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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발 서는 곳"…30년 감춰온 기묘한 '신령의 숲' 활짝 열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5일 원주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을 찾은 관광객의 모습. 치악산 성황신을 모신 당숲으로 30년 넘게 일반 출입을 막고 있었는데, 올가을에는 한 달 여간 한시적으로 개방에 들어갔다.

지난 15일 원주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을 찾은 관광객의 모습. 치악산 성황신을 모신 당숲으로 30년 넘게 일반 출입을 막고 있었는데, 올가을에는 한 달 여간 한시적으로 개방에 들어갔다.

30년 넘게 일반인 출입이 막고 있는 신령한 숲이 있다. 강원도 원주의 성황림(城隍林)이다. 이름 그대로 성황신(서낭신)이 깃든 숲이어서, 또 천연기념물(제93호)이어서 긴 시간 극진하게 모셔왔다. 1년 중 제사를 지내는 단 이틀만 빗장을 풀었던 이곳이 올가을 살포시 문을 열었다. 10월 15일부터 11월 26일까지 토요일마다 체험 프로그램을 연다는 소식에 냉큼 달려갔다.

숲의 기억

성황림의 입구. 문에 건 금줄은 부정(不淨)한 것을 금기한다는 뜻에서 매단 것이다.

성황림의 입구. 문에 건 금줄은 부정(不淨)한 것을 금기한다는 뜻에서 매단 것이다.

강원도 치악산(1288m) 남쪽 자락에는 기묘한 이름의 고을이 있다. ‘신의 뜰’ ‘산신령 사는 숲’이라는 뜻의 원주시 신림(神林)면이다. 이 땅에 치악산의 수호신을 섬기는 성황림이 자리하고 있어 ‘신림’이란 이름이 유래했단다. 예부터 신림면 성남2리 주민은 마을 어귀 고목을 서낭신(성황신)으로 여겨 그 옆에 서낭당을 세우고 제를 지내왔다. 한 칸짜리 당집만이 아니라, 서낭목과 함께 숲 전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보존하고 있다.

5만6231㎡(약 1만7000평). 신성의 영역이라지만 숲은 의외로 작다. 긴 세월 부침이 많았다. 해방 전후로는 먹고살 것이 막막해 화전(火田)을 일삼았고, 버스가 드나들기 쉽도록 숲 한가운데 서낭당 앞까지 큰길을 냈다. 1970년대에는 소위 ‘영발’ ‘기도발’ 잘 받는 장소로 소문이 퍼져 밤낮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하늘이 노했는지 수해가 잇따라 숲 곳곳이 파헤쳐졌다. “몰래 서낭당 안쪽으로 넘어와 내림굿을 벌이는 무당도 많았고, 예비군 훈련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마을 한 어르신이 귀띔했다.

성황림은 신성한 당숲인 동시에 다양한 식물이 뿌리내린 원시림이다. 사진을 찍은 15일에는 아직 단풍이 일렀지만, 10월 말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성황림은 신성한 당숲인 동시에 다양한 식물이 뿌리내린 원시림이다. 사진을 찍은 15일에는 아직 단풍이 일렀지만, 10월 말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처럼 숲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사람의 출입을 아예 막아버린 건 1989년의 일이다. 1933년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31만㎡가 넘던 숲이 이미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후였지만, 더 이상의 훼손은 막아야 했다. 울타리를 친 지 어언 30년. 사람이 발길을 끊자 숲이 깨어났다. 흙먼지 날리던 시골길이 지금은 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숲으로 되살아났다.

성남2리 주민 90여 명은 여전히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음력 4월 7일과 9월 9일이 오면 손수 돼지를 잡고, 옥수수로 술을 빚고, 명태를 꽂은 시루떡 따위를 제물로 마련한다. 성황제를 올리는 날이자, 숲이 공식적으로 문을 여는 유일한 날이다.

서낭당과 신목 주변으로 출입을 막는 금줄이 둘러져 있다.

서낭당과 신목 주변으로 출입을 막는 금줄이 둘러져 있다.

성황당 옆의 비석도 금줄이 감싸고 있다.

성황당 옆의 비석도 금줄이 감싸고 있다.

토요일 오후 오직 200명만

300년 수령을 헤아리는 성황당 옆의 전나무. 당집을 세우기 전부터 신목으로 모시던 나무인데, 어른 3명이 달라붙어도 감싸 안기 어려울 만큼 몹집이 웅장하다.

300년 수령을 헤아리는 성황당 옆의 전나무. 당집을 세우기 전부터 신목으로 모시던 나무인데, 어른 3명이 달라붙어도 감싸 안기 어려울 만큼 몹집이 웅장하다.

이제 숲으로 들어간다. 범상치 않은 장소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입구에는 금줄이 널려 있고 곳곳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숲은 예상 밖으로 깊었다. 버스가 오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풀이 무성하고, 나무가 울창했다. 오전 10시가 지나서도 좀처럼 해가 들지 않았다. 이 음산한 분위기 덕분에 과거 TV 시리즈 ‘전설의 고향’도 찍고, 영화 ‘전우치’에도 나왔었단다.

2012년 식생 조사 자료에 따르면 성황림에는 느릅나무‧졸참나무‧복자기‧소나무 등 60여 종의 목본식물과 복수초‧천남성을 비롯한 100여 종의 초본식물이 자라고 있다. 목익상(66) 문화관광해설사는 “숲이 깊은 만큼 토속 신앙, 농촌문화, 역사, 생태 등등 전방위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라고 소개했다.

숲 한가운데 서낭당이 있었다. 그 옆에 홀로 선 전나무는 숲 유일의 침엽수로 당집을 세우기 전부터 신목(神木)으로 모신 나무라고 했다. 대충 봐도 둘레 4m 높이가 30m가 넘는 것이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구의 흔적인지, 서낭당을 둘러싼 금줄에는 재운과 건강을 바라는 글을 적은 흰 종이가 중간중간 끼워져 있었다.

11월 26일까지 예약자에 한해 성황림 숲 체험이 가능하다. 사진은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뭇잎 왕관 만들기.

11월 26일까지 예약자에 한해 성황림 숲 체험이 가능하다. 사진은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뭇잎 왕관 만들기.

올가을 성남2리는 10월 15일부터 11월 26일까지 매주 토요일 숲 체험 행사를 열기로 했다. 하루 최대 200명의 예약자에 한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만 숲을 개방한다. 교육 목적의 20인 이상 단체에게 간간이 숲을 개방해오긴 했으나, 일반인에 정식 개방하는 것은 30여 년 만의 일이다. 한 명만 예약해도 숲을 열어준다. 프로그램은 간단하다. 숲에서 명상하고, 소원지를 작성해 서낭당 주변 금줄에 꽂는가 하면 천연 염색, 고구마 피자 만들기 체험 따위를 즐긴다. 단풍은 10월 말 절정을 이룰 예정이다. 민억기(61) 성남2리 이장은 “울타리를 친 건 30년이 됐지만 마을 대대로 섬겨 온 숲”이라며 “액운은 덜고, 좋은 기운만 가져가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남2리 마을 체험관에 도착하면, 트랙터를 타고 성황림으로 이동한다.

성남2리 마을 체험관에 도착하면, 트랙터를 타고 성황림으로 이동한다.

여행정보

성황림에 들어가려면 예약이 필수다. 성남2리(성황림마을) 체험관(033-763-7657)을 통해 하루 최대 200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입장료는 없지만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해야만 숲에 들 수 있다. 숲 체험 외에 소원지 만들기, 트랙터 마차 체험, 고구마 피자 만들기, 손수건 꽃물들이기 등의 체험을 엮은 상품이다. 1인 1만2000원부터. 마을 주민이나 문화관광해설사가 성황림 안내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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