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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변시 시험장 선택 못한다?…서울대 로스쿨생 “차별” 인권위 진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국제관에서 제11회 변호사시험을 치르려는 수험생들이 시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국제관에서 제11회 변호사시험을 치르려는 수험생들이 시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중증 지체장애인으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재학 중인 20대 A씨는 내년 1월 치러지는 제12회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다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해 제10회 변시부터 법무부가 시험장을 전국 25개 법전원 소재 대학으로 확대하면서 응시자들은 모교 시험장을 우선 배정받을 수 있게 됐는데, A씨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던 것이다. 중증 장애인 응시자는 시험장이 서울 소재 대학 두 곳(연세대, 중앙대)으로 제한됐다. 어느 쪽이든 서울 관악구에 살며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A씨에겐 먼 거리였다.

시험장 인근에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것도 난제였다. 변시는 나흘간 진행되고,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 30분~오후 7시 사이에 시험이 끝난다. 다만 시각 장애인이나 중증 뇌병변 장애인 등은 변시에서 최대 2배의 시험 시간을 더 보장 받는 까닭에 시험이 밤 늦게까지 이어진다. 이 때문에 집과 먼 시험장이 배정되면 숙소 예약이 사실상 강제된다. A씨를 대리하는 김남희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 겸 변호사는 “A씨는 수면 시 인공호흡기 등을 써야 해 숙소를 옮기면 사실상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시험장 확대로) 동기들은 모두 기뻐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흘 동안 진행되는 변호사시험을 (휠체어를 타고) 먼 거리의 학교에서 응시하면 얼마나 힘들지 가늠조차 안 된다”고 했다. A씨는 시민단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연)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장추연은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의 도움을 받아 20일 법무부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변시 장애인 응시자의 시험장 선택권 제한은 차별”이라며 “장애인 응시자가 자유롭게 시험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면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선택권을 보장받으며, 국가는 장애인 등에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장애인복지법 역시 국가가 실시하는 자격시험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응시자가 동등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도록 편의를 제공하라고 명시한다. 김남희 변호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해 불리하게 대하는 ‘직접차별’이며,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해 결과적으로 장애인을 불리하게 하는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법무부가 법전원에 장애인 등 학생을 뽑도록 해놓고, 변시 등에서 장애인 편의 조치에 손을 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에 따라 전국 법전원은 매년 입학자의 7% 이상을 신체적·경제적·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으로 선발하고 있다. 2009~2018년 법전원에 입학한 장애인은 총 135명(전체 정원의 0.65%). 하지만 2019년 기준 특별전형 응시자의 변시 합격률은 33.6%로 전체 응시자 50.8%를 크게 밑돌았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 학생의 낮은 변시 합격률은 시험장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등 장애로 인한 차별 요소들이 누적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현재 장애 유형에 따라 시험 시간 연장과 확대문제지, 답안작성 대행 등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법무부 “인력 운용 한계…전면 확대 어려워”

법무부는 “인력 운용에 한계가 있어 장애인 응시자에게 시험장을 전면 확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 변호사는 “1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별다른 개선 없이 중증 장애인 시험장을 제한적으로 운영해 온 것은 법무부의 의무태만”이라며 “중증 장애인 시험장 운영에 드는 비용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2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회견을 열고 있다. 이병준 기자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2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회견을 열고 있다. 이병준 기자

앞서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해 8월 법무부에 장애인 학생의 시험장 선택권을 확대하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고, 유엔(UN) 장애인권리위원회 역시 지난달 5일 한국 정부에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법조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개별화된 지원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와 장추연은 이날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진정서를 접수했다. A씨 측은 “11월 말이 돼서야 응시표를 출력해 어떤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지 알 수 있다”며 “이때는 변시가 1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므로 문제를 제기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인권위에 긴급 구제도 신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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