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몽골 밤하늘은 커다란 음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올 더위가 정점을 찍을 무렵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몽골로 피서를 갔다. 도시의 빛 공해 없는 새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알래스카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자주 올려다보던 별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새삼 깨달았다. 도시 불빛에 가려져 별을 못 보게 되면 하늘이 주는 교훈도 쉽게 잊어버린다. 몽골의 빛나는 은하수를 바라보던 나는 마음이 겸허해지면서, 같은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했다.

5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우주를 지구보다 조금 큰 정도로 여겼다. 중국 한나라 천문학자였던 장형(張衡·78~139)은 성표(星表)에 별자리 100여 개를 포함한 2500여 별들과 둥근 모양의 달을 묘사했다. 삼국시대(220~280)에는 별자리 283개와 1464개 별이 추가되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별무리
우주속 인간의 존재 생각
개인·파벌·국가 등 경계
인류 공동체로 확장돼야

몽골 게르 위로 펼쳐진 밤하늘. 우주 속의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 [사진 배일동]

몽골 게르 위로 펼쳐진 밤하늘. 우주 속의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 [사진 배일동]

한국의 경우 고려시대(918~1392) 역사서인 『고려사』는 1073년과 1074년의 신성폭발에 대해 세계적으로 유일한 기록을 남겼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을 때부터 17세기까지 조선은 명나라와 마찬가지로 ‘우주’보다 ‘하늘과 땅’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선야설(宣夜說)에 따르면 우주는 천체가 떠돌아다니는 무한한 공간으로, 인간은 우주의 심오한 법칙을 이해할 수 없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육안으로, 관측 도구로 볼 수 있었던 것을 기록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17세기 중반 명나라 사신으로 파견된 정두원이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게스에게 받은 천리경은 조선의 첫 망원경이었다.

지난 7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에서 전송된 첫 사진이 공개되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우주의 광대함과 그 역사가 되살아났다. 우주에는 최소 반경 460억 광년에 2조 개의 은하와 1024개의 별이 있고, 우리 은하만 해도 4000억 개의 별이 있다. 그러나 선조들에게 배운 바와 같이, 우주의 깊은 비밀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몽골 밤하늘의 별무리.

몽골 밤하늘의 별무리.

우주에 대한 지식이 넓어질수록 인간은 이 광활한 세계에서 현재 속한 장소와 목적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1990년대에 ‘신(新) 유교적 휴머니즘’으로 유명한 뚜웨이밍(杜維明·82)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뚜웨이밍은 가족·공동체·국가·우주로 확장되는 자아의 물결을 동심원으로 표현했다. “각 사람은 개인적인 정체성, 즉 열려 있고 창의적으로 변형되는 개성을 찾는 과제를 풀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노력은 역설적으로,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는 능력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가족의 과제는 족벌주의를 초월해 공동체적 결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뚜웨이밍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민족중심주의와 문화우월주의를 극복할 때 사회적 통합을 이루며 부강해질 수 있습니다. 국가적 단결에 헌신하면서도 공격적인 국수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의 번영에 고취되지만 인류중심주의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인류애(humanity)의 참 의미는 인간-우주애(anthropocosmic)입니다. 인간-우주애적 정신을 가질 때 자아와 공동체가 소통하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인류와 하늘이 상호 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이상에 근거한 수양이 유교 인본주의 사상의 핵심입니다.”

내 속에 뿌리를 내린 이 사상은 내가 자연에, 또는 음악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심취할 때 밖으로 표현된다. 음악(音樂)은 동양에서는 ‘건전한 소리’, 서양에서는 ‘뮤즈의 기예’(music)를 뜻한다. 현재 나는 네덜란드계 독일 작곡가 코드 마이어링과 가야금 연주곡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가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

“악기는 우리 몸의 일부, 영혼의 일부와 같습니다. 우리는 악기를 만들어 신체적인 가능성을 확장하고 우리 내면의 상상, 미(美)에 대한 갈망과 열정을 표현합니다. 악기를 연습하는 무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악기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꿈과 미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음악으로 인간-우주애적 자아에 도달함으로써 내면의 상상과 꿈을 공유하는 것. 나는 이것이 한국 풍류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몽골 자작나무 숲속에서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거닐었던 어느 날, 우리는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고 염소고기 만찬을 즐긴 뒤 부른 배를 안고 난롯가에 모여 앉아 악기를 조율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동심원으로 퍼져 나가는 소리의 물결이 서로에게, 숙소를 둘러싼 산맥으로, 산자락의 목초지로, 산 너머 하늘로 확장되었다. 해 저물 무렵 세 쌍의 무지개가 떴고 구름이 곧 걷혔다. 맑게 갠 밤하늘에 수십억 개의 별이 펼쳐졌다. 은하수는 우리의 음악에 맞춰 진동했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