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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환율 외교' 실패... 예상보다 빠른 엔화 추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 일본인이 20일 일본 도쿄에서 카메라를 들고 엔-달러 환율의 150엔 선 붕괴 표시하는 전광판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일본인이 20일 일본 도쿄에서 카메라를 들고 엔-달러 환율의 150엔 선 붕괴 표시하는 전광판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엔화 가치의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150엔이 20일 깨졌다. 외환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빠른 하락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제롬 파월 의장 등이 기준금리 최고치 전망을 5%로 제시한 뒤에야 달러-엔 환율이 150선이 깨질 것으로 봤다.

현재 파월 등 Fed 내부자들이 예상한 기준금리 최고치는 4.6%다. 예상대로라면 Fed의 연방공개시장정책위원회(FOMC)가 열리는 11월 1~2일 이후에나 엔화 가치가 150선을 뚫고 하락할 가능성이 컸다. 엔화 가치 하락이 예상보다 얼추 10일 정도 빠른 셈이다.

이날 일본 정부의 모순적인 태도가 엔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했다. 요즘 ‘엔화 대변인’으로 불리는 간다 마사토 재무관이 지난주에 “지나친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날 일본은행(BOJ)이 달러를 풀며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 바람에 도쿄외환시장 마감 직전까지 환율은 달러당 149.81~149.97엔 선에서 오르내림을 되풀이 했다. 요즘 BOJ는 주당 약 200억 달러씩 시장에 풀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런데 국채시장에선 일본은행이 국채매수(엔화 풀기)에 나섰다. 한쪽에서는 달러를 매도하면서, 동시에 국채를 사들이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 셈이다.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면서 엔화가치 급락도 막으려 발버둥친 셈이다.

환율 외교 실패로 끝나 

일본 정부의 모순적인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일본이 대표적인 국채 금리를 연 0.25% 선 아래에 묶어두면서 엔화 가치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외환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이미 쓸모없는 행위로 판정이 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도 모순적인 정책의 한계를 스스로 알고 있었는지, 이달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 재무장관 회의에서 아주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외환시장 요동에 공동 대처한다는 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G7 재무장관들은 12일 내놓은 성명에서 일본의 요구를 반영하기는 했다.

“많은 나라의 통화가 올해 들어 급격하게 변동한 점을 인식하고 2017년 5월 회의에 합의한 내용을 재확인한다.

그런데 2017년 5월 합의한 내용이라고 해봐야 “급격한 환율 변동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안정에 좋지 않다”는 ‘지당한 말씀’일 뿐이다 일본의 환율 외교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日 43년만에 최대 무역적자 

이제 달러-엔 환율은 G7 회담 직전처럼 미∙일 통화정책 디커플링과 원자재 가격 상승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일 전망이다. 주요 국가 가운데 현재까지 일본만이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긴축에 나서지 않고 있다.

요즘 에너지 가격이 강세를 보이며 최대 에너지 수출국인 미국이 혜택을 보고 있다. 이 또한 달러 가치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반면, 일본은 올 상반기에 무역적자가 11조 75억 엔(약 105조2000억원)에 이르렀다. 1979년 이후 43년만에 최대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제비어 코로미나스 외환담당 수석 분석가는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사려면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그 보험료가 너무 비싸 이를 감수하고 사려는 딜러나 펀드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엔화 매입세력 자체가 사실상 종적을 감춘 상태라는 얘기다.

美 국채 10년물 금리 주목해야 

그 바람에 엔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저점을 경신하는 일이 이어질 전망이다.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을까. 외환시장 전문가들에게도 달러-엔 환율은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지표다.

특히 올해 들어 달러 가치는 경제와 지정학적 불안감이 커질 때 ‘급격하게 오르고’, 불안감이 잦아들면 ‘덜 오르는’ 비대칭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예전엔 불안하면 달러 가치가 오르고, 진정되면 오른만큼 떨어지는 비대칭성을 보였다.

이런 시장 흐름 와중에도 외환 전문가들이 주시하는 변수가 있다. 미국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이다. 이 수익률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이 달러 가치 고점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현재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4.149% 수준이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Fed의 통화정책 전망에 민감하다. 오는 11월 1~2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정책위원회(FOMC)에서 파월 의장 등이 제시하는 힌트에 따라 엔화 가치의 저점이 엿보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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