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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곳곳에 널린 ‘디지털 싱크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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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책디렉터

김승현 정책디렉터

# “능력도 안 되면서 왜 일을 더 키웁니까?” 지난달 한 지자체 공무원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그가 분노를 터뜨린 대상은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더 편리하게 개선된다던 복지 관련 정보시스템이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사회보장정보원은 사회보장급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된 준정부기관이다. 이 기관이 구축·운영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목적에 맞게 ‘행복이음’이라고도 불린다.

카카오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이 판교에 있는 데이터센터 화재로 장애를 일으키면서 이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연합뉴스]

카카오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이 판교에 있는 데이터센터 화재로 장애를 일으키면서 이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연합뉴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은 아직 행복을 이어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6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세대 사회보장시스템이 개통했는데 각종 복지 수당 지급이 지연됐다. 1200억원이 투입됐는데 한 달간(9월 6일~10월 5일) 접수된 시스템 개선 요구가 10만여 건(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었다. 전국 어딘가의 국민이 10만 번 넘게 짜증을 냈다는 얘기다. 한 공무원은 “시스템이 안 되는 건데 욕은 우리가 다 먹는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가난한 고등학생 부모는 ‘첫만남 이용권’으로 유모차를 사려다 자격 책정이 되지 않아 자기 돈을 썼고, 대입 수시 모집 저소득 전형에 지원하려던 학생은 원서를 못 썼다. 희귀질환자는 의료급여 산정 특례 등록을 못 했다. 최근엔 임대주택 당첨자 발표가 연기돼 집 없는 이들을 애타게 했다. 믿었던 연결이 줄줄이 끊어졌다.

#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생 1인당 한 대의 스마트기기를 보급해 맞춤형 교육을 돕는 디지털 친구(벗), 줄여서 ‘디벗’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교육용으로만 사용 가능하다던 호언장담과 달리 학생들이 게임만 해서 학부모들을 화나게 했다. 또, 2개월간 544건의 고장이 접수돼 수리비 7000만원이 쓰였다.(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 학부모들은 “노트북 때문에 아이 가방만 1㎏ 더 무거워졌다. 키 안 클까 걱정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디지털이 만능 같지만, 먹통의 위험이 상존한다. 멀쩡하던 도시의 땅이 푹 꺼지는 싱크홀에 빠진 것처럼 아무 대책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임대주택 당첨만 기다리던 서민이 “수기(手記)로 하면 안 되느냐”고 울부짖어도 시스템은 답이 없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의 경우, 최초 개발자의 90%가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해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카톡 먹통’ 대란이 터졌는데 책임자들로부터 “화재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듣는 상황과 비슷하다. 디지털 세계는 화려한 만큼 무책임하게 연결돼 있다. 곳곳에 ‘디지털 싱크홀’이 도사리고 있다는 의심은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