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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영어쌤' 美아빠와 韓엄마…집에선 무조건 한국말,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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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에서 거주하다 4년 만에 방한한 올리버 샨 그랜트(올리버쌤ㆍ왼쪽))가 12일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에서 한국인 부인 정다운 씨와 그의 자녀 체리 양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미국에서 거주하다 4년 만에 방한한 올리버 샨 그랜트(올리버쌤ㆍ왼쪽))가 12일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에서 한국인 부인 정다운 씨와 그의 자녀 체리 양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두면 자연스럽게 영어와 한국어를 다 잘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올리버쌤’으로 210만 구독자를 보유한 영어교육 유튜버 올리버 샨 그랜트(34)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 동갑내기 한국인 아내 정다운 씨와 함께 19개월 딸 체리를 키우고 있는 올리버쌤이 신간 『올리버쌤의 진짜 미국식 아이 영어 습관 365』 출간을 기념해 4년 만에 방한했다. 둘에서 셋이 되어 돌아온 올리버 가족을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만났다.

올리버가 출간한 책은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내가 직접 삽화를 그리고, 성인이 아닌 어린 자녀를 위한 책이라는 점이다. 아내 정 씨도 인스타그램에서 활동명 ‘마님’으로 일상툰을 그리며 17만 구독자와 소통하는 작가다. 이 책은 정 씨가 체리를 키우면서 “미끄럼틀 타볼까?” “간식 먹을래?” 같은 이야기를 영어로는 어떻게 하는지 올리버에게 묻다가 아예 책으로 내보자고 제안해 출간됐다.

14살 때 韓 친구네 한달 살이 

올리버쌤은 14살 때 한국인 친구의 초대를 받아 경기도 안양 친구 집에서 한 달간 지낸 후 한국어에 매료됐다. 김상선 기자

올리버쌤은 14살 때 한국인 친구의 초대를 받아 경기도 안양 친구 집에서 한 달간 지낸 후 한국어에 매료됐다. 김상선 기자

올리버는 유튜브에선 ‘국민 영어 선생님’으로 통한다. 2015년 재미 삼아 올린 영상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유튜버가 됐다. 올리버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14살 때 미국에 유학 온 한국인 친구를 만나면서다. 이듬해 친구의 초대를 받아 경기도 안양에서 한 달간 지내면서 신기한 한국어에 매료됐고, 이후로 한국인과의 인연이 계속됐다. 어머니 회사 근처 편의점 사장이 한국인이었고, 이듬해 만난 SAT 과외선생님도 한국인이었다. 대학교에서도 한국인 교환학생이 유난히 많았다.

대학에서 언어학과 스페인어를 전공한 뒤 2010년 2월 한국에 정착했다. 학교 원어민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의 수준 편차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영어 수업 방식에 답답함을 느꼈다. 올리버는 “아이들과 놀고 소통하고 싶었지만, 학교에선 책대로만 말하는 인형 같았다”며 “학교는 원어민 교사를 활용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에 페이스북에 영상 한 편 올렸다가 팔로워가 매일 5000명씩, 어떤 날은 하루에 3만명이 늘었다. 팬들의 요청으로 이듬해인 2016년 유튜브 계정을 만들었다.

당시 영상 편집을 해준 이가 여자친구였던 아내 정씨다. 방송사 조연출과 뉴미디어 콘텐트 회사에 다니던 정씨는 “주말마다 올리버의 영상 만드는 게 데이트였다”고 했다. 올리버를 만났을 때가 광고회사를 1년 만에 그만두고 단돈 100만원 들고 아일랜드로 건너가 8개월간 생활하다 돌아온 직후였다. 결혼 후 2018년 5월 미국에 정착한 건 “생존을 위해서”였다. 올리버는 “한국엔 집도 없고, 원어민 교사 일자리도 불안해서 안정적인 일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고 했다.

“집에선 온 가족이 한국어만”

올리버쌤과 아내 정다운씨가 19개월 딸 체리의 이중언어를 위해 세운 원칙은 "다른 사람이 없을 때 집에서는 온 가족이 무조건 한국어로 말하기"다. 김상선 기자

올리버쌤과 아내 정다운씨가 19개월 딸 체리의 이중언어를 위해 세운 원칙은 "다른 사람이 없을 때 집에서는 온 가족이 무조건 한국어로 말하기"다. 김상선 기자

올리버의 부모님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의 한 시골 마을에 집을 짓고 정착했다. 부부는 체리를 낳고 난 후 언어 교육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정 씨는 체리가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올리버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이들 부부는 언어 사용의 원칙을 정했다. “다른 사람이 없을 때 집에서는 온 가족이 무조건 한국어만 말하기”다. 생후 19개월에 들어선 체리는 아직 단어 하나씩 말하는 단계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말하고 알아듣는다.

올리버는 “아빠는 영어만, 엄마는 한국어만 쓰면 가족 관계가 이상해질 수 있다”며 “한국과 미국의 뿌리를 잘 지키고 균형을 이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민자 가정에선 종종 ‘너는 미국인이 돼야 한다’며 모국어를 쓰지 않고 영어만 쓰는 경우도 있지만,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며 “자녀는 부모님 가족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영어를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수능과 토익을 공부했지만, 영어가 재미있었다는 아내 정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선 무조건 한국어로 말하지만, 미국에서 다른 친구들과 놀 때는 또 영어를 말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과자 하나 줄까’ 같이 체리랑 영어로 대화할 때 정작 쓸 수 있는 표현이 별로 없더라고요. 아직도 배울 게 많아요.” 여기에 올리버가 말을 보탰다. “제가 14살 때 인터넷 강의는 거의 없어서 CD로 한국어를 배웠는데 ‘식사하셨습니까’ 이런 말만 있었어요. (아내의 경험에) 완전히 공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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