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시스템 이중화 못했다” 카카오의 뒤늦은 사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카카오 남궁훈, 홍은택 각자대표(왼쪽부터)가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카카오 남궁훈, 홍은택 각자대표(왼쪽부터)가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돈 되는 사업만 찾다 기본은 지키지 않아

규제와 자율 사이 균형 잡힌 대안 나와야

카카오 주요 서비스가 올스톱되는 ‘카톡대란’이 터진 지 나흘 만인 어제 남궁훈·홍은택 카카오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카카오는 서비스 이중화를 충분히 하지 못해 복구가 늦어진 점을 인정했다. 개발자 작업도구를 이중화하지 않아 3만2000대의 서버를 일일이 수동으로 부팅해야 했다. 홍 대표는 “카카오톡은 국민 대다수가 쓰기 때문에 공공성을 띠는 서비스인데, 부합하는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본질적인 것을 소홀히했다”고 했다. 뒤늦은 반성, 만시지탄이다.

인수합병(M&A)으로 돈 되는 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도 데이터센터 이원화 같은 기본은 제대로 지키지 못한 카카오의 민낯이 이번에 드러났다. 국내시장에서 압도적인 강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으니 그랬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과 국가 안보 문제라며 국가의 필요한 대응을 주문했다. 여야 정치권은 “경악” “충격”을 외치며 앞다퉈 규제를 강화하는 법률안을 내놓고 있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카카오 같은 대형 플랫폼에 연결된 데이터센터를 국가 기간시설에 준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여야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등 관련 법을 제대로 보완하기 바란다. 다만 기업, 업계 전문가와 충분히 논의해 무리한 입법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관심을 끈 사고가 터지면 으레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고 ‘타다금지법’처럼 과잉입법으로 이어진 사례가 많다.

독과점으로 인한 경쟁 저해와 소비자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야 하고 실제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독과점 자체를 무조건 문제 삼는 시각에는 무리가 따른다. 구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독과점이지만 카카오 같은 어이없는 사고를 내지 않았다. 독과점으로 인한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가 있는지, 인위적인 기업결합으로 그럴 소지가 있는지를 판단하면 될 일이다.

메신저 시장의 독과점에 직접 개입하는 유럽의 디지털시장법(DMA)은 맥락이 있다. 미국 회사인 메타의 자회사인 ‘유럽의 카톡’ 왓츠앱을 겨냥한 것이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경쟁 정책을 활용하는 건 유럽만이 아니다.

이번 사태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물론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는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은 제재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갑을 관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윤석열 정부가 얘기했던 자율규제 대신 다시 온플법을 쳐다보는 이유가 궁금하다.

플랫폼 기업은 혁신의 상징이면서 독과점 폐해라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나 갑질은 경계하되 4차 산업과 혁신의 플랫폼이라는 날개를 꺾어선 안 된다. 규제와 자율 사이에서 균형 잡힌 합리적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