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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방문진 이사장(권태선)의 의아한 눈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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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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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울면 마음이 쓰인다. 누군가가 말을 하다 흐느끼면 꽤나 억울한, 또는 슬픈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인지상정이다.

"내부 갈등 해소가 소망"이라는데 #적폐 몰이 피해자 만난 적도 없어 #'정파적' 말하기 전에 자신 돌아봐야

지난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 현장에서 권태선(67)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울었다. 방문진은 MBC 대주주다. MBC의 공적 책임 이행 여부를 평가한다. 사장 선임 권한도 갖고 있다. 권 이사장은 이날 MBC 보도의 편향성을 방관해 왔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을 받았다. 그 뒤 답변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국정감사장에서 울음을 터뜨린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왼쪽). 방송 화면 캡처

국정감사장에서 울음을 터뜨린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왼쪽). 방송 화면 캡처

“요즘 한국 사회는 갈등이 너무 심하고 MBC 내부에서도 갈등이 심하다. 모든 문제를 다 정파적으로 바라보는 문제도 너무 심한 것 같다. MBC의 갈등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이다. MBC 이사를 지망할 때도 우리 언론사에서 제발 더 이상 이러한 불행한 과거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어서 지원했다.” 이 말 끝에 울먹임이 있었다. 눈물을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더 나은 방안으로 나은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는 언론인으로 살면서 언론인이 이렇게 비판의 표적이 되는 게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MBC 내부의 갈등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고, 그런 불행한 일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방문진 이사직 지원 동기라고 했다. 그래서 MBC 노동조합 간부에게 “권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 노조 측과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MBC 노동조합은 통상 MBC 제3노조(제1노조는 민주노총 언론노조 MBC본부)로 불린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에 MBC 내부에서 ‘적폐’로 몰린 언론인들이 주로 속해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중요 보직에 있으면서 부역, 그 시절에 임명된 사장들을 퇴진시키기 위한 운동에 불참하며 방해, 공정 보도 저해 등이 그들의 죄목이다. 그들 중 다수가 변방으로 쫓겨나 신입 사원이나 단기 계약 직원이 하던 일을 수년째 한다. 해고와 사직으로 회사를 떠난 이들이 수십 명이다.

권 이사장이 진심으로 갈등 해소를 소망했다면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스스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MBC 노동조합 간부는 “여러 차례 성명을 통해 ‘적폐 몰이’를 중단하게 해 달라고 방문진과 권 이사장에게 호소했다. 그런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가 우는 모습을 보며 ‘악어의 눈물’이라는 표현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한겨레의 창간 멤버로 그곳에서 편집국장·편집인을 역임했다. 한때 그가 신문에 쓴 칼럼을 종종 읽었는데, 과거의 그는 며칠 전 국감장에서 “한국 사회는 갈등이 너무 심하고, 모든 문제를 다 정파적으로 바라보는 문제도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말할 때와 사뭇 달랐다. 2008년 칼럼에 이렇게 썼다. ‘촛불시위에 나타난 아고라(미디어 다음의 토론방)의 위력은 깊이 있는 참여를 가능케 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데 있었다. 그런 아고라에 대해, 조·중·동과 그 하수인인 공권력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개시됐다.’ 대한민국 공권력이 세 신문의 하수인으로 격하됐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문제를 정파적으로 보는 시각 아닌가.

2014년 칼럼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인권유린을 저질러도 제대로 단죄되지 않고….’ MBC 노동조합 등은 MBC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과 자진 월북자로 몰린 이대준씨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지적해 왔다. 이는 권 이사장이 국감장에서 편향적 보도를 막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에 시달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눈물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말아 달라고, 언론계 선배에게 감히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