 발휘해 사업을 이끌기는 어려워요. 조금 과장해서 몸이 반으로 분리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다른 어떤 조직보다 대학에 많이 와 있어요. 돈은 많이 못 벌어도 교육하며 살겠다고 생각하는 교수들이 많습니다. 이런 교수들이 다시 문을 열고, 사회로 진출할 수 있게 인센티브를 줘야 합니다.”

“창업 전 최소 1년 경영 공부해야”

교원창업에 대한 지원 제도를 특혜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사업적 효과가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첨단 기술이 있는 곳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김 대표는 교수들도 고쳐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술은 내 기술이니 내가 100% 다 통제해야 한다는 좁은 생각을 확장해야 합니다. 기술을 팔 수는 없잖아요. 그 기술이 들어간 제품과 서비스를 파는 것이죠. 결국 사업 전체에서 보면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예요. 근데도 100% 내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한다? 과욕입니다.”

해결책으로는 창업 주체인 교수를 대상으로 한 경영이나 자금 운용 등에 대한 교육을 제시했다. 김 대표 역시 첫 창업 때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월급날이 다가오면 막막해 베개를 안고 운 적도 있다고 한다.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갔는데 회사 이름으로 대출을 해본 적이 없으니 신용도도 없는 거예요. 최소 1년은 자금 유치와 운용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공부하면 어떤 투자사, 육성기관을 찾아가야 할지 보입니다.”

이런 첫 창업 때 경험을 바탕으로 두 번째 창업은 첫 회사의 잉여금 15억원을 종잣돈으로 삼았다. 김 대표는 “공부하고, 공부를 마치면 100% 행동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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