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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이기는 민주당, 볼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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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실장

이정민 논설실장

두 개의 책이 있다.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와 『좋은 불평등』. 민주당의 실패를 다룬 책이다. 『이기는 민주당』은 ‘우상호 비대위’가 3000명의 유권자를 표본으로 선거 패배 원인의 ‘엑기스’를 추려낸 보고서다. 『좋은 불평등』의 저자는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전직 부원장 최병천이다. ‘한국경제 불평등에 관한 통념 뒤집기’를 목표했다는데,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좋은 의도’를 갖고 출발한 경제 정책이 왜 결과적 재앙으로 귀결됐는지 실증 자료와 통계를 토대로 과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둘 다 ‘내부자’의 저술인데다 미래 비전과 향후 민주당이 취해야 할 노선을 제시하고 있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민주당이 재집권을 염원한다면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일부를 소개한다.

『이기는 민주당』이 지적한 근본적 패인은 ‘민주당=무능’ 이미지다. 연금개혁, 타다 문제와 같이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당사자를 설득하는 대신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여론 뒤로 숨어버렸다. 그러면서 기득권과 이익 챙기기에는 철저했는데, 유권자들은 특히 시대성·도덕성·개방성에서 보수정당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민주화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내세워 도덕적 집단으로 포장한 위선에 넌덜머리를 냈다. 그러니 불평등 개선, 복지 강화, 검찰개혁을 외쳐대는 ‘묻지마 팬덤’ 지지층에 끌려다닌다. 민주당이 콘크리트 40%의 지지선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민주당 연패 원인은 ‘무능’ 이미지
‘대기업이 불평등 초래’ 통념 틀려
‘나쁜 결과’ 유발 ‘좋은 정책’ 그만
결과에 책임지는 책임윤리 갖춰야

『좋은 불평등』은 경제 정책의 디테일에 현미경을 들이댄 미시적 분석이다. 저자는 ‘좋은 정책’이 빚은 ‘나쁜 결과’가 진보 진영 내부에 자리잡은 거대한 통념의 오류, 다시 말해 대기업과 신자유주의, 비규정직 양산이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통념 자체가 틀렸다고 돌직구를 던졌다. 곳곳에 정신 번쩍들게 하는 구절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작동하지 않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불평등 확대로 귀결된 이유는 ▶임금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의 상충 가능성을 알지 못했고 ▶진짜 하층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저임금 노동자의 실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층 소득을 끌어올려 불평등을 줄이려는 기획이 작동하지 않은 건 하층이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노인이기 때문이다. 소주성이 실패한 것은 좌파적 정책이어서가 아니라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짜 하층은 노조 조합원에 있지 않고 대한노인회 회원 중에 압도적으로 많이 몰려있다. 그런데 진보세력은 노동운동 요구엔 관심이 많지만 노인 빈곤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적다.”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은 ‘이재명 민주당’도 폐기했을 정도로 대실패로 끝났다. 문 정부가 2018년 최저임금을 단번에 16.4%(6470원→7530원) 인상하자 일자리 증가 규모는 예년 평균(40만명)의 4분의 1 수준(9.7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선한 의도’가 불평등 확대라는 ‘나쁜 결과’로 귀결됐다. 이에 대한 문 전 대통령의 답변이 걸작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대선)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었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급격한 인상에) 감안됐을 것이다.”  ‘행위 결과의 무시, 불공정성에 대한 저항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데만 책임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신념윤리가의 변명이다.(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베버는 선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책임윤리의 부재를 경계했다. 정치가(statesman)가 갖춰야 할 자질로 신념윤리와 함께 결과에 책임지려는 자세를 갖는 책임윤리를 강조했다.

베버의 지적은 100년이 흐른 21세기 한국 정치에도 들어맞는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책임윤리의 실종에 대한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 집 걱정없이 살게 하겠다는 ‘좋은 정책’이 부동산 시장을 이중삼중으로 왜곡해 영끌·빚투족을 양산했고, “민주당 부동산 정책의 최대 피해자인 30대 유권자의 이탈이 대선 승패를 갈랐다”(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들의 고통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금리 시대로 전환하며 집값 하락과 깡통전세 대란으로 양상이 바뀌면서 고통이 배가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전 행태 그대로다. 노란봉투법, 기본소득, 기초연금 인상, 양곡관리법, 표준임대료법…시장 왜곡과 부작용이 뻔한 ‘좋은 의도’를 앞세운 신념윤리형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도발 위협 등에 대비한 한·미·일 연합 훈련을 ‘친일 국방’으로 몰며 친일-반일 프레임을 작동중이다. 결국 팬덤에 기대는 관성의 정치로 되돌아간 것 아닌가. 어려운 때일수록 정도(正道)로 가야 한다. 앞에 언급한 표본조사에 답이 있다. 조사에서 응답자(복수 응답)의 42%는 ‘정치행태에서의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어 미래지향적 정책, 민생정책의 전면화, 팬덤정치와의 결별 등이다. 윤석열 정부 견제(10%)는 뒤에서 두번째였다. 이기는 민주당,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