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선거 지려고 작정했나"…盧의 비전2030, 여당부터 오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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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3〉 비전 2030의 탄생과 아쉬움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2006년 8월 30일, 마침내 ‘비전 2030’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날 기획예산처 보도자료 제목은 ‘비전 2030-함께 가는 희망한국’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직접 보고대회를 주재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이 발표했다. 나는 보고서 작성 마무리 단계였던 2006년 7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전 국민이 집 걱정, 병원비 걱정, 먹거리 걱정 없는 사회를 건설한다. 2010년대에는 선진국에 진입한다. 203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만4000달러로 2005년 스위스와 비슷한 수준에 이른다. 2030년 삶의 질은 세계 10위로 2005년 미국(14위)을 앞선다.’

당장 야당과 언론은 물론 여당까지 들고 일어났다. “천국을 꿈꾼다.” “환상이다.”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재원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2030년까지 1100조원(물가상승 반영한 경상가격)을 투입한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도박게임 ‘바다이야기’에 빗대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이나 다름없다고 꼬집는 신문 만평도 있었다.

집·병원비·먹거리 걱정 없는 사회
장기 재정계획에 “천국 꿈” 맹비난
여당도 “선거 패배 작정했나” 반발

야당인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은 “이대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현재의 20대와 30대는 세금 폭탄 선언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강봉균 정책위원회 의장마저 “토론자료로만 삼을 내용”이라며 “이번 정부에선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발을 뺐다.

결국 재원조달에 대해선 “국민이 세금을 더 낼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할지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물러섰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세금을 올리든지, 국채를 찍든지, 지출 구조조정을 하든지,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셋 다 할 수도 있다. 이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며 국민에 적극적으로 물었어야 했다. 속으로는 부가가치세를 올려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인이 폼 나는 사회’가 선진국

2006년 8월 30일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비전 2030’ 보고대회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명숙(왼쪽 첫째) 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 첫째는 비전 2030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중앙포토

2006년 8월 30일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비전 2030’ 보고대회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명숙(왼쪽 첫째) 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 첫째는 비전 2030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중앙포토

지금도 후회되는 게 여론전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야당과 언론의 거센 공격을 예상하고 미리 대응했어야 했다. 콘텐트 생산에만 힘을 쏟다가 유통에서 실패한 꼴이다. 비전 2030은 지금 봐도 정말 잘 만들었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정부 장기 계획서다. 국가가 돈을 어떻게 써서, 나라를 어떻게 만들고,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고 얘기한 계획서다.

허황한 것도 아니다. 2030년이 되면 2005년의 스위스를 따라잡는다. 2020년에는 2005년의 일본 정도는 간다. 이게 목표였다. 천국을 꿈꾸는 게 아니라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되는 거였다. 물가와 환율을 반영한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하면 이미 2020년에 1인당 GDP에서 한국은 일본을 추월했다. 비전 2030은 허황하기는커녕 너무 보수적인 계산이었다.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비전 2030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을 자주 만났다. 격식을 차리기보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논의를 많이 했다. 서로 의견일치를 본 게 있다. ‘노인이 폼 나게 사는 사회’와 ‘시골과 도시의 격차가 없는 나라’였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외국에 가보니까 노인들의 옷차림이 깔끔하고 점잖은 게 눈에 확 들어왔다고 했다. 내 경험도 비슷했다. 선진국에도 거지는 있지만 노인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건 보지 못했다. 선진국 농촌에 가보면 도시와 큰 차이가 없는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

선진국은 1인당 GDP만 높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사회·문화·제도가 따라가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비전 2030에 담은 핵심 내용이 소셜캐피털(Social Capital), 즉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의 첫 번째 조건은 규율과 신뢰다. 정부의 정책 보고서에 사회적 자본을 명시한 건 비전 2030이 처음이었다.

스위스를 굳이 비교 국가로 집어넣은 건 노 대통령의 뜻이었다. 노 대통령은 굉장히 세부적인 것까지 관심을 갖고 의견을 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델 국가를 하나 선정합시다.” 몇 번이나 다그쳤다. 결국 충분한 뒷받침은 못 했다. 아무리 연구하고 토론해도 딱 한 나라를 고르기는 어려웠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김영삼은 집권 4년 차인 1996년 ‘21세기 경제 장기 구상’을 내놨다. 비전 2030은 이런 것들과는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만든 것도 잘못이다.

완성된 계획을 시안처럼 에둘러

‘비전 2030’ 보고대회에서 남긴 노무현 대통령 친필 메모. 사진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비전 2030’ 보고대회에서 남긴 노무현 대통령 친필 메모. 사진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톱다운 예산편성을 위해선 궁극적으로 장기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게 비전 2030이었다. 정부가 20년 장기계획을 세운 건 처음이었다. 장기적인 GDP 성장률, 1인당 GDP 전망치를 따져본 것도 처음이다. GDP 장기 추계를 내는 게 특히 어려웠다.

GDP 계산을 총괄한 건 최재영 기획예산처 재정분석과장이었다. 국가가 공식 자료를 내면서 25년 뒤 GDP까지 계산하는 건 굉장히 용감한, 이를테면 겁이 없는 행위였다. 사실 이걸 가장 심하게 공격받을 줄 알았다. 이 숫자에 대해선 되레 아무도 말이 없었다.

‘비전 2030’ 보고대회에서 남긴 노무현 대통령 친필 메모. 사진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비전 2030’ 보고대회에서 남긴 노무현 대통령 친필 메모. 사진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비전 2030 발표를 앞두고 2006년 8월 초 청와대에서 당정회의를 했다. 강봉균 정책위 의장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장 강하게 반대했다. 김 장관은 “이런 걸 내놓고 선거 지려고 작정했느냐”고 몰아붙였다. 그래서 원래는 ‘정부 2030 계획’이었던 제목을 비전 2030으로 바꿨다. 보고서에 “정부·민간 합동작업단이 만든 비전 2030 시안”이란 말을 넣었다. 한명숙 총리가 중재해서 집어넣은 문구다. 완성된 계획이 아니고 시안이고 토론자료라는 식으로 에둘렀다.

비전 2030은 노무현 정부의 역작이다.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내가 기획예산처 장관이 되고 여섯 달 뒤인 2005년 7월 ‘비전 2030 수립을 위한 민간작업단’을 발족했다. 50개 정책과제를 설정해 7개 분과를 만들었다. 기획예산처에서 40여 명, 한국개발연구원(KDI)·조세연구원·산업연구원 등에서 전문가 60여 명, 이렇게 총 100여 명이 참여했다.

기획예산처에선 김동연 재정전략기획관, 이창호 재정전략실장이 총대를 멨다. 1년 남짓한 기간에 100회 정도 독회를 했다. 100회 중 50회는 장관인 내가 직접 참석했다. 장관으로선 이 일을 최우선 순위에 뒀다. 대통령 보고는 13회를 했다. 공식 보고는 3회, 서면 보고는 10회였다. 대통령이 이렇게 많이 보고를 받았다는 건 정말 이 일에 큰 비중을 뒀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왜 그렇게 비전 2030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까. 노 대통령은 취임 후 각종 위원회를 두고 미래의 로드맵을 많이 그렸다. 그런데 위원회가 내놓은 로드맵은 그야말로 ‘뜬구름 잡기’ 식이었다. 반면 비전 2030은 실제 어디에 얼마만큼 돈을 쓰느냐를 세부적으로 적시했다. 노 대통령으로선 복지국가를 향한 청사진이 구체화하는 느낌을 비전 2030에서 받았을 것이다.

큰 실패에 이어 큰 교훈도 얻었다. 내용 못지않게 소통이 중요하다. 보고서 내용만 충실하게 잘 만들려고 한 게 패착이었다. ‘잘 만들면 잘 받아들여지겠지.’ 이런 섣부른 생각이 비전 2030을 망쳤다. 발표 전에 당정 협의도 열심히 하고 야당도 찾고 시민단체도 설득했어야 했다. 정치 지형에 대한 고려도 부족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여야 대치가 치열해졌다. 그런 변화를 잘 살폈어야 했다. 내부 독회를 왜 100회나 했던가. 독회는 50회만 하고 나머지 50회의 힘과 정성은 소통에 쏟았어야 했다. 글을 잘 다듬고 숫자 하나 틀리지 않으면 뭐하겠나. 좋은 정책을 내놓는 것보다 제대로 알리고 공감을 끌어내는 게 더 중요했다.

언론에도 미리미리 설명했어야 했다. 충분한 사전 설명과 소통 없이 달랑 발표부터 하니 언론도 인상 비평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큰 교훈을 얻었지만, 실패를 만회할 시간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극우의 나라에서 중도의 나라로”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비전 2030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의 유고와 육성 회고를 담은 『성공과 좌절』이란 책에서다. 그는 “비전 2030은 국민에게 인사도 못 하고 보수화의 바람에 묻혀 버렸다. 진보 언론도 적극적으로 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특히 복지재정 확대를 향한 이념적 지향을 비전 2030에서 찾았다. 노 대통령은 “(비전 2030의) 목표는 2020(년)까지 극우의 나라에서 보수의 나라로, 2030(년)까지 중도 진보의 나라로 가자는 것”이라며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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