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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쌍방울 밀반출 달러, 북한에 흘러갔는지 규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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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직원 수십 명 중국에 전달하고 당일 귀국

북한 경협 시점…대북제재 위반 여부 캐야

2018년 10월 25일 방북 결과를 발표하는 이화영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 그는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김성혜 실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관계자와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경기도

2018년 10월 25일 방북 결과를 발표하는 이화영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 그는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김성혜 실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관계자와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경기도

김성태 전 회장이 각종 의혹에 연루돼 해외 도피 중인 쌍방울그룹을 수원지검이 어제 또 압수수색했다. 이번엔 수십억원의 외화를 중국으로 밀반출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 등)다. 검찰이 파악한 쌍방울의 밀반출은 수법부터 예사롭지 않다. 임직원 수십 명이 책 등 개인 소지품 사이에 수천만~수억원 상당의 달러화 지폐를 숨겨 중국 선양행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미화 1만 달러(약 1400만원)가 넘는 외화를 들고 출국할 땐 세관에 신고해야 하는 현행법을 위반한 셈이다. 현지 공항에 도착한 직원들은 쌍방울그룹 방모 부회장(구속 기소)에게 달러를 건네곤 곧바로 귀국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더 의심스러운 대목은 외화 밀반출이 이뤄진 시기다. 쌍방울 임직원이 외화를 집중적으로 운반한 시기는 2019년으로, 당시 쌍방울은 선양에서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및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등과 경제협력 사업 관련 합의서를 작성했다. 쌍방울 관련 의혹의 핵심으로 떠오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김 전 회장이 북한 민경련 관계자를 만난 시기도 이 무렵이다. 북한과 경협 합의로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주가가 급등했다. 큰 이익을 얻게 된 쌍방울이 밀반출한 달러를 북한에 건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 쌍방울 직원들 사이에서 “이 돈이 북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니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제재 2321호 결의안은 대량의 현금이 북한에 들어갈 우려를 재차 강조하면서 회원국들의 주의를 촉구했다. 만약 쌍방울이 거액의 달러를 북측에 건넸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배신한 꼴이다.

쌍방울과 정·관계 사이에 드러난 비리는 한두 개가 아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에서 법인카드를 받아 수억원을 쓴 혐의로 구속됐다. 쌍방울에 임원으로 영입된 전직 검찰 수사관은 검찰에서 회사 압수수색영장 내용을 빼내 구속됐다. 직후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달아나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는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이다. 이제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 외화 밀반출 의혹으로 번졌다. 검찰은 나노스 임원으로 영입된 아태평화교류협회 안모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대북 경협 사업 관련 의혹 수사에 나섰다.

우리 정부는 지난 14일 북한 개인 15명과 기관 16곳을 대상으로 대북 독자 제재를 강행할 만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개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쌍방울 임직원이 밀반출한 외화의 1차 행선지가 우리 정부의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중국이어서 추적이 쉽지 않지만, 북한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반드시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