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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물고기, 남세균 독소 노출되면…손자까지 신경발달 장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7월 말 경남 창원 지역 상수원수를 취수하는 낙동강 본포취수장 앞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낙동강 네트워크]

지난 7월 말 경남 창원 지역 상수원수를 취수하는 낙동강 본포취수장 앞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낙동강 네트워크]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의 독소에 노출되면 간암이나 정자 감소 같은 간·생식 독성이 나타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노출된 당사자뿐만 아니라 아들·손자 등 다음 세대에도 남세균 독소의 악영향이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동물 실험 결과이지만 사람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안후이(安徽)의과대학과 난창(南昌)대학 연구팀은 최근 국제 저널인 '종합 환경 과학(Science of Total Environment)' 온라인판에 발표한 논문에서 제브라피시를 남세균 독소의 일종인 마이크로시스틴-LR에 노출한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제브라피시를 마이크로시스틴에 노출 

제브라피시. 연합뉴스(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제브라피시. 연합뉴스(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마이크로시스틴이 남성 생식에 악영향을 미치고 자손의 발달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기존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는데, 이 실험은 남성 혈통을 통해 악영향이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지를 추적한 연구다.

제브라피시는 사람 유전자와 비슷한 데다 번식이 쉽고 성장 속도도 빨라 독성 실험에 흔히 사용한다.

연구팀은 갓 부화한 수컷 물고기 배아(부모 세대인 F0 세대)를 마이크로시스틴이 각각 0, 5, 25ppb가 들어있는 물에서 90일 동안 사육한 뒤, 마이크로시스틴에 노출된 적 없는 암컷과 교배해 자식 세대(F1 세대)를 얻었다.
연구팀은 다시 이 자식 세대의 수컷과 마이크로시스틴 노출이 없는 암컷을 교배해 손자 세대(F2 세대)를 얻었다.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우선 마이크로시스틴에 노출된 부모 세대 수컷의 고환이 손상된 것을 확인했다.

또, 부모세대 수컷이 마이크로시스틴에 노출된 경우 자식과 손자 세대에서 부화율과 심장 박동수, 체중 등의 감소가 확인됐다. 어린 물고기의 헤엄치는 속도도 대조군에 비해 느렸다.

제브라피시의 생활사

제브라피시의 생활사

부모세대 정자에서는 DNA 메틸화가 뚜렷했다. 메틸화 현상은 DNA에 메틸 기(基)가 붙으면서 구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DNA 염기 서열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메틸화 현상의 변화는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DNA 메틸화는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 Epigenetics)의 중요한 메커니즘에 해당한다.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체득한 조건이나 노출된 환경이 유전자에 반영되고, 이것이 후대에까지 전달되는 것을 후성유전학이라고 한다.

연구팀이 마이크로시스틴에 노출된 수컷의 정자를 분석한 결과, bdnf 유전자 프로모터 부위에서 DNA 메틸화가 증가했다. 메틸화가 증가하면 이 유전자로부터 BDNF(뇌 유래 신경 영양 인자) 단백질이 생성이 줄어든다.

BDNF는 신경세포인 뉴런을 성장시키고, 기능을 향상하고, 발달을 자극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bdnf가 낮으면 알츠하이머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변형된 DNA 자식·손자세대에 전달

마이크로시스틴 노출 실험 과정. [Science of Total Environment, 2022]

마이크로시스틴 노출 실험 과정. [Science of Total Environment, 2022]

연구팀은 자식 세대 수컷 물고기의 뇌 DNA에서도 bdnf 프로모터 부위의 메틸화가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bdnf 유전자 발현은 감소했다.

이와 함께 자식세대에서는 신경계 및 신경 전달 물질의 발달과 관련된 여러 유전자의 발현을 감소시켰다.

손자세대에서도 신경계 유전자 발현이 억제되는 등 신경발달 표현형이 부계(父系)를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부계 혈통이 마이크로시스틴에 노출되면 노출된 해당 개체뿐만 아니라 자식·손자 세대의 뇌 기능에도 영향이 나타났다"며 "정자 DNA의 메틸화에 따라 후성 유전적 영향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후성 유전학적인 과정을 통해 세대를 뛰어넘어 신경발달에 간여한다는 것이다.

이번 실험은 남세균 독소에 지속해서 노출한 물고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지만, 사람도 남세균 독소에 계속해서 노출된다면 영향받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세대 간 후성 유전 메커니즘이 인간에게서도 발생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안후이 의과대학 연구팀은 이전에 진행한 쥐 실험을 통해 태아 때 마이크로시스틴에 노출된 후 나중에 광범위한 신경독성 영향을 받은 사례를 제시한 바 있다.
또, 임신한 어미 쥐가 마이크로시스틴에 노출됐을 때 새끼 쥐의 간 손상과 기능장애가 나타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오염된 수돗물 정자수 감소 우려 

지난 7월 10일 낙동강 합천창녕보에서 관찰된 짙은 녹조. [대구환경운동연합]

지난 7월 10일 낙동강 합천창녕보에서 관찰된 짙은 녹조. [대구환경운동연합]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 환경보호국 환경건강위험평가소(OEHHA)는 주민들에게 '공지하는 기준'을 제시하는데, 수돗물에서 3ppb 이상 검출될 경우 하루 이상 계속 마시지 않도록 하고 있다.

OEHHA는 또 0.03ppb 이상의 마이크로시스틴이 들어있을 경우 3개월 이상 계속 마시지 않도록 하고 있다. 남성 정자 수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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