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교도소 담장위 재개발 조합장…10년간 징역 12명뿐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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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전 잠실5단지 재건축비대위의 조합원들이 서울동부지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수민 기자

지난 15일 오전 잠실5단지 재건축비대위의 조합원들이 서울동부지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수민 기자

# 지난 9월 창원지방법원은 지역주택조합 조합장 A 씨와 조합 업무대행사 B 대표에게 각각 징역 5년, 7년을 선고했다. 조합 업무를 대행했던 B 씨는 가족 명의로 사업예정지 땅을 98억원에 사들인 후 해당 조합에는 255억원에 되판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B 씨와 그의 아들이 제세공과금(57억원)을 빼고도 99억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얻었고 조합에는 그만큼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또한 A 씨와 B 씨는 허위 조합원을 모집한 후 모 은행을 속여 20억원가량의 중도금 대출도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A 조합장은 B 씨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 서울 성동구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조합 총회 의결도 없이 몰래 자금을 차입한 혐의로 지난 5월 법원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말 조합장이 된 그는 이듬해에 세 차례에 걸쳐 5000만원을 차입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재개발조합의 자금 차입과 방법, 이자율, 상환 방법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또한 해당 조합장은 조합원들이 요청한 용역 계약 자료 열람‧복사 요청도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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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서 10년간 12명 구속, 38명 벌금형  

지난 10년간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각종 비리로 형사처벌을 받은 재개발‧재건축 조합장과 조합 임원이 5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와 중앙일보가 각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를 취합한 결과다. 수도권 외 5대 광역시에서 추진 중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 600여 곳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전국 단위로 집계하면 형사처벌을 받은 조합 임원은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장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자리’라는 세간의 평이 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조합원들의 재산을 담보로 민간 영역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다. 세금이 투입돼 공공 영역에서 진행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조합 임원은 공무원의 지위를 갖는다. 관련  법과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조합장 등 조합 임원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공무원에게 적용하는 형법상 뇌물죄가 적용된다. 비록 민간이 주도하는 사업이지만 공공재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공정성과 청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 도시정비사업 전문가는 "법 규정과 달리 적지 않은 조합 임원들은 스스로가 공무원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평소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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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받고, 총회 의결 없이 '묻지마 계약'도 

비리 유형은 다양했다. 2020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6구역 재개발 조합장 C 씨는 북부지방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정비업체를 선정하면서 담합을 저질러 공정한 입찰을 방해했다는 혐의다. C 씨는 직후 보석으로 풀려나 항소했지만, 법원이 기각했고 재구속됐다. 또 2018년 경기도 수원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서울 강서구‧동대문구의 재개발 조합장 역시 뇌물 수수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크고 작은 도정법 위반도 많았다. 경기도 안양시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조합원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혐의로 올해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구의 재개발 조합장이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밀실 용역 계약을 맺었다가 벌금형에 처해졌다. 올해 3월에는 경기도 안양시의 한 지역주택조합장이 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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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금형 중 84%는 100만원 미만 솜방망이

전국 재개발‧재건축 현장에 비리가 만연해 있지만 ‘솜망방이’에 처벌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지역주택조합을 제외하고 지난 10년간 형사처벌을 받은 수도권 재건축‧재개발 조합 임원 40명 중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은 12명뿐이었다. 일각에서 “민간영역에서 벌어지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처벌 강도가 너무 낮다”며 “양형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례로 서울 강남구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총회 의결 없이 한 업체와 정비시설 공사 계약을 맺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벌금형 100만원에 그쳤다. 도정법에 따르면, 총회 의결 없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을 맺을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또한 조합 임원이 도정법을 위반해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퇴임 사유가 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수도권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재개발·재건축 조합 임원 31명 중 26명(83.9%)은 100만원 이만의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경준 의원은 “재건축·재개발 조합장과 임원들의 투명한 선출 절차가 필요하고, 내 집 마련 꿈에 부푼 서민들을 등에 업고 사익을 편취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고성표·김태윤·양수민 기자 beyond_new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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