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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주인공 한동훈 아니었다…시선 강탈 '신스틸러' 두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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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중앙포토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중앙포토

당초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이목을 끌 것으로 예상된 피감기관장은 단연 한동훈 법무부장관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 장관이 국회에 등장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날 선 설전을 벌일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국감이 진행되자 정치권에서는 “신스틸러(scene-stealer, 주연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는 조연)는 따로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장관을 제치고 국감장의 시선을 강탈한 이들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중앙포토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중앙포토

김 위원장은 12일 밤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김일성주의자”라고 발언해 국감장에서 퇴장당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 라디오에서 “문재인은 총살감”이라는 2019년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지금도 (생각이)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징역 기간으로 미뤄보면 문 전 대통령은 훨씬 더 심한 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의 거친 발언에 정치권도 들썩였다. 17일 환노위 국감장에서는 김 위원장 고발을 추진하는 야당 의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여당 의원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결국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만 표결해 김 위원장 고발안을 가결했다. 김 위원장을 두고 여야 지도부까지 공개 설전을 벌였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역대급 색깔론 막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며 김 위원장 해임을 촉구하자,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김문수 한 사람뿐인가”라고 받아쳤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장진영 기자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장진영 기자

유 사무총장도 김 위원장 못지않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 논란이 한창이던 예민한 시점에 유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낸 문자가 5일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오늘 또 제대로 (기사)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문자였다.

유 사무총장은 “그 소통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은 ‘대감(대통령실+감사원) 게이트’라고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국감장에서는 유 사무총장이 이 수석과 얼마나 자주 소통했는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답변하지 않겠다”라거나 “증언 거부가 아니라 미주알고주알 말씀드리기가 그랬다”는 유 사무총장의 발언 태도가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민주당이 유 사무총장과 이 수석을 12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하면서, 관련 사태가 정쟁으로 비화할 조짐도 있다.

두 사람 외에도 백경란 질병관리청장과 이흥교 소방청장이 국감장에서 여러모로 시선을 끌었다. 백 청장은 6일 국감 질의에 “보고받지 못했다”라거나 “언론에서 봤다” 등 불성실한 답변 태도로 도마 위에 올랐다. 민주당은 “유체이탈 화법”(신현영 의원)이라고 비꼬았고, 여당 의원조차 “청장이 뺀질뺀질하다. 책임감도 없고 자세도 적극적이지 못하다”(조명희 의원)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 청장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유예기간 연장을 둘러싼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가 옷을 벗겠다”고 감정적으로 답했다가, 논란이 일자 사과했다.

끝 가는 국감…스타 의원 없는 ‘맹탕 국감’ 평가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9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사전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9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사전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12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중간보고 상임간사단회의에서 박홍근 원내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2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중간보고 상임간사단회의에서 박홍근 원내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피감기관장들만 논란에 휩싸인 것은 아니다. 지난 4일 시작된 국감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 모두 한방을 못 보여준 맹탕 국감”이라는 반응이 많다.

이번 국감에서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실정 논란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민주당은 윤 대통령 순방 논란과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겨냥해 공방을 벌였지만 뚜렷한 결과물 없이 소모전에 그쳤다는 평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가 한·미·일 합동훈련을 겨냥해 ‘친일 국방’ 논란을 제기하고, 국민의힘이 ‘친북 공세’로 반격하는 과정에서 민생이나 정책이 뒷전이 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2020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5분 연설로 화제를 모은 윤희숙 전 의원에 견줄 ‘스타 의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일부 피감기관장이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해 국감이 감정싸움의 장으로 전락한 면이 있다”며 “여야 의원 역시 정교한 정책 공방이나 확실한 팩트로 무장한 송곳 질의보다는 이념 논쟁이나 말싸움 같은 쉬운 길을 택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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