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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신라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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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S팀 기자

장원석 S팀 기자

바이오는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신라젠은 이 말에 딱 어울리는 회사였다. 일단 ‘말기암도 치료할 수 있다’는 비전이 가슴을 두드렸다. 주력인 항암 바이러스 물질 펙사벡 개발 과정은 순조로웠고, 함께 임상을 진행하던 미국 바이오 벤처 제네릭스까지 인수하며 덩치를 키워갔다.

시장을 들썩이게 한 건 2015년 4월 펙사벡의 임상 3상 승인 소식이었다. 장외시장의 스타로 떠오른 신라젠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한 임상 3상 도전을 위해 상장을 택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코스닥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주가는 채 1년도 안 돼 10배로 뛰었다. 블록버스터급 항암제의 탄생 기대감과 개인투자자의 꿈이 만나 국내엔 바이오 투자 열풍이 불었다.

균열은 2018년 시작됐다. 연초부터 최대주주 일가의 갑작스러운 주식 처분 소식이 전해졌다. ‘임상 실패설’이 솔솔 피어났다. 결국 2019년 8월 최악의 소식이 터졌다.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가 펙사벡의 임상 중단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설이 결국 사실이 된 것이다. 주가는 사흘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검찰의 압수 수색과 전 대표 및 감사의 구속이 이어졌다. 결국 이듬해 5월 거래가 정지됐다.

악몽 같던 2년 5개월이 지나고, 12일 한국거래소가 마침내 거래 재개 결정을 내렸다. 17만명의 개인투자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라운 건 복귀 성적표였다. 거래 재개 후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최대주주가 바뀐 점, 자발적 보호 예수 기간을 설정해 책임경영 의지를 밝힌 점, 파이프라인을 강화한 점,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젠 측은 “연구 개발에 전력해 기업 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말 그러길 바란다.

더욱 중요한 건 투자자의 자세다. 거래가 재개되자 또다시 과열 현상이 관측된다. 하지만 신약 개발엔 중박이 없다. 성공과 실패의 결괏값만 존재한다. 펙사벡의 경우 신장암 임상 2상을 진행 중이고, 새로 도입한 항암 후보물질 ‘BAL0891’은 빨라야 연내 임상을 시작한다. 신라젠의 투자 위험은 여전히 높고, 앞으로도 낮은 확률과의 긴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적어도 이 업계에선 ‘무조건 된다’, ‘이번엔 확실하다’와 같은 말은 써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 투자와 도박은 언제나 경계가 희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