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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Collection] “250여년간 쌓아온 브레게 헤리티지, 한국에 보여줄 것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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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세계 투어 일정으로 한국 찾은 브레게 CEO 리오넬 아 마르카 인터뷰

 브레게의 CEO 리오넬 아 마르카. 지난 달 아트 페어 ‘프리즈 서울’ 개최 시기에 맞춰 한국을 찾은 그는 워치 메이커이자 약 250년 역사를 가진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의 수장으로 브레게를 이끌어 간다. 아래 사진의 시계는 브레게 트래디션 7047(2022 노벨티).  [사진 브레게]

브레게의 CEO 리오넬 아 마르카. 지난 달 아트 페어 ‘프리즈 서울’ 개최 시기에 맞춰 한국을 찾은 그는 워치 메이커이자 약 250년 역사를 가진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의 수장으로 브레게를 이끌어 간다. 아래 사진의 시계는 브레게 트래디션 7047(2022 노벨티). [사진 브레게]

약 250년에 달하는 역사를 가진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브레게는 지난해 새로운 수장을 맞았다. 브레게가 속해 있는 스와치 그룹에서 20여년의 경력을 쌓은 리오넬 아 마르카 CEO다. 그가 예술로 뜨거웠던 지난 9월 2~5일 브레게의 수장 자격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신임 CEO가 된 후 진행한 첫 세계 투어 일정인데, 그는 그 첫 방문지로 서울을 택했다. 한국의 고객들과 파트너, 직원들을 만나고 또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글로벌 아트 페어 ‘2022 프리즈 서울’에 공식 글로벌 파트너로 참가하기 위해서다.

브레게는 고급 시계 중에서도 대표적인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다. 당대를 풍미한 천재적인 워치 메이커이자 발명가, 디자이너였던 아브라함-루이 브레게(1747~1823)에 의해 1775년 설립했고, 지금까지 하이엔드 워치 메이킹의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는 중심축이다. 브레게는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단독 라운지를 마련하고 아티스트와의 협업 설치 작품과 예술의 경지에 오른 하이엔드 시계들과 기요셰 장인의 세공 시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3일 오후 아트페어 기간 내내 이곳을 지킨 리오넬 CEO를 직접 만났다.  그는 산업혁명과 창립자인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아티스트 파블로 브론스타인의 설치 작품으로 둘러싸인 브레게의 라운지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손님을 맞고 있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워치 브랜드의 수장이 됐다. 그만큼 어떻게 메종을 이끌어갈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부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CEO가 되자마자 매뉴팩처 내에 있는 다양한 부분을 모두 살피는 데 주력했다. 브레게의 모든 임직원과 장인을 포함한 매뉴팩처의 전문가들을 만났고, 모든 제조 시설을 시찰했다. 회사 내에서 숙련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 과정을 통해 브레게가 엄청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직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앞으로 브레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계획인가.
“창업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물려준 브랜드 헤리티지를 보존하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 시계 제작자 및 혁신가로서 그의 탁월한 재능을 존중하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 브랜드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리오넬 아 마르카 CEO는 고급 시계 업계에 오랜 시간 몸담아 온 워치메이킹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 1967년 고급 시계의 성지로 불리는 스위스 쥐라 지방의 포렌트루이에서 태어나, 92년 스와치 그룹에 입사해 지금까지 그룹 내 다양한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았다. 특히 브레게 회장이자 CEO였던 마크 A. 하이에크의 곁에서 20여년 간 시계 제작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으며, 프레데릭 피게를 시작으로 ETA 매뉴팩처 오를 로제르에서 다양한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의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30대의 젊은 나이에 2004년엔 블랑팡의 임원진으로 임명되었고, 2014년 해리 윈스턴의 운영이사가, 5년 뒤인 2019년엔 스와치 그룹 전체의 확장 이사회 일원으로 합류했다. 브레게 하우스와 다이얼 제작 회사를 관리했던 그는 경영자로서의 비전과 자질을 인정받아 지난해 브레게 전체를 총괄 지휘하는 수장이 됐다.

-한국을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택한 이유는.
“한국은 우리에게 상당히 크고 중요한 시장이다. 한국에서 많은 마케팅 활동을 해왔지만, 직접 와서 한국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한국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인은 새로운 발견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메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상당히 궁금해한다. 이는 시계업계뿐 아니라 레저 등 삶의 많은 분야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이 모습을 통해 브레게가 약 250년간 쌓아온 헤리티지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내 들려줄 것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리오넬 CEO는 행사 기간 국내에 있는 브레게의 모든 매장을 방문하면서 본사를 포함한 모든 직원을 만났다.

-한국 직원들과의 만남은 어땠나.
“솔직히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국 직원들은 모든 것을 빠르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프리즈 외에도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꿰고 있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빠르게 결정하고 해결했다. 국가마다 나름의 특성이 있지만, 진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습에서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으며 천정부지로 치솟은 명품에 대한 버블이 꺼질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앞으로의 럭셔리 시장 전망, 어떻게 보나.
“럭셔리란 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다. 명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코로나 19를 겪으며 산업이 다 멈춰 공급에 차질이 있었지만, 수요는 여전히 존재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집에 모두 갇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언가 사고 싶어 했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했다.”
-코로나 19의 영향은 없었나.
“우리 시계는 모든 것을 손으로 제작하고, 제작 공정이 까다로우며 제작 시간도 길다. 코로나 19로 장인과 매뉴팩처가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어 공급에 타격을 입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 기간을 통해 새로운 것을 생각할 기회가 됐다. 코로나 19를 통해 우리의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시장에서 고급 시계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시장 논리로 생각하면 생산량을 늘리면 해결될 것 같은데, 그러지 않는 이유는.
“이윤 추구를 위해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워치 메이커로서, 시계 제조 자체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 거대한 공장을 새로 건설하지 않는 한 시계를 지금보다 더 많이 만들 순 없고, 만약  설비 환경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시계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계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들어가야 할 장인들의 작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 정교한 브레게의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보면 ‘예술’이란 단어가 떠오르곤 했지만, 이렇듯 예술 세계와 직접 연결된 모습을 보니 반갑다. 프리즈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한 이유는 무엇인가.
“브레게의 수장이 됐을 때 여러 가지 전략을 고민했는데, 그중 하나가 아트페어와 함께 하는 것이었다. 예술과 브레게엔 공통점이 있다. 창립자 브레게가 워치 메이커이면서 동시에 예술가였다는 점이다. 18세기 당시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만든 ‘브레게 핸즈’와 브레게 본연의 스타일은 기계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상당히 혁신적인 것이었다.”

리오넬 CEO가 말한 브레게 핸즈는 속이 빈 둥근 달 모양 도형이 달린 시곗바늘을 말한다. 1780년대의 시곗바늘은 일반적으로 길이가 짧고 넓고 장식이 많이 달렸다. 이는 시계를 무겁게 만들고 다이얼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이를 섬세하고 간결한 모양으로 바꿔 기능이나 미적 측면에서 워치메이킹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발명으로 기록됐다.

-여러 아트페어 중에서 굳이 프리즈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프리즈가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는 세계의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칠 기회를 준다는 점에 집중했다. 이점은 브레게의 철학과도 비슷하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시대를 앞서는 발명가로 시계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었다. 그는 워치메이킹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일찍부터 ‘브레게’라는 자신의 이름이자 브랜드를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급, 상류사회를 상징토록 하기 위해 여러 예술가와 함께 협업했다. 알렉상드르 뒤마, 스탕달 또는 푸시킨, 빅토르 위고 등 많은 문학계 거장이 작품에서 브레게를 언급했다. 특히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1800년대 푸시킨 가문과 긴밀하면서도 견고한 유대 관계를 맺었는데, 워치 메이킹에 열광하는 러시아 상류 사회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알렉산더 푸시킨은 소설 ‘예프게니 오네긴’에 브레게 시계에 대한 글을 남겼다. 이렇듯 그는 예술가들과 함께하며 그 이름과 명성을 더욱 높였다.”
-올해 가장 집중하는 전략은 무엇인가.
“브랜드를 ‘브레게답게’ 유지하는 것.”
-한국에서 역시 그런가.
“물론이다. 브레게의 정체성을 충실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을 탐색할 거다. 한국에서는 특히 ‘마린 컬렉션’ 같은 스포츠 워치의 인기가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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