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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고이즈미·오바마 캐리커처 그린 박기정 화백 별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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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세대 만화가 박기정 화백이 별세했다.

한국 1세대 만화가 박기정 화백이 별세했다.

만화 '도전자', '폭탄아' 등을 그린 1세대 대표 만화가 박기정 화백이 1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만화계에 따르면 박 화백은 최근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오다 이날 정오께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김성환 화백과 함께 우리나라 1세대 만화작가로 꼽힌다.

평생의 소신이 '백절불굴(百折不屈, 백 번 꺾이더라도 휘어지지 않는다)'이었던 고인은 시대를 포착하는 날카로운 눈과, 재치 있게 풀어내는 부드러운 손으로 평생 만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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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만주 용정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귀국해 서울에서 자란 고인은 1956년 구 중앙일보 네 컷 시사만화 ‘공수재’로 만화가 활동을 시작했다. 시사 만화를 그리며 5공화국 때 협박 전화, 입에 담기 힘든 욕설 전화도 많이 받았지만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박기정 화백은 시사 만평, 정치인 캐리커처로 말년까지도 내내 명성을 떨쳤다. 중앙포토

박기정 화백은 시사 만평, 정치인 캐리커처로 말년까지도 내내 명성을 떨쳤다. 중앙포토

이후 1978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만평가·캐리커쳐 인생을 시작했다. 당대의 가장 화제가 되는 장면과 인물을 포착해 굵고 가는 선으로 재탄생시켰다. 박정희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등 당대 유명 정치인을 그린 캐리커처는 젊은 층도 재밌어하며 큰 화제가 됐다.

'그가 그려야 유명 정치인이고 명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캐리커처를 그릴 대상을 직접 만나 느낌과 말, 성격까지 아우른 뒤 펜 끝으로 풀어냈다. 느껴지는 기운에 따라 선의 굵기도 다르게 그릴 정도로, 그의 선은 어느 한 부분 허투루 그은 것이 없었다.

박기정 화백. 중앙포토

박기정 화백. 중앙포토

국문과 출신 만화가, 60년대 이야기 평정… 스포츠 만화도 원조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의 활약을 그린 만화 '폭탄아'의 주인공 탄아 옆에 선 박기정 화백. 그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만화를 읽고 나라와 애국심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복간했다"고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의 활약을 그린 만화 '폭탄아'의 주인공 탄아 옆에 선 박기정 화백. 그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만화를 읽고 나라와 애국심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복간했다"고

“신문사 월급만 갖고는 생활이 어려워” 그리기 시작한 단행본 만화는, 196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만화가 됐다. 서울 경복고를 졸업하고 경희대 국문과를 다니다 중퇴한 고인은 서사가 짙은, 소설 같은 만화를 그렸다. 미국, 일본 만화를 따라한 만화가 많았던 제본소 만화판에서 고인이 펼쳐내는 신선한 이야기는 대중을 홀렸다.

고아인 주인공 '훈이'가 일본으로 건너가 핍박과 수모를 복싱으로 이겨내는 이야기인『도전자』,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잠입한 독립군 스파이의 활약을 그린 『폭탄아』는 19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도전자』의 한 장면이 담긴 우표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복싱을 다룬 『도전자』뿐 아니라 레슬링을 소재로 한 『레슬러』, 야구를 소재로 한 『황금의 팔』 등 스포츠 만화 시대를 처음 연 것도 고인이었다. 축구를 소재로 한 『치마부대』에서 여자 축구팀이 남자 축구팀을 이기는 이야기를 쓸 정도로, 고인은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를 펼친 작가이기도 했다.『도전자』는 2006년 복간됐고, 『폭탄아』는 2016년 잃어버린 부분을 일부 새로 그려 다시 펴냈다.

이야기 놓칠까봐 운전도 그만뒀다, 한국 이야기만화 원조

박기정 화백이 직접 만든 역대 대통령들의 인물상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대통령들의 특징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이 인물상은 22일 시작되는 ‘ 시카프 ’의‘박기정 특별전’에 전시된다.

박기정 화백이 직접 만든 역대 대통령들의 인물상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대통령들의 특징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이 인물상은 22일 시작되는 ‘ 시카프 ’의‘박기정 특별전’에 전시된다.

"팔리든, 안 팔리든 남이 안 하는 작품을 한다"를 원칙으로 삼았던 고인은, 무의식 중에 다른 작품을 모방할까 봐 데뷔 후에는 다른 만화를 전혀 보지 않을 정도로 '새 이야기'에 천착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놓칠까 봐 운전도 그만둘 정도였다.

2011년 중앙일보 만평을 그만둔 뒤에도 그는 끊임없이 '새 이야기'를 궁리했다. 만평을 그만두며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야구를 배경으로 한 가족 만화"를 언급했고, 2016년 데뷔 60주년 기념 전시에서는 "강아지·고양이·원숭이를 주인공으로 한 풍자 만화도 해보고 싶어. 어때? 재밌을 것 같나?"라며 주변의 반응을 떠보기도 했다.

'달려라 하니'를 그린 이진주 만화가는 "중·고등학생 때 고인의 만화를 보며 자랐다. 이야기와 그림이 모두 세련된, 존경하는 선배였다"며 "신문 만평 일색이던 만화계에 극화를 안착시킨, 극화의 선구자"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장상용 만화연구가는 "제자들과 일할 때에도 믿고 맡겨주는, 큰 나무 같은 선생님이었다"며 "초기 출판 만화 시장의 독과점을 깨기 위해 앞장 서는 등 후배 만화가들의 권익에 힘써주신 만화계의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만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문화관광부 장관 만화공로상, 2004년 문화의 날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초대 한국만화가협회장을 지냈고, 3대 협회장도 역임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20일 오전. 장지는 경기 남양주 영락동산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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