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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송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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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일본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망하지 않고 근대 국가로 발전했을까. 최근 정치권에서는 이 주제로 설전을 벌였다. 한쪽에서는 조선은 이미 쇠락한 상태였으며 일본이 아니더라도 다른 열강에 점령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를 반박하는 측에서는 구한말 근대화 시도에 높은 점수를 준다. 일본만 아니었다면 조선은 근대적 국민국가가 됐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얼마 전 지인들 사이에서도 SNS를 통해 갑론을박이 오갔다. 결론이 나지 않자 지인 A는 주제를 중국 송나라로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송나라는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3개(화약·나침반·인쇄술)를 발명한 문명국가였다. 하지만 문신을 우대한 문치(文治)주의는 국방력의 약화를 야기했다. 거란(요), 여진(금), 몽골(원) 등 이민족의 침략에 자주 시달리다가 몽골에 정복됐다. 화려한 문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가장 약했던 왕조로 기억된다. 정치 갈등도 심각했다. 왕안석의 신법당과 사마광의 구법당이 수십년간 싸웠으며, 송대에 등장한 성리학자들은 실용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기풍을 조성했다. A는 “송나라의 멸망은 이민족 때문인가?”라고 되물었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사실 조선의 망국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무엇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기 쉽지 않다. 다만 1919년 임시정부를 세울 때를 돌이켜보자. 조선이라는 국호도, 왕정이라는 정치체제도 모두 버렸다. 물론 일본의 침략을 옹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선은 이미 백성들의 마음이 떠난 나라였다. 그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 대한민국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지금 왜 이런 논쟁에 뛰어들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