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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통화 혐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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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형수 국제팀 기자

박형수 국제팀 기자

질문 하나. 간단한 업무 협조를 구하거나, 전달 사항이 있을 때 가장 편한 소통 수단은? 내 경우는 전화 통화다. 짧은 설명과 추가 질문·답변이 오가면 오류 없이 마칠 일을, e메일이나 메신저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번거롭고 시간 낭비라 느꼈다.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전화를 걸 때면 ‘통화할 수 없으니 문자나 카카오톡(카톡)으로 남겨달라’는 거절 메시지를 부쩍 자주 받으면서다. 얼마 전엔 한 후배에게 “카톡도, 사내 메신저도 다 있는데 매번 전화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푸념도 들은 터다.

내 기준엔 카톡·문자는 ‘통화 불가 시 보조 수단’인데,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세대에겐 통화가 소통의 최후 수단인 듯했다. 택시 잡기, 음식 배달, 쇼핑, 결제 등 모든 일상을 앱으로 영위하고, 가족·친구와 소통도 메신저가 편하다는 이들에게 나의 ‘업무 전화’가 편할 리 없단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다.

‘통화’가 새로운 논쟁거리가 될 수 있겠단 조짐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무실 문화의 새 트렌드로 ‘통화 혐오’를 꼽았다. 같은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일하는 동료끼리 업무 승인을 받기 위해 며칠 동안 e메일을 수없이 보내면서도, 직접 자리로 찾아가거나 전화로 “이것 좀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진 않는다고 한다.

FT는 40~50대를 “유선전화와 함께 자라나, 어린 시절 통화법을 교육받고 전화 통화에 능숙한 마지막 세대”라 칭했다. 이후 세대에겐 더 이상 통화가 당연한 기술이 아니라며, 20~30대 성인 자녀가 전화로 병원 예약을 못 하거나, 식당에서 “포장해달라”는 말을 주저하더라도 부모가 당혹스러워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통화 혐오증 극복법은 의외로 쉽다. 간단한 매뉴얼을 숙지하고, 하루 3시간씩 누구에게도 메신저와 e메일을 쓰지 말고 전화 또는 대면 대화를 시도하라고 조언한다.

이번 ‘카톡 먹통 대란’은 우리 사회의 디지털 의존도를 실감케 했다. 카카오페이가 작동을 멈추자 길거리에서 졸지에 빈털터리가 됐고, 카톡으로 예약·결제하던 소상공인의 피해 사례도 속출했다. 민생뿐 아니라 안보 위협까지 제기됐다. 민·관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는 통화 혐오증부터 극복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