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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기사 구속, 잘못이었다"…특수통 김후곤 세번의 사과 [Law談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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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잘못된 사건 처리로 상처받은 분들의 가슴에도 평생 원한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지난 9월 27일 어느 고위 검사가 퇴임사에서 25년 전 자신의 잘못된 수사로 고초를 겪은 피해자에게 재차 사과한 대목이다. 수사 과정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건 물론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 검사들의 관행에 비춰보면 이례적이었다. 더욱이 사죄는 구체적이었다. 초임 검사 시절인 1997년 범인으로 오인해 구속한 택시 기사 사례를 들면서다.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절도범으로 구속된 택시 기사는 알고 보니, 승객·목격자를 가장한 공범이 짜고 벌인 공갈의 피해자였습니다. 제가 기소한 그분이 과연 진범이었을까 의문이 드는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었습니다.”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현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이 2022년 10월 17일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현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이 2022년 10월 17일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검찰총장 후보였던 김후곤 전 고검장, 퇴임 후 첫 인터뷰

이 퇴임사의 주인공은 김후곤(57·사법연수원 25기) 전 서울고검장이다. 검찰에서 ‘특수통(특별수사통)’으로 활약해오던 그는 올해 상반기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법안 강행에 맞서 전국 검사장회의 대변인 역할을 했고, 45대 검찰총장 최종 후보군에 올랐다가 두 기수 후배인 이원석 검찰총장 지명에 따라 검찰을 떠났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특수통이지만 윤석열 사단으론 불리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지난 16일 김 전 고검장을 변호사 사무실(법무법인 로백스)에서 만나 25년 전 일을 사과한 일, 검수완박 이후 검찰의 미래 등을 물었다. 그의 퇴임 후 첫 인터뷰다.

그는 먼저 4월 16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택시 기사 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한 적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진실을 밝혀낸) 다른 선배 검사실에 찾아가 석방되는 택시 기사님께 사과드렸고, 그 기사 분은 ‘억울함을 풀어준 다른 검사에 대한 고마움으로 (당신에게) 원망은 없다’며 집으로 돌아갔다”라고 밝혔다.

경찰이 애먼 택시 기사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하고 김 전 고검장이 걸러내지 못해 영장이 청구·발부된 이후, 다른 동료 검사가 보완 수사를 통해 택시 기사의 억울함을 풀어줬다는 이야기다.

2022년 9월 7일 김후곤 당시 서울고검장이 퇴임식을 마친 뒤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뉴스1

2022년 9월 7일 김후곤 당시 서울고검장이 퇴임식을 마친 뒤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뉴스1

“실패한 수사도 알려야…‘무오류의 오류’ 극복이 진짜 검찰개혁”

김 전 고검장의 발언에서 무게중심은 검사도 수사 중 오판할 수 있고, 그 경우 자신의 잘못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차·삼차 사과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고검장은 “검찰이 ‘무오류의 오류’에 빠지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몇 년 전에 ‘퇴임하며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검사가 없다’는 내용의 한 칼럼을 본 적 있습니다. 뼈를 때리는 내용이라 인상 깊었고, 그걸 기억했다가 퇴임사 때 대표적인 사건 하나를 소개하며 사과한 겁니다.”

(▶2017년 6월 13일 한국일보 칼럼 「[36.5도] 이런 검사 퇴임사를 기대한다」 참고)

같은 맥락에서 그는 “검찰이 수사를 실패했을 때도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때 납품 비리 의혹을 받은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을 대대적으로 수사한 결과, 2015년 1월 15일 무혐의 처분하면서 이 사실을 언론에 널리 알린 적 있다.

김 전 고검장은 “내심 언론의 비판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대체로 ‘합리적으로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아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고, 결국 수사가 실패할 수도 있다. 이때 무오류의 오류에 빠지는 대신 관련 사실을 투명하게 알리면서 잘못이 있을 경우 사과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게 바로 진정한 검찰 개혁이라는 게 그의 주장 요지다.

김 전 고검장은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밀어붙인 검수완박의 부당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역시 억울하게 구속됐다 석방된 택시 기사 사례를 들면서다. 만일 검수완박을 해 검찰의 보완 수사권이 사라진다면, 억울하게 구속되는 선량한 국민을 구제할 길도 없어진다는 지적이다. 다른 검사가 택시 기사의 억울함을 풀어준 순간을 두고 김 전 고검장은 “검찰의 존재 이유”라고 했다.

2022년 8월 16일 대검찰청. 뉴스1

2022년 8월 16일 대검찰청. 뉴스1

직접수사 폐지론에 “검찰이든 경찰이든…협동해 수사하게 해야”

김 전 고검장은 직접 수사 축소 방향에는 동의했다. 그는 “검찰이 가급적 직접수사는 자제하고 경찰이 대부분을 맡아야 하는 건 맞는 방향”이라면서도 “그러나 검찰이 아예 수사를 못 하도록 하는 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가령 검찰이 수사 도중 수사권이 없는 범죄 혐의점을 발견했는데 이를 다른 수사기관에 넘기느라 수사가 지체되고 증거 인멸 등이 일어나면서 정의의 공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 전 고검장은 대안으로 1970년대 말 중국 덩샤오핑의 경제정책인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제시했다.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뜻인데, 이에 빗대 “공수처든 검찰이든 경찰이든 범죄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검수완박 법률(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처럼 범죄명 별로 관할 수사기관을 무 자르듯이 구분할 게 아니라 먼저 범죄 혐의를 인지하는 수사기관이 수사를 틀어쥐고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수사기관이 힘을 합쳐 수사해야 한다고도 했다. 고양이 한 마리보단 두세 마리가 힘을 합칠 때 쥐를 더 잘 잡을 수 있다는 이치와 같다. 경찰이 주도하는 사건에 검사가 파견 간다든지 반대로 검찰 수사 사건에 경찰이 파견해 도움을 주는 식이다. 공수처가 대규모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할 때 검찰과 합동수사팀을 만드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공수처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김 전 고검장은 “초기 공수처가 실패한 건 ‘공수처를 검찰 출신이 장악하면 제2의 검찰이 되는 거 아니냐’는 논리에 따라 검찰 출신 특별 수사 전문가들을 배척한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는 최근 뒤늦게 검찰 특수통 출신 김선규(연수원 32기) 공수처 3부장검사 등을 영입했는데, 앞으로 이 같은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도 했다.

검찰 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는 검찰 내 소수의 일탈 때문에 일어났고, 그 일탈에 대해선 혹독하고 예리한 잣대로 비판해야 한다는 게 김 전 고검장의 지론이다. 그러나 검찰 개혁을 하겠다며 검수완박 등으로 수사 시스템 자체를 마비시켜 국민 피해로 이어지는 건 막아야 한다는 비판이다.

김 전 고검장은 민주당의 무리한 검찰 개혁 추진 뒤에 정치적 계산이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는 “정치 구호로서 검찰 개혁은 이제 그만하고 일상의 개혁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후곤 로백스 대표변호사는

특수부, 첨단범죄수사부 등에서 평검사로 근무하며 고위공직자 및 기업비리 사건,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방산비리, IT 관련 사건, 개인정보침해 사건 등을 처리했다.

방송통신위원회 파견근무를 통해 통신업계 및 방송업계의 합병, 스포츠중계권 등 주요 이슈에 대한 법률자문관 역할을 수행했다.

대검 반부패부 선임연구관, 중앙지검 특수1부장, 수원지검 특수부장을 거치며 각종 주요부패사건을 지휘하여 사건의 해결능력을, 대검 대변인으로 근무하며 수사공보 및 홍보 능력을 키워왔다.

검사장 승진 후에 대검 공판송무부장,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치며 공판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공판어벤져스’ 창설, 범죄수익환수 및 집행업무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고, 법무검찰의 주요정책을 입안하기도 했다.

서울북부지검장, 대구지검장, 서울고검장을 거치며 사회적 이슈가 되는 중요사건이나 기업사건을 합리적으로 처리했다. IT기술 발전 등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모임인 ‘AI. 블록체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리더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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